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하는 진심
공모전 수상자가 발표되면 매번 똑같은 양상이 벌어진다. 상을 받는 사람 중 받을 거라 여겼던 이가 아무도 없다. 하나같이 기대하지 않았다. 그 기대가 희망인지 예상인지 궁금하다. 희망이 전혀 없이 응모할 수 있는지, 예상이 조금도 안 되는 데 왜 지원을 한 건지. 재밌는 건 탈락한 사람도 애초에 받을 거로 생각한 자가 없다. 받지 못할 게 분명한데 무슨 마음으로 참가했을까. 그냥 경험 삼아서?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단언컨대 못 받을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지만, 만약 상을 받았다면 분명히 다른 수상자와 같은 말을 하고 말 것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 앞에서 죽을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지저분한 분위기 속에선 오히려 시원하게 마음을 접고 아예 응모하지 않은 사람이 멋지다. 보란 듯이 마음과 행동을 일치시켰으니까. 특정 경연 무대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해마다 있는 연말 시상식이면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판박이 같은 상황이다. 기대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표현하면 문제가 될 것처럼 "몰랐다. 정말 몰랐다. 꿈에도 몰랐고 상상도 못 했다."며 되풀이된다. 겸손이라는 미덕을 갖추지 못한 자로 치부되길 겁내기 때문일까. 잘났고 받을 만해서 받은 거라고 밉상 맞게 뽐내진 않더라도, 왜 간절히 바라고 원해 왔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지. 누가 '어휴, 저 욕망도 감추지 못하는 저질'이라 손가락질이라도 하듯이.
이 사회의 별종 같은 나는 언제나 적절한 희망과 예상을 섞은 기대를 가지고 임한다. 되고 싶다는 간절함과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원하지 않는데, 가망이 없는데 소중한 시간과 기력을 쏟을 이유가 무엇인가. 내일이 더 좋은 날이 되길 바라는 건 본능이다. 본능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이지만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건 챙겨가고 싶다. 누군가는 그럴듯한 이유를 댈 수도 있겠다. 돌아올 수 있는 실망 때문에 드러내길 꺼린다고. 근데 표현하지 않고 숨긴다고 바라는 마음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감춘 채 아닌 척하면 최소한 남에겐 들키지 않아 편하다고 설명해도 잘 모르겠다. 자기가 뻔히 아는데 굳이 그런 짓을 왜 하는지. 솔직하기 어려운 게 너무도 많은데 기대마저 빼앗기면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할까. 바람을 꽁꽁 묶은 채 무표정으로 이어지는 행렬엔 끼고 싶지 않다.
일의 결과가 공개되면 꼭 등장하는 다른 유형도 있다. '열심히 안 했는데 된 사람'. 여기 멘트도 고정이다. "많이 준비 못해서 내심 포기하고 있었어요!" 믿지 않는다. 포기 한 사람이 발표가 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동네방네 알리는 심보부터 자신의 노력을 최소화하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습까지 전부 다. 상황이야 어쨌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가. 열심히 했다고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군다. 열중한 스스로가 밝혀지면 민망해질세라 어떻게든 조금밖에 하지 못한 걸로 포장한다. 있는 그대로 모든 걸 걸고 이루었다고 하면 억울해지는 모양이다. 거침없이 풍자된 노오력처럼 진심 어린 정성도 쉽게 무기력한 발버둥으로 여기기 때문일까. 뻔한 속고 속임이 지겹고 애처롭다.
물론 남보다 잘난 사람인 체하고 싶은 심산도 잘 안다. 부족한 정성으로 성과를 내보이면 괜한 우쭐감을 즐길 수 있으니. 이미 된 사람의 겸손을 가장한 천재 코스프레는 흔한 풍경이다. 겉으로는 우연과 행운에 공을 미루지만, 그래도 나니까 가능했다는 우월감 가득한 눈빛까진 바꾸지 못한다. 결과론이 조장하는 일방적 상황은 익숙하다. 위에서 내리꽂으며 얻는 이룬 자의 쾌감은 들인 노력이 적을수록 커진다. 그 맛에 나에게도 남에게도 온 힘을 다해 눈가림한다. 오히려 일할 때보다 더 열심히. 궁금해지는 건 만일 안 되었더라면 지었을 표정이다. 쿨하게 제대로 못 한 내 잘못이니 할 수 없다며 돌아섰을까? 설마.
뭐든 하면 열과 성을 다한다.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했으면 그렇게 한다. 옆에서 보면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내가 찜찜해서 그런다. 안 한다고 정하면 일체 관심을 끊지만, 하자고 마음먹은 일엔 최선이다. 나의 열심을 굳이 숨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진실을 왜곡하는 헛된 수고를 피한다. 일에만 집중한다. 잊을만하면 찾아와 감질나게 하는 성취를 맛본 후에도 변함없다. 되고 나서도 쓸데없이 애씀을 줄이는 짓은 외면한다. 오히려 부각하는 편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꾸준히 계속해왔는지. 과거의 고통을 자랑하려는 의도는 없다. 천재이고 싶은 바람도 없고, 뽐내며 위에 서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필요한 건 다음 날도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지 남의 우러러봄이 아니니까. 굳이 바란다면 차라리 누구나 하다 보면 된다는 걸 보이고 싶다. 나도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나라서 가능했다는 자만심은 어쩐지 독이 되어 돌아올 것만 같다.
품는 기대와 행하는 최선에 진심이다. 진정으로 되길 바라며, 되고자 할 수 있는 걸 다 한다. 좋아하고 원하는 일에 열의가 없다면 언제 그럴 수 있을까. 몰두하는 일 없이 흐느적거리기만 할 거면 안 사는 게 낫다는 신념을 가진다. 적당하고 편한 게 최고라며 “그냥 대충 해~“라고 던지는 대충 떠진 눈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끔 진심인 사람에게 진심이 아닌 척 던지는 말은 좀 싫다. 남들 하길래 따라 해봤다는 둥, 참가에 의의를 둔다는 둥, 진작에 마음을 비웠다는 둥. 그럼 만일 당선되면 대충 한 거니까 반납하고 다음에 진짜로 다시 해볼 텐가? 이런 식이라면 되고 나서도 이렇게 말할 게 뻔하다. “허허. 그까짓 거 발로 대강대강 휘갈겨서 낸 건데 돼버렸네요.” 왜 꼭 그런 사람 어딜 가도 있지 않은가. 되고는 싶은데 안 되면 상처받고 창피하니까 미리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 놓는. 이들은 되려 나중에 떨어져 절망하고 있는 진심의 사람을 위로한다. 자기는 건성으로 해서 마음 멀쩡한데 너는 목매고 있었던 만큼 속상하고 힘들겠다며.
진심으로 임하는 자세도 실력이다. 완전히 자신을 던지며 덤벼들지 못하는 건 부족함이다. 부러 선을 넘지 않았다는 못난 자존심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이런 자들이 성심을 다한 우리에게 뭘 그렇게 애걸복걸 난리냐고 할 자격은 없다. 뒤에 숨어 아닌 척하기보다는 솔직한 게 좋다. 뜨겁게 느껴지는 진심이 미지근한 가식보다 매력 있다. 전력을 다하고 나면 어떤 결과를 마주해도 깔끔하다. 성공하면 말할 것 없이 기쁠 테지만 행여 실패해도 여한이 없다.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제대로 안 하고 짓는 표정과는 결이 다르다. 스스로 덜 했다면 재지 말고 좀 더 해볼 걸 같은 후회만 남는다. 할 거 다 해봤는데 안 된 거라면 깨끗이 인정할 수 있다. 끝난 게임 괜히 돌아보지 않고 다음에 다시 해보자는 오기가 생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때 필요한 건 질질 끌리는 한탄보다는 무모한 배짱이 아닐까?
수많은 시작과 과정, 환희와 좌절이 앞으로도 계속 펼쳐질 테다. 한결같이 부끄럼 없이 진심으로 바라고 움직이겠다. 그렇게까지는 바라지 않는 척, 대충이라는 방패를 들고 웅크리며 살기는 싫다. 여지를 남겨 숨을 자리를 만들기보단, 한 점의 기운이라도 모아서 보태고 싶다. 기대는 욕심이 아니고, 최선은 무리가 아니다. 삶을 사랑하는 투명한 태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