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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y 25. 2022

아이디어는 어디서 파나요?

<생각하기의 기술>

누구 좋은 아이디어 없나?
어디 가서 기발한 아이디어 좀 찾아와 봐!

회의 시간에 이런 말이 나오면 온몸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내는 다른 동료들을 보면 더더욱 그랬다. 그게 좋든 나쁘든 간에 무언가 바로 떠올라서 꺼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와는 차원이 달라 보였다. 평소에 어떻게 지내길래 나라면 죽어도 생각지 못할 이야기를 줄기차게 할 수 있는지... 이렇게 회의 자리에 던져진 작은 아이디어들은 조합되고 선별되고 분류되면서 계속 진화했다. 처음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졌지만 그 처음이 있었기에 원하는 답을 찾은 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 시작이 핵심이었다. 난 그 시작을 너무도 하고 싶어 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난 창의력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다. 아마 누가 가장 멀리 있나 시합을 하면 세 손가락에 꼭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것도 창의력 가득한 사람들이 곧 더 멀리 떨어지는 방법을 찾으면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내가 이리된 것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만들어진지 모를 오래된 습성 때문이다.


우선 상상, 공상 같은 추가적, 부가적 생각을 하고 살지 않는다. 딱 지금 해야 하는, 하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 외에는 온몸과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 흔한 수업시간 낙서도 평생 해본 적이 없다. 수업을 듣거나 자거나 둘 중 하나지 다른 것을 꿈꾸며 끼적거린 기억이 없다. 이게 가장 효율적인 삶의 방법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신념이 크게 작용했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취향이 하나 있는데, 바로 '매뉴얼 사랑'이다. 물건을 사면 들어있는 꼭 들어있는 설명서를 읽어보는가? 난 물건을 만지기 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 다음 액션으로 나서지 못한다. 스스로 살펴보고 생각하는 재미보다는 누군가 마련해 놓은 안전하고 편한 길을 택한다. 다른 일을 대할 때도 꼭 그러하다. 규정과 규칙에 맞게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짜인 정돈감을 좋아한다. 크게 뛰어나진 않지만 크게 벗어나거나 실패하지 않기에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따져보면 매뉴얼, 즉 다른 이가 정해놓은 틀 밖으로는 생각하기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새 물건을 뜯고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매뉴얼이며, 그 매뉴얼이 생각보다 부실하면 불안해한다. 물건을 들여다보고 탐구하며 알아보기보다는 상자 구석에 상세한 버전의 다른 매뉴얼이 있지 않을까 뒤져본다.


창의력을 철저하게 막는 방법들로 늘 무장해왔다. 이런 내게 직장 생활의 창의력을 요구하는 '아이디어 찾기'는 최고의 고역이었다. 회의 중에 돌아가며 자신의 것을 선보이는 시간은 매번 인생의 고비를 넘는 기분이었다. 소문으로만 들리는 '아이디어를 낼 때까지 골방에 가두기'는 웃고 넘길 거리가 절대 아니었다. 다행히도 채택된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데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근근이 회사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다. 중간중간 나와 다른 사람들을 기웃거렸지만 딱히 건져낸 건 없었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그런지 별 특이점을 발견하진 못했다. 다를 게 없는데도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막힘없이 끊임없이 내보일 수 있는 그들이 그저 신기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진 것은 책을 읽기 시작한 후였다. 아이디어 내는 법, 창의력 키우는 법처럼 나와 거리가 먼 책들을 여럿 읽었다. 대부분 처음부터 접근방식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자기 자랑으로 끝나는 것들이 많아서 실망이 많았다. 그러다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꽉 막힌 내 머릿속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책을 만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이 책의 내용을 거의 다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아이디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담은 서문이 또렷이 남아있다.


'바닥 모를 창의력의 우물?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절망하지 말기를. 이 책에 나오는 만화들은 원래 백지였다.'


한 방 맞은 듯했다. 뭔가 단숨에 해결되는 무언가 있을 줄 알았다. 꽉 막힌 창의력의 울타리만 거둘 수 있다면 콸콸 흘러나오는 줄 알았다. 모든 일은 똑같았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리저리 쌓았다 허물었다 조금씩 해나가는 것뿐이었다. 계속 고민하고 반복하면서 만들어가고 쌓아가는 것이 창의력을 기르는 방법이고 그것이 유일하게 아이디어를 내는 능력이었다.


그 후로 오히려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엄청난 비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도 충분히 해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젠 이루지 못할 욕심을 내지 않고 남들은 어쩌나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필요한 게 있다면 천천히 고민하고 떠오르는 게 있다면 적어둔다. 그렇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가 만들어져 있다. 혹시 예전의 나처럼 엄청난 '생각하기의 기술' 같은 것을 찾고 있다면 이 만화책을 스르륵 넘겨보기를. 그보다 더 귀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읽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생각하기의 기술 (The shape of ideas)' (그랜트 스나이더) - 2018 완독


*사진 출처 : <생각하기의 기술> 윌북


쉽게 쉽게 읽었지만 생각하는 것과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하지만 할 수 없는 건 아니라는 것도 얻었다. 깊게 남은 저자의 서문에 공감하며 책을 닫는다.


어느 날 바닥 모를 창의력의 우물을 발견하리라 꿈꾸면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간절히 찾는가? 이따금 아이디어 모색을 완전히 포기하고 안락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가? 언젠가 다른 아이디어가 없을까 두려운가? 이 책은 이런 고민들을 해결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바닥 모를 창의력의 우물?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절망하지 말기를. 이 책에 나오는 만화들은 원래 백지였다. 우연히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나는 매주 적어도 한 장 짜리 만화를 그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머리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으려고 자주 스케치북을 들고 다닌다. 아침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커피를 마셔대고, 작업대에 앉은 채 어렴풋한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보일 만한 장면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신이 창의력을 발휘할 때, 이 책에서 통찰력을 얻으면 좋겠다. 창작의 애환을 누릴 수 있기 바란다. 무엇보다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당신에게 이 책이 격려가 되기를.



읽고 남는 건 받은 질문과 했던 고민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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