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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y 07. 2022

화장실은 집 안에 있어야 한다

산속 작은 집 여행 - 호주 물룰라 밸리

이번 여행으로 명백해졌다. 우린 캠핑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야외에서 생활하며 지내는 일은 우리 것이 아니었다. 장비와 물품을 챙기는 부지런함의 부족도 하나의 이유가 맞다. 하나 더 큰 이유는 우리 외의 생명체와 함께 지내는 것을 힘들어해서다. 특히 날 좋은 날에 숲 속 가득한 우리보다 작디작은 녀석들은 괴롭다. 돌아와서도 온몸에 남은 그들의 흔적이 뚜렷하게 간지럽다. 이것 빼곤 모두 좋았던 여행이었다. 다른 세상처럼 편안하고 안락하게 늘어져있던 어느 주말을 돌아본다.


멀지 않은 분홍 코티지(Cottage)에 도착했다. 인적 없는 시골이라 그런지 이미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 보지 못한 광경에 헉하고 놀랐다. 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곳이 아니었고 꽤나 정신없지만 단정해 보였다. 침대 4개에 난로까지 완전히 새로운 체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설명을 살펴보니 100년 전에 초기 정착 가족이 지은 집이라고 했다. 지금의 게스트 하우스로 바뀐 것도 벌써 30년이 되어 가고 있는 전통과 유서가 깊은 장소였다. 그런데 뭔가 빠져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화장실이 집 안에 없었다. 이건 꽤 큰 일이었다.



Mango Hill Guest House




러블리한 주인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었다. 열쇠가 있냐고 물으니 여긴 문 잠그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그렇구나 하고 추천받은 타이 음식점에 예약을 하고 나섰다. 차로 3분 거리였고 식당은 분주해 보였다. 마련된 우리 자리에서 여유롭게 맛난 음식을 먹었다. 친절했고 깔끔했다. 저녁 이후 일정은 정해져 있었다. 아들이 최근에 빠진 '모노폴리' 한판! 그날은 서로 잘 몰라서 규칙을 더듬거리다 끝났다. 우리 답지 않게 조금 늦게 잠이 들었는데 옆 코티지에 대형 손님이 들어섰다. 아이들이 꽤 많은 가족이었는데 한밤중에 시작된 물놀이는 꽤나 소란스러웠다. 정해진 패턴이 벌어지면서 마무리되었다. 신나게 떠들고 놀기 - 한 명 울기 - 부모의 조정 시도 - 한 명 억울함 - 부모의 커다란 혼냄으로 자리 정리.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새벽에 잠깐 깼다. 참다 참다 어쩔 수 없이 두려운 배출 의무를 받아들였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발을 내딛자 마다 뭔가 꽤 덩치 있는 녀석이 후다닥거렸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폰 후레시로 비추어보니 주먹만 한 두꺼비였다. 제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아 달라고 빌며 숨도 쉬지 않고 냅다 다녀왔다.



Muang Thai




아침 알람이 필요 없었다. 어제 혼나고 들어간 옆집 어린 친구들은 새벽부터 시끌벅적했다. 추운 아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놀이를 감행하는 젊음이 놀라웠다. 조용한 아침을 위해 재빨리 빠져나와 차로 3분 거리 읍내 상가로 향했다. 고를 가게가 없어서 선택이 필요 없는 게 좋았다. 전형적인 메뉴였지만 맛나고 친절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울창한 나무에 뒤덮인 놀이터가 있어서 들렀다. 우연히 우리 동네에서 이용하던 이동식 라이브러리를 만났다. 마침 여행 때만 보는 넷플릭스가 없다고 서운해하던 아들의 소원을 풀 수 있었다. 원하는 만화 DVD를 잔뜩 빌려서 돌아왔다.



Cafe Mooloolah




고르는 여행 숙소의 필수 조건은 바로 욕조다. 여긴 아주 스페셜하게 야외 자꾸지가 있어서 선택했다. 거품을 풀고 한 바탕 놀았다. 아기 때나 지금이나 아들은 행복해한다. 몸을 말린 뒤 어쩌면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꼼꼼하게 준비했다. 챙겨 온 운동화를 신고 조금 멀리 이동했다. 그래 봤자 차로 5분 거리였지만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묶이지 않은 크고 작은 말들이 한가로이 늘어져있었다. 호기심 반 불안함 반으로 우리 손을 놓지 않던 아들이 결국 혼자서 해냈다. 우리는 각자의 말에 올라타고 숲 속을 거닐었다. 오르락내리락 거리기도 했고 가끔 말들이 심술을 부리며 멈춰 서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무사히 느긋하게 말타기를 마쳤다. 뜨겁고 단단한 녀석의 촉감이 아직 남아있는 듯하다.



Mooloolah Valley Riding Centre 




마지막 날 밤이 지고 있었다.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였던 '화덕 피자'를 즐길 시간이었다. 시끄럽던 옆집 대가족을 그곳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다. 역시나 아이들이 5명이었었다. 피자를 직접 만들어서 각자 한판씩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주 가볍게 준비해 간 마트표 완성품 피자를 올려두었다. 우리의 핵심은 포일로 감싼 옥수수와 감자였다. 엄청난 열기로 순식간에 음식이 익어버렸다. 호호 불며 먹고 나누며 배를 채웠다. 곧 한계가 찾아왔다.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벌레와 모기를 참는 게 더 이상 어려워졌다. 밤이 깊어가는 산속의 유일한 불빛 속에 모여든 그 녀석들은 점점 왕성해졌다. 우린 음식이 동이 나기 무섭게 집안으로 도망쳤다. 이따가 캠프파이어에 꼭 오라는 옆 가족의 권유에 대충 대답하면서. 허겁지겁 씻고 나서 아들을 위해 다시 나갈까 했으나 아들도 원하지 않았다. 어두운 곤충 밭에 나갈 생각을 하니 아찔하긴 했다. 우리 스타일대로 안에서 놀며 쉬다 잠들었다. 떠나는 아침이 되어 아쉽기도 했지만 문명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두근댐이 더 컸다. 정확히는 집안에 있는 화장실이 그리웠다. 짐을 서둘러 차에 넣고 실내 변기를 찾아 돌아왔다. 이번 생에 캠핑은 없을 예정이다.



* 아빠로서 아들을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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