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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l 05. 2020

이제는 내가 필요한 ‘공감’과 ‘그 표현’

주부와 육아 담당자로서의 마음가짐

21/Oct/2019


지금 나는 전업주부이다. 


이곳에서 누군가 나에게 지금 뭐하시냐고 물으시면 ‘육아휴직 내고 애 보고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이 ‘육아휴직 중인 아빠’냐 ‘하우스 허즈밴드 인 패런털 리브’냐의 차이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 나면 물어보신 분의 표정에는 여러 가지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생각이 오고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나는 덧붙인다. ‘좀 특이한 경우죠? 하하’

그럼 그제야 ‘네 그러네요, 아이한테 좋겠어요~’ 


만약 내가 직업이 아예 없고 전업주부일 경우에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다.






아무튼, 실제로 그렇게 3개월을 넘게 지내고 있으니 내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이번 텀 4에 주 5일을 반나절을 유치원을 챙겨 보내다 보니 사실상 매일 아들과 함께 한다. 주말에도 파랑이 과제나 시험 준비로 시간이 필요할 경우에도 아들과 함께 지낸다.


그러다 보니 아들이 태어나고 파랑이 출산휴가&육아휴직을 내었던 기간과 이곳에 오기 전까지 함께 한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엄마로서 조금 더 많이 감당했던 육아의 기간에 무수히 유사한 케이스로 나와 티격태격했던 ‘그 주제’에 대한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바로 ‘공감 VS 해결’이다


그 시절 과거에 나는 파랑이 어떤 고민과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것에 대한 공감보다는 어떻게 해결할 것 인가에 대한 방안을 늘어놓기 바빴다. (해결책, 방안이라고 하지만 이미 당사자도 다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그 순간 고민한 얕은 깊이의 그것) 


결국 대화가 그렇게 흘러가면 공감을 원해 이야기를 꺼냈던 사람과 해결해주고자 했던 사람의 의도가 부딪혀 기분이 별로 좋지 않게 끝났다. 사실 지금 이렇게 상황을 설명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바로 최근까지만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민이 있으면 해결을 하면 되지 않는가?? @.@)






그런데 지금 나와 파랑의 입장이 바뀌었다.


아들과 하루를 잘 보내고 와이프를 학교에 데리러 가는 시간부터 아들과 내가 잠자러 들어가는 시간까지가 그날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짧은 시간이다.


파랑 입장에서는 나와 아들을 둘 다 오랜만에 만나는 시간이고 힘든 하루를 마치고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나와 아들은 와이프와 엄마에게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서로 많다. 돌아오는 차에서부터 집에 돌아와서 잘 때까지 1시간에서 2시간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에 서로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들과 있었던 내 이야기를 듣느라 아들의 사랑 열정 가득 뿜뿜한 표현을 받느라 파랑은 정신이 없다.


나는 내 입장에서만 보면 내 이야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들과 지냈던 이야기를 매일매일 알려주고 공유해주고 싶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주부의 마음이구나!) 그 안에는 분명 이런저런 자랑도 들어있고 (나와 준영이가 해냈다!) 저런 이런 걱정과 고민이 들어있다. (모든 일에 일희일비하느라...)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 내가 기대하는 반응은 이것뿐이다. ‘와~ 그랬구나! 잘했어!’, ‘아이고 그렇겠구나.. 신경 쓰이겠네’


이렇게 공감을 받고 싶은 마음뿐인데 우리 파랑은 과거의 나처럼 좋은 해결책과 방안을 위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더 좋을 거야!’, ‘이렇게 해보면 나아질까? 다 잘되거니 걱정 마!’


몇 년 동안 내가 했던 말 들인데 직접 들어보니 힘이 빠지고 기분이 안 좋다. 이곳에 남기고 있지만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 그냥 내 생각과 감정을 알아주는 것만으로 멈춰주면 좋겠다. 아마도 추가적인 이야기를 잔소리로 받아들여서 일 것이다. 나도 하루를 보내느라 감정과 생각이 가득 차서 받기 어려워서 일 것이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상세하게 구구절절 적어 볼까도 했는데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이건 뭐 유치해서 쓸게 아니다. 이런 고민이 있는 가운데 어제 주일 대표로 ‘기도 인도’를 하게 되었다. 기도를 준비하며 이런 고민의 문제는 결국 내게 있음을 인정했다.


‘우리는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남을 용서하기보다는 탓하며 정죄하기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모든 내 안의 나쁜 감정과 화는 내가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나도 파랑을 이해하고 파랑도 나를 이해하면 서로 기분이 상할 일이 없다. 우리는 서로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 관계가 아니다. 당연한 건데도 아직도 순간순간 기분이 상하면 깜빡한다.


특히 아들이 그러면 ‘이 녀석은 어려서 아직 다른 사람 기분을 몰라서 그러나...’ 싶기도 한데 그것도 아닌 것임을 안다. 최소한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그렇지 않음을 기억하자.






혼자서도 잘해요


지난주에도 아들이 혼자서 해낸 일들이 많았다.


1.

음악 수업시간에도 혼자서 참여하여 마이크를 통해 노래 부르기에 성공했다. (사실 내심 걱정이 많았다, 수줍기도 하고 영어에 서툰 아들이 할 수 있을까?) 어쩐 일인지 매우 씩씩하게 잘 해냈다! 대단해 아들!


2.

수영 수업시간에도 아주 난리였다. 집에서 욕조에서 잠수를 연습한 게 효과가 있었는지 수업시간 내내 물속에서 너무 신나게 노는 것이 아닌가? 불과 한 달만의 일이었다. 과거의 내 걱정이 민망할 정도였다. 집에 와서도 엄마에게 보여주겠다며 저녁에 단지 내 수영장에 다 같이 다녀왔다!


3.

한글 받침 없는 동화를 혼자서 읽었다. 받침 빼고는 거의 다 익힌 아들이 한국에서 가져온 ‘받침 없는 동화책’을 스스로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은 잊지 못할 것이다.


4.

드디어 교회 아동부 예배에 혼자서 다녀왔다. 내가 기도 인도를 하느라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서 설명을 한 뒤 다른 친구 손을 잡고 가는 것으로 이야기했다. 기특하게도 그 친구 손을 잡고 다녀왔다. 여기 와서 몇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같이하면 더 잘해요


아빠와 함께 하다 보니 무언가 둘이 함께 하면서 생기는 소소한 일들이 많다.


1.

미술 수업 선생님이 휴가를 다녀오셨다. 오랜만에 간 미술 수업에서 즐겁게 그림을 그렸고 항상 가지고 놀던 마당에 꽂혀있던 ‘바람개비’를 수업 마치고 나올 때 선물로 주셨다. ‘아트’를 사랑하시는 선생님께서 내게 덕담도 해주셨다. ‘이렇게 아들의 아트에 대한 열정을 위해 애쓰는 아빠는 호주에도 없다’


2.

금요일 유치원 등원할 때 헤어짐이 너무 어려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빠랑 놀려고 했는데 다시 재우는 바람에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워했던 것이다. 이제는 언제 일어나든 같이 놀기로 했다. 하하. (그런데 여기 해가 너무 일찍 떠서 점점 일찍 일어난다 ㅜ)


3.

차로 같이 다니면서 이런저런 수수께끼, 퀴즈를 하곤 하는데 영어도 배워가면서 영어 문제도 서로 나눈다. 언제 한 번은 색깔을 영어로 말하며 이 색깔과 저 색깔을 섞으면 뭐가 되는지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들이 ‘아빠~ 연두색은 모르니까 그냥 한글로 하자 ㅋㅋ’


4.

수영 수업과 단지 내 수영장에서 진을 다 빼고 온 저녁. 못다 한 한글 놀이를 마무리하고 자려고 했는데 결국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책상에 엎드려서 잠들었다. 그냥 상체를 엎드린 게 아니고 몸 전체로 엎드렸다. 피곤하면 좀 쉬자! 아빠도 그럴게. 하하.


5.

토요일 내내 비가 와서 바닷가에 못 갔다. 일요일에는 쨍쨍해서 둘이 엄마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해변에 다녀왔다. 3시간을 신나게 놀더니 따뜻한 벤치에서 또 잠이 들었다. 한 시간을 내리 자고 일어났다.



행복한 미술 시간 / 잠이 오는 한글 시간



이렇게 같이 있는 시간이 매우 소중함을 문득문득 깨닫는다. (가끔 잊는다는 이야기)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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