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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r 06. 2022

삶의 질은 옆집이 결정한다

호주 이웃집 이야기

부릉부릉 부르릉~~

으악, 또 시작이다! 엄청난 공회전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매연. 황급히 문과 창문을 닫는다.


콜록콜록, 쿨럭쿨럭.

하이고, 또 시작이네! 코와 폐를 공격하는 기분 나쁜 연기가 집안 가득 스며든다. 황급히 문과 창문을 닫는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다. 옆집을 잘못 만나서 이 고생을 하고 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옆집. 호주에서 만난 이웃집 이야기를 풀어본다.




이웃집의 유형


우선 우리는 *타운 하우스 단지에 한 유닛에 살고 있다. (*2층 하우스가 여러 채가 옹기종기 모여서 있는 단지, 단독주택의 장점을 누리면서 단지의 장점인 공용시설/관리/보안도 누리는 형태) 양쪽에 옆집이 있고 길 건너 앞집이 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단독 하우스도 마주하고 있다. 그동안 주변 집들이 이사 가고, 오고 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이웃들을 만났다.



1. 차량 청소형


가장 양호하다. 이곳 사람들은 차고에서 자신의 차를 닦고 청소하는 것을 즐긴다. 예전의 앞집은 최소 일주일에 7번 차를 닦았다. 그냥 닦는 것이 아니라 바퀴 휠까지 빼서 닦았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늘 즐거워하며 닦았다. 모른 척 우리 차도 옆에 가져다 놓으면 닦아주실 것 같았다. (이사 가시기 전에 해볼 걸!)



2. 오토바이 or 보트형


자동차 외 모터가 달린 것들을 가지고 있는 집이다. 오토바이, 보트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하나는 알게 되었다. 그 모터가 시동이 걸리면 정말 시끄럽다. ㅜㅜ 그리고 그 시동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걸린다. 새벽이든 한낮이든 한밤중이든... 그 소리에 요즘도 깜짝깜짝 놀란다.



3. 싸움형


워낙 발성과 울림이 강한 영어권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말다툼이 일어나면 굉장하다. 가끔은 경찰을 불러야 하나 싶을 정도로 크게 들린다. 현재 마주하고 있는 단독 하우스 가족들이 모이는 휴일이면 두렵다. 사람이 모이는 휴일이면 즐겁게 지내시다가도 어느 순간 큰 싸움이 벌어진다. 어린 남매끼리의 싸움도 대단하다. 처음에 당연히 10대 청소년인 줄 알았다. 둘 다 아들보다 어린아이들이었다.



4. 짖는 형


마주하고 있는 단독 하우스의 애완견은 하루 종일 짖는다. 집에 사람이 빠져나가고 난 주중에 혼자 남은 그 강아지는 계속 짖는다. 무엇을 보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짖는다. 강아지는 유령이나 귀신을 본다는데 무섭다. 사실 무서움을 느끼기 전에 시끄러움에 귀가 더 아프다. 이번에 새로운 가족의 개는 짖다 못해 운다. 가끔 소인지 늑대인지 헷갈릴 정도로 심각하게 울부짖는다. 말이 안 통하니 참을 뿐.



5. 담배형


말 그대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는 이웃집이다. 가장 가까이 바로 붙어있는 옆집에 스모커가 나타났다. 마당을 통해 주방과 거실로 담배연기가 들어와서 경악했다. 타운하우스 단지 매니저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으나 ‘사유지 내에서의 자유’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우연히 그 집에 사는 분을 물어물어 연락이 닿았고 우리의 사정을 전했다. 이제 그분은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차고 앞에 나와서 핀다. 비가 와도 태양이 내리쬐어도 타는 내 눈빛이 째려봐도 멈추지 않는다. 담배는 정말 최고의 중독성을 가졌다.



6. 소음형


옆집에서 무슨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는지, 어떤 영화의 무슨 장면을 보는지 알 수 있다. 귀가 많이 안 좋으신 것 같다. 한 번은 문이 쿵쾅거리는 소리와 총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강도가 든 줄 알고 뛰쳐나갔다. 나가서 살피니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몇 번 반복되다 보니 깨달았다. ‘아... 게임이구나!' 귀가 많이 안 좋으신 것 같다. 아직 10대 같던데 안쓰럽다.



7. 연기형


호주 사람들은 바비(바비큐)를 정말 좋아한다. 공원에서도 바비 시설이 늘 마련되어 있어서 모두가 편하게 즐긴다. 집에서도 마당에서 늘 즐긴다. 우리 옆집도 즐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무엇을 가져다가 태우는지 냄새가 세상에서 가장 고약하다. 그 연기가 우리 거실, 주방, 침실로 들어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찝찝하고 콜록거린다. 산과 들에 널려있는 아무 풀떼기를 가져다 피우거나 쓰레기를 태우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제대로 된 장작을 내 돈 주고라도 사드리고 싶다.



8. 침입형


예전에 있었던 한밤의 무단침입 ‘청바지 사건'의 주인공이 이웃 주민인 것이 확실해졌다. 인상착의가 똑같은 사람이 계속 내게 멋쩍게 인사한다. 사실이라면 정식으로 와서 사과를 해야 하는데 여기선 꽤 흔한 일인 건지, 그분이 예의를 말아먹은 분인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었냐면... 집 구조가 우리와 비슷한 집에 사시는 옆 옆집분이 밤에 술인지 약인지 만취해서 자기 집으로 오해하고 들어오려던 사건이 있었다. 결국 경찰을 불렀고 그분은 청바지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9. 자유형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유형이다. 학교 갈 아이가 있는데 일주일에 절반은 안 가는 것 같다. 감기로 인한 기침이 심각한데 늘 수영하고 맨발로 놀면서 몇 달을 달고 산다. 수영장에서 맥주병을 들고 돌아다니고 금지된 다이빙을 부모와 아이가 늘 즐긴다. 한 번은 돌멩이를 들고 와서 수영장에 던지며 놀았다고 들었다. 자유를 존중하지만 주변에 피해를 주지는 않았으면 한다. 말만 통했어도 한 마디 해주었을 텐데... 내가 참는다.




독보적 최강 우리 옆집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이웃집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저 기도해서 잘 만나길 바라야 한다.


위의 수많은 유형 중에 어디서도 만나기 어려운 인상 깊은 이웃집을 하나 소개하겠다. 기본적으로 이 집은 ‘자유형’이다. 어디로 튈지 무엇을 할지 모른다. 거기에 ‘보트형’, ‘소음형’, ‘연기형’이 더해진다. 한마디로 종잡을 없게 시끄럽고 연기를 피워 힘들게 한다.


그리고 우리 기억이 맞다면 이 이웃집이 이사 오고 난 뒤부터 바퀴벌레가 무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이삿짐에 함께 옮겨 온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다. 또한 그 ‘청바지 사건’을 목격하고도 그저 실실 웃어대는 이웃이다. ‘나 그때 그 사람이 바지 벗는 거 봤어~'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이웃이다. 당연히 우연이겠지만 우리를 제외하고 이 집의 이웃집들은 모두 이사를 갔다. 설마 이 집이 힘들어서는 아니겠지?




일어난 기적


언젠가부터 역시나 가장 최고의 이웃집이 밤낮 할 것 없이 시끄러웠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우연히 지나가면서 보니 차고가 텅텅 비어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 떠오른 생각은 ‘설마 이사 가시나?!?!’ 그리곤 정말 떠났다.  ‘자유형’ + ‘보트형’ + ‘소음형’ + ‘연기형’ 끝판왕 그 집이 다른 곳으로 떠난 것이다. 호주에 와서 이렇게 기분 좋은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하루 종일 춤과 노래를 달고 다녔다.


그러다 그 전날 파랑이 한 마디 했던 게 기억났다. ‘옆집에서 청소기 돌리는 소리 듣는 거 처음인 거 같은데?’ 그렇다. 청소를 거의 안 하다가 이사를 가야 하므로 했던 것이다. (이곳은 이사 나가는 사람이 집 청소를 해놓고 나가야 한다. - 한국과 반대) 그럼 그동안 1년 동안 청소기를 안 돌렸다는 말...? 뭐 그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이미 떠났는데! 이제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그냥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다.


(+또 하나의 기적) 얼마 되지 않아 '담배형' 다른 옆집도 떠났다. 눈물이 난다. 요즘엔 양쪽이 모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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