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생일날은 어려워
26/Oct/2019
지난주 월요일은 내 생일이었다.
전날부터 아들은 아빠 생일 선물을 만들겠다면서 뚝딱뚝딱 만들고 그리고 쓰고 나서는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며 ‘아빠 지금 보여줄까? 알려줄게~’ 라며 나를 졸랐다. 못 이기는 척하며 미리 받은 선물은 근사한 하트 편지와 직접 만든 훌륭한 나무 모형이었다. 재미난 생일날을 기대하며 잠들었다.
파랑은 전날 밤부터 하던 과제를 생일날 아침까지 마무리하고 나서 아들 유치원 간 사이에 같이 영화를 보자고 했다.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앞섰지만...)
다음날 아침에 평소처럼 먼저 일어났는데 파랑이 아직 과제 중이었다. 나는 괜찮으니 무리하지 말고 과제 잘 마무리하고 쉬라고 했다. 정말 나는 그냥 파랑이 오랜만에 집에만 같이 있어줘도 좋을 것 같았다.
아들을 준비시키고 도시락을 싸서 유치원에 등원시키는데 아무래도 가장 힘든 월요일 아침이어서 떨어지는데 좀 애를 먹었다. 오후에 엄마랑 아빠랑 같이 일찍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파랑은 아직 과제 중이었다. 30분 정도면 마무리된다고 해서, 마치면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알겠다고 하고 내려와서 평소처럼 운동을 했다. 1시간 뒤 운동을 마치고 씻으려고 올라가 보니 파랑은 아직 과제 중이었다.
씻고 나서 원래 점심으로 같이 만들어 먹기로 했던 떡볶이를 만들었다. 파랑에게 내려와서 먹자고 했고 파랑은 이러저러한 시스템적인 이유로 과제가 마무리가 되지 않음 속상해했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고, 영화는 다음에 봐도 되고 이따가 준영이 픽업해서 다 같이 장 보고, 저녁 먹으면 좋다고 했다.
최근 파랑이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그날 오후에 예약이 되어 있었다. 늘 친절하고 깔끔한 서비스의 그 병원이 그날따라 불친절하고 응대가 느렸다고 한다. 나와 아들은 대기실에서 파랑을 기다리고 있었고 거의 1시간 반이 넘어서 파랑이 울상이 되어서 돌아왔다. 간호사들이 간단한 드레싱 교체하는데 한번 나가면 돌아오지 않더니 결국 자기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집에 가서 잘 치료하고 쉬라고 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로 울상이 돼버린 파랑을 데리고 어쩔 수 없이 해가 지고 있는 하늘을 보며 가기로 했던 쇼핑몰로 향했다. 순식간에 장을 보고 와서 파랑이 해준 맛있는 연어 스테이크를 먹고 초콜릿 케이크로 촛불 생일 파티를 했다. 양가에 영상 통화를 마치고 나와 준영이는 늘 그렇듯 잠이 쏟아지며 8시 즈음에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생일에 별 감흥이 없지만 (물론 부모님께는 감사하다!) 매번 내 생일 즈음에 한국에서도 회사 일정으로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파랑의 아쉬움을 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때 즈음에 늘 회사에서 워크숍을 갔다, 그것도 거의 매년 연속으로) 여기서도 공교롭게 과제 스케줄과 겹치는 바람에 마음이 편지 않았었나 보다.
뭐 지금 내 생활은 굳이 말하자면 매일이 내 생일 같이 자유롭고 평화롭기 때문에 나는 정말 괜찮았다. 하하!
1. 페인팅은 내 취미
아들은 유치원에서도 그림을 그리며 재능을 뽐내고 있다. 어느 날은 태극기를 디테일하게 그려왔고 어느 날은 장미꽃을 아름답게 그려왔다. 아무래도 가장 즐기는 활동이기에 마음이 심란할 때 안정을 주는 것 같다.
2. 동물 영어 이름 맞추기
선생님과 서로 동물을 흉내 내며 이름 맞추기를 했다고 한다. 주변 친구들도 함께 가세해서 했다고 한다. 목이 긴 기린을 표현하기 위해 키 큰 친구를 데려다가 설명했다고 하는데 하하.
3. 낯선 곳은 싫어
낯섦과 처음 맞이하는 환경에 적응이 다소 느린 아들은 그런 장면을 마주칠 때면 힘들어한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내년에 갈 학교에 유치원에서 정기적으로 나들이를 간다. 벌써 4번째인데도 아들은 그날이면 아침에 떨어지기 참 어려워한다.
그래도 점점 나아지긴 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목이 마른데도 학교 교실에 있는 정수기를 이용 안 하고 참았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목이 말라서 그 정수기를 어떤 형아랑 선생님이랑 가서 이용해서 물을 마셨다고 한다. 선생님도 그런 친구들도 있는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4. 미스터리 베지터블 게임
가끔 유치원에서는 봉투에 신기하고 접하기 어려운 야채나 과일을 넣어두고 아이들이 촉감으로 판단해서 알아맞히는 활동을 한다. 어느 날 하원 할 때 아들이 ‘내가 에그 플랜트라고 맞췄어, 나만 맞췄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맞춘 것에도 놀랐지만 내가 에그 플랜트라고 알려준 적이 있었나 싶어서였다.
지금 준영이랑 같이 보는 영어 글자놀이 책에는 에그 플랜트는 등장하지 않았다. 아마도 차에서 파랑과 대화하면서 한번 정도 알려준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유치원 노트에도 적혀 있었다. ‘Joon cleverly suggested eggplant.’
5. 유치원에 너무 오래 있나?
어제 아침에 등원해서 유치원에서 잠시 같이 놀고 있는데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나 유치원에 몇 시간 있는 거야? 굴렁쇠 보다 더 있어? 너무 긴 것 같은데..’
굴렁쇠의 절반밖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설명해 주었고 (자기도 이미 알고 있었는지 웃고 말았다) 내년에 학교 갈 준비도 하고 이곳에서 새로운 친구들 선생님과 적응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알려주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에 본인 스스로 해나가고 있다가도 문득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드나 보다. (나도 싫어하는데 아직 언어적인 부분이 남아있는 아들은 어떻겠는가...) 너무 잘하고 있음을 다시 알려주고 꼭 안아주고 씩씩하게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지난주에는 내년 학교 등교를 희망하는 부모들에게 설명하는 세션이 있었다. 내년 과정은 ‘PREP’이라고 해서 정규과정이라기보다는 0학년으로서 실제 초등과정 이전에 준비하는 기간을 말한다. 교장, 교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기존에 알고 생각한 것 보다도 아이들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많이 고민하고 있는 학교인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세션을 마치고는 파랑과 정말 오랜만에 단둘이 외식을 했다. 그 집이 맛있어서 그랬는지 오랜만의 데이트라 그랬는지 그날 점심시간은 즐거웠다. 여유롭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달라진 우리 세 가족과 잘하고 있다는 서로의 응원, 그리고 앞으로 어떤 면을 같이 힘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눴다.
그렇게 어제 수영 수업까지만 해도 그 좋은 멘탈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급 정신을 놓게 되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 수업을 받고 있는 물의 온도와 깊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당연히 그곳은 어린 유아와 초보자들을 위한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런 곳이 아니면 수영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수영 수업을 더 많이 늘려달라는 것이었다.
수영 수업을 받는 곳에 있는 여러 다른 풀에 들어가는 것을 설명했지만 거부당했고 (깊이와 온도 차이) 타운하우스 단지 내 수영장을 제안했지만 이것도 거부당했다. (깊이와 온도 차이)
결국 낯섦이 싫은 아들은 지금 적응한 그 조건만을 원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 친구인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지만 어쩐지 그렇게만 고집을 부리는 게 싫어서 잔소리를 시작했다. (늘 그렇지만 아들이 이해할만한 수준으로 전달을 하지 못해서 감정만 서로 상하기 마련이다)
그날 돌아와서 아들에게 내 감정과 잔소리한 것을 뒤늦게 사과했다. 물론 덧붙여서 항상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얻을 수 없는 것도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나 중심 잡기가 어려운 내가 참 안타깝기도 하다. 늘 후회와 반성. 4살 아이에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잣대를 들이대다니 뭐하나 싶다.
서로 다른 것으로 피곤한 우리는 평소보다 좀 더 일찍 잠들었다. 미안하고 사랑한다 아들.
어느 비 오는 낮에 아들과 방에서 놀고 있는데 밖에서 어떤 아저씨의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주변에 저런 사람이 없는데 무슨 일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빠~ 숨바꼭질하다가 아이들이 못 찾아서 아빠가 여기 있다고 소리 지르는 건가?’
햐... 기발함과 신선함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그게 제일 적합하겠다. 하하!
이런 깜찍한 아들인데 트러블과 멘탈의 흔들림은 모두 부모, 아빠의 부족함이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