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지 않는 꿈은
꿈이 뭐냐는 질문을 살아가며 지금까지 줄곧 들어왔다. 이제 막 자의식이 생기는 유치원 시절부터 학창 시절까지. 취업하기 위한 자기소개서와 결혼 전 상대방의 호기심에도 답해야 했다. 예전에는 명사형의 직업이었다면 요즘에는 동사형인 삶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내 것도 궁금하고 다른 이의 것도 알고 싶다. 미래에 무엇을 바라고 원하며 살고 있는지. 내가 꿈꾸는 게 그럴듯해 보이는지 확인하고 싶은 소망도 있고, 남의 꿈에서 힌트를 얻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서로의 꿈을 물어볼 이유가 없으니까. 자라며 경험한 꿈을 교환하는 세상엔 묘하게 선이 그어져 있었다. 혼자 꿈꾸고 밝히지 않으면 꿈이 아닌 듯했다. 크고 위대하지 않은 꿈은 별로 쳐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럴듯하고 멋져야만 하는 꿈이라는 이상향의 영역이 힘들었다. 누가 물어보면 꿈에 대해 제대로 대답해 본 적이 없다. 있어 보이는 꿈을 꾸며 자신 있게 외춰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난 내보일 게 없었다. 스스로 속이고 싶지는 않았기에 거짓 꿈을 만들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요."라는 그나마 가장 꿈에 가까운 진심을 꺼낼 때마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대답하고도 눈치를 보는 상황은 불안했다. 아름다워야 할 꿈은 내겐 어려운 존재로 남았다.
시간이 많아지고 생각이 늘어나고 나이가 들어가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하고 싶은 것으로 충실하게 보내는 난 정말로 바라고 원하는 게 없는 건가? 지금 무언가 하는 일은 그게 좋아서다. 그리고 더 잘하고 싶어서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싶어서 행동하는 나의 지금은 꿈과는 거리가 먼 삶일까. 꿈을 꾸고 이루고 싶다면 움직이고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꿈에는 미래만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가 빠져있는 꿈은 그저 꿈에 불과하다. 어쩌면 우리의 꿈에는 직접 부딪히고 행하는 지금만 존재하는 게 아닐지. 꿈은 '될 거예요'로는 부족하다. 진짜 꿈은 '되고 있어요'가 맞지 않을까?
미래를 꿈꾸고 바라는 시선보다는 지금의 집중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바라는 나중은 오지 않을 수 있다. 올 수도 있지만 알 수 없다. 많이들 멀리 보고 크게 보라고 하지만 난 모르겠다. 당장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오히려 내 발아래 땅만 보며 온종일 집중해서 걷는 게 좋다. 매일매일 가다가 어느새 도착해 있는 게 좋다. 멀리 있는 산봉우리만 보다가 가까운 주변을 놓치고 싶지 않다. 크고 위대한 꿈을 바라보며 흐뭇해만 하는 건 순전히 가혹하다. 희망 고문처럼 스스로 힘들게 할 뿐이다. 이루는 순간을 상상하면 잠깐은 좋을 수 있다. 하지만 확실치 않은 허상을 즐기는 순간에 흘러가는 귀중한 지금은 어쩔 것인가? 어쩌면 꿈을 꾸는 것은 중독이 아닐까 싶다. 이루어지는 착각 속에 거짓으로 기뻐하며 지금을 잠시 모른 척하기 위한 예쁜 중독.
여전히 지금도 '꿈이 뭐예요'라고 하면 별로 할 말이 없다.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지만, 그게 이거예요 라는 뱉는 게 무색하다. 차라리 '지금 이걸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려고 한다. 당장 하고 있지 않다면 어떤 일도 생기지 않기 때문에. 꿈만 꾸면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루지 못한 꿈은 평생 따라다닌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바로 한다.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다. 매일 꿈을 꾼다는 건 매일 행동하는 걸 넘지 못한다.
'이런 꿈이 있어요. 그 꿈을 이루고 싶어요.'는 딱 한 번이면 된다. 같은 말 반복할 여력이 있다면 차라리 조금 더 움직이겠다. 꿈을 스스로 되뇔 필요도 없다. 이미 행동 안에 담겨있으니까. 꿈을 상기시킬 일도 없다. 일상에 벌써 들어와 있기 때문에. 스스로 이럴 진데 남에게는 더욱 무의미하다. 내 꿈을 남에게 말하고 설명할 필요가 전혀 없다. 도대체 밖으로 보이고 나눌 필요가 무엇일까. 남이 없어서 나아가지 못하는 꿈은 진짜 꿈이 아니다. 남에게 그럴싸하게 보이고 싶은 거짓 꿈에 불과하다.
시작하면서 '오늘부터 무엇을 하겠어요'라며 알리는 경우가 있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좀 더 구속감, 책임감에 몰아넣어 다독이고 채찍질할 수 있기에. 다만 뭐니 뭐니 해도 그런 거 없이 알아서 하는 게 더 좋다. 어느 누가 봐도 실제로 하고 있다면 어떤 선언도 설명도 필요 없다. '매일 운동할 거예요. 매일 쓸 거예요. 매일 책 읽을 거예요. 매일 영어 공부할 거예요.' 어제도 했고 오늘도 했으면 말이 필요 없다. 아무도 모르는 내일 무엇을 어쩌겠다는 것도 필요 없다. 내일이 오늘이 되었을 때 하면 되는 거다.
꿈을 꾸지 않기로 했다. 꿈을 실행할 뿐이다. '내 꿈이 뭐지?'라는 고민은 하지 않는다. 내게도 남에게도 설명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이 꿈이자 삶이다. 살아가는 모습과 꿈이 다르다면 정말 꿈으로 끝난다. 꿈만 꾸다가 마는 거다. 지금의 나와 꿈을 일치시키면 꿈을 따로 꿀 필요가 없다. '할 거예요'보다 '하고 있어요'가 좋다. 그게 진짜라서. 내가 실제로 하고 나서 느낄 때 훨씬 실감 난다. 예전엔 굉장한 꿈을 크게 가진 사람이 마냥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이제는 아니다. 그런 게 있든 없든 이 순간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사람이 최고로 보인다. 꿈을 말하지 않고 직접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위대하고 멋져 보인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자 한다. 꿈이 뭐냐는 질문이 필요 없는 사람. 지금 살아가는 모습으로 꿈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고 삶에 찐득하게 묻어있는 사람. 행하지 않는 허황함을 어설프게 나누지 않는 사람.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나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 실천이 중심이 되는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 누가 뭐래도 지금이 진짜인 내가 되고 싶다. 행동하지 않는 꿈은 꾸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