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호주 아빠 육아일기
16/Oct/2019
요즘 종종 불편하다.
아들의 유치원에서 ‘그 아이'와의 일들이 불편하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어쩐 일인지 아들이 여벌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로 하원 하러 온 나를 맞이했다.
‘어~ 오늘은 드디어 물놀이했나 보네?’
즐겁게 물어본 내 질문에 아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무릎에 앉힌 뒤 대화를 나눴다.
‘그 친구가 물을 막 튀겨서, 불편하다고 이야기했는데도 계속했어, 그래서 선생님한테 옷 갈아입혀달라고 했어.’
음... 그냥 같이 놀다가 생긴 일 같은데... 모든 일에는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께 가서 여쭤보았다.
‘선생님, 오늘 이런 일로 불편했다고 하는데요, 혹시 아시나요?’
난 객관적인 선생님의 입장을 듣고 싶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 상황을 당연히 알고 계셨고,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아이’가 아들뿐만이 아니라 많은 친구들에게 그렇게 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아이’에 대해 유심히 지켜보고 있고 다른 친구들이 불편해하면 즉각 조치(놀이 분리 등)를 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선생님도 알고 있는 ‘그 아이’의 과한 행동이 이미 주요 관심 포인트라는 것이다.
돌아오면서 아들에게 불편할 때 잘 표현했다고 칭찬해주었다. 바로 주말이어서 잊혔지만 깔끔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월요일 등원 길. 주말 내내 엄마 아빠와 붙어있던 아들이 떨어지기 어려워했다. (뭐 이건 한국 굴렁쇠에서도 마찬가지니까^^;)
잠깐 같이 놀아주기 위해 유치원을 돌아다녔다. 그 아이가 와서 아는 체를 했다. 아들이 나에게 그 날 불편했다고 그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잠깐 고민하다가 아들에게 다시 말해주었다. 아빠가 이야기하기보다는 다음번에 다시 불편한 일이 생기면 아들이 직접 이야기하면 된다고... 어렵게 떨어지면서 혹시나 지난 금요일 일이 영향이 있을까 싶어서 원장 선생님께 준영이 손을 건네며 말씀을 드렸다.
‘아들이 아직 그 일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나 봐요’
걱정 말라며 상황이 벌어지면 떼어 놓겠다고 하셨다. 하원 할 때 여쭤보니 곧 적응해서 별일 없이 잘 지냈다고 한다.
다음날 화요일 등원 길.
어쩐지 ‘그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안 되겠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 한쪽 구석이 편해졌다. 무리 없이 헤어진 뒤 하원 하러 다시 돌아왔다. 아들을 안아주며 하루 잘 지냈냐고 인사를 나누었다.
어느새 우리 곁으로 그 아이가 가까이 오더니 아들 손에 있는 구슬 같은 것을 본인 손으로 말도 없이 휙 가져가더니 준영이를 안고 있는 나에게 손으로 튕겨서 보내는 것이 아닌가. 구슬은 내 쇄골을 맞혔고 그 작은 아픔보다도 도대체 이 상황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했다.
내게 안겨있는 아들의 등을 맞추려 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우리 쪽으로 보내며 관심을 끌려고 한 것인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나도 불편함을 느꼈다.
결국 그 아이를 불러서 내가 지금 당한 상황과 불편함을 전했다. 그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자리를 피했다. 선생님들이 어려워하는 이유를 간접적인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사실 처음은 아니다. 좀 더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던 굴렁쇠 어린이집에서는 이런 일이 아주 자주 벌어지고 엄마 아빠가 자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 스스로 깨우칠 수 있게 선생님과 부모가 이해와 배려를 통해 지원한다.
아마 지금 내가 크게 당황하며 불안해하는 것은 여기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부모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떤 상황을 초래하고 영향을 끼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파랑과도 상의를 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준영이와 선생님들을 믿고 슬기롭게 잘 대처해 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물론 저 불편함은 유치원에서의 생활의 극히 일부분이다. (작은 가시가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지만 ^^;;)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만들며 커가는 아들을 확인했다.
1.
울먹이며 나와 떨어진 월요일 오전에는 붙어있는 학교 견학을 가는 날이었다. (내년 학교 등교를 위해 이번 TEAM 4에는 익숙해지기 위해 몇 번 더 간다고 한다) 나중에 들어보니 학교 도착해서 준영이가 이랬다고 한다.
‘아임 헝그리’, ‘워터’
나랑 있으면서 울먹였더니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고 한다. 역시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
2.
점심 도시락으로 빵이나 샌드위치를 싸주면 시원치 않다. 싸주기에는 편한데...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준비를 해서 주먹밥을 처음으로 해줬다. 하원 할 때 보니 깔끔하게 다 먹었다. 역시 한국 사람인가 보다.
첫 내 주먹밥을 다 먹어줘서 감사해!
3.
어제는 아주 바쁜 어메이징 한 하루를 보냈다고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사진과 그날 일을 적어서 보내주시는 게 있는데 어제는 다양한 놀이와 활동을 하며 선생님과 여러 친구들과 교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항상 궁금하지만 잘 해나고 있겠거니 믿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소식은 가뭄 중의 단비와도 같다.
나는 사실 그저 아들이 웃고만 있어도 마음이 좋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무서운 표정, 정색 표정 말고 웃으며 지내야 한다 ㅡㅜ)
반성한다. 뭐가 어쨌건 간에 욱하면 안 되었다.
평온한 주일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점심도 잘 먹고 집으로 와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에 글자놀이를 한두 장씩 하는데 이번 주에는 유치원 등원한다고 못했었다. 글자놀이 먼저 하고 놀기로 했다. 어찌 된 일인지 그날따라 집중이 잘 안 되는 준영이가 계속 거슬렸다. 결국 욱하고 말았고, 글자놀이는 중단되었다.
피자를 만들어 먹고 싶다는 아들의 요청으로 다 같이 피자를 만들며 분위기 전환을 노렸다. 만들면 맛있게 먹겠다고 했던 아들이 역시나 만들고 났더니 관심이 없다. 식탁에서 딴짓만 하기에 그만 먹고 내려가라고 했으나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다시 욱했다.
미안한 마음에 기분 좋게 마무리를 하려고 아까 제대로 하지 못한 글자놀이를 조금만이라도 스스로 하도록 유도해보려 했다. (그냥 멈추고 잤어야 했다 ㅠ) 이것도 그다지 기분 좋지 않게 대충 진행되다가 중단했다. 아들을 재우며 이런저런 반성을 했다. (자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경건해지며 죄책감이 몰려든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서 아들에게 사과를 했다.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욱하며 큰소리를 낸 것은 잘못이라고, 아빠가 더 노력하겠다고.
절대 아이는 예쁘게 말을 듣지 않는다는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의 명언이 떠올랐다. 모두 부모의 잘못이다.
1.
그동안 오랫동안 모았던 칭찬 스티커를 다 모아서 상품을 타게 되었다. 하루 종일 유치원에서 무엇을 받을까 고민하던 아들은 하원 하면서...
‘아빠~ 뭐를 받을지 다 생각이 끝났어~’ 라며 반겼다! 하하
종종 가는 장난감 가게에 가서 약속한 금액에 맞는 레고를 사주었다. 이것저것 상상해서 여러 가지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왓에버 박스’였다. 매뉴얼대로 한번 만든 뒤 스스로의 생각대로 가지고 노는 준영이에게는 딱이었다. 그날 5시간 정도 같이 그 레고를 가지고 놀았다.
혼자서 놀아주면 참 좋겠지만^^; 나중엔 같이 놀자고 해도 안 논다고 하니 지금을 감사해하며 견뎠다.(?)
2.
세 번째 수영 수업에서 알맞은 수경을 쓰고 첫 잠수에 성공했다. 목욕탕에서 연습했던 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도 엄청 나아졌다고 놀라움을 전했다. 그날은 럭키하게도 다른 친구들이 없어서 1:1로 교육을 받았다.
마치고 난 뒤 준영이가 ‘아빠~ 벌써 30분이 지났어?’’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아이들의 적응과 학습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3.
마트를 다녀와서 집에서 짐을 다 내려놓았는데 준영이가 아끼는 검은 운동화가 안보였다. 생각해보니 아들이 카트에 벗어던져 놓은 것을 그냥 두고 온 것 같았다. 자기 것은 잘 챙겨야지라고 한 마디를 던지고는 혼자서 차를 몰고 바로 마트로 달려갔다. 약 20분 정도 지났으니 아직 카트를 안 치웠으면 주차장에 있을 것 같았다.
주차장으로 진입하는데 마트 직원이 가져가는 카트 무리들에 어렴풋이 ‘까만 운동화’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근처 비어있는 장애인 주차공간에 차를 대충 대고 바로 달려갔다. 그 사이 그 직원은 이미 카드 모아두는 곳에 넣어두고는 나오고 있었다. 수백 개가 넘는 카트를 정신없이 둘러보았지만 없었다. 다시 원래 카트를 두고 온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그 사이 치웠는지 없었다. 어쩌나 싶어서 여기저기 둘러보며 뛰어다녔는데 못 찾았다.
사람들도 이 놈은 뭐하는 놈인가 하며 쳐다봤다. 결국 포기하고 차로 터벅터벅 돌아오는데... 아까 체크하지 못한 새로운 카트 더미가 보였다. 그 앞쪽에 까만 운동화가 껴서 구겨져 있었다. 환호를 지르며 달려가서 구해왔다.
집으로 달려와서 보니 아들이 나와서 ‘아빠 고생했어, 다음부터 나도 잘 챙길게’ 했다. 나도 한 마디 던진 게 미안해서 아빠도 잘 챙기겠다고 했다. 그리고 ‘까만 운동화’를 건넸다. 많이 좋아하는 아들이 예뻤다. 정말 다행이었다. ㅠㅠ
4.
요즘엔 아들의 말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지난번엔 무슨 설명을 아들이 하고 있었는데 내가 성급하게 대답을 했더니...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아빠~’ (허허 맞아 ㅡㅜ)
글자 놀이를 하던 중에 낙서하는 아이에게 집중하자고 했더니... '아빠~ 글자 놀이인데 왜 못 놀게 해~~’ (허허 맞지 ㅡㅠ)
역시 한국어는 수준급이다.
아들과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니 그 순간순간들이 무척 많아서 풍성함에 좋다가도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다.
아들은 어떤 생각과 기분으로 요즘을 보내고 있을까.
제일 궁금하지만 알기도 어렵고 그 부분은 개인의 자유이니 넣어두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오늘도 잘 지내보자 아들.
사랑한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