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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Sep 01. 2022

따로 또 같이 자라기

함께한 시간의 흔적

언젠가부터 아들에게 눈을 두지 않아도 걱정이 안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는데. 어린아이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혼자서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뱃속에 품고 있는 게 낫겠다는 말을 실감했었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슬그머니 변했다. 어두컴컴한 밤부터 달라졌다. 잠자리에 필요한 게 많은 아들은 준비가 오래 걸린다. 읽을 책, 인형 친구들, 애착 이불 등등. 전엔 하나부터 열까지 가져다 달라고, 아니면 같이 가자고 부탁했었다. 불 꺼진 방 밖은 무서우니까. 요샌 "나 이거 가지러 다녀올게."라며 훌쩍 나갔다 들어온다. 또 엄마나 아빠 없이 잠들지 못했었는데, 가끔 볼일이 생겨 잠시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그럼 나 먼저 잘게."라며 눈을 감는다. 아침에 눈을 떠도 혼자서도 잘해요 상황은 이어진다. 새벽에 글 쓰러 나간 내가 곁에 없으면 침대에 눈을 반쯤 뜬 채로 "아빠! 이리 와줘!"라고 외치던 친구는 이제 없다. 벌떡 일어나 내게 와서 "굿모닝! 나 내려가서 책 읽을 게~"라고 인사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한국에서 온 만화책으로 즐겁게 세상을 탐구 중이며, 아마존 킨들로는 킬킬대며 아동 전자책을 읽는다. 학교 갈 준비도 척척이다. 교복으로 갈아입고 세수하고 양치하고 로션을 바른다. 기특하게 앉아서 소변도 보고 있다. 오랫동안 아빠가 직접 보여주고 설명해주니 저절로 해보려 한다. 물론 급할 때는 서서 하는 게 빠르다는 이유를 대며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적응 중이다.


모든 걸 다 혼자서 하면 정말 편하겠지만, 여전히 남겨진 부분은 확고하다. 바로 '놀이'. 하루 종일 영상을 보여주고 전자게임을 하게 할 게 아니라면 아이와 놀아주는 역할은 부모의 최우선 항목이다. "아빠, 같이 놀자~"를 신호로 그날의 함께하는 오락이 시작된다. 커버린 아들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정해져 있어서, 난 그저 열심히 참여하면 된다. 그림 그리기든 레고 만들기든 인형 놀이든 알 수 없는 역할 놀이든 뭐든 설명을 잘 듣고 최선을 다하면 아이가 나와 잘 놀아준다. 괜히 내 자랑을 하나 해보자면, 얼마 전에 아들이 엄마랑 놀다 나를 불렀다. "아빠, 나랑 같이 놀자. 엄마가 놀 때 딴짓해!" 집중해서 놀지 않으면 바로 알아챈다. 파랑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는 걸 알지만, 밉보이지 않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게 좋다. 한 번은 저녁에 할 일이 있어 책상에 앉아 있다가, 아들의 놀자는 요청을 몇 번 미루었다. 결국 놀지 못하고 자고 일어났는데, 하필 다음날 아침에도 놀 시간이 없었다. 며칠 뒤 어질러진 방 정리를 해야 한다고 알려주는데, 갑자기 아들이 서운하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아빠는 나랑 노는 걸 미루면서, 나한테만 바로 하라고 해." 아차 하며 깨닫곤 안아주고 사과하고, 같이 놀았다. 자주 잊는다. 나를 찾는 아이가 언제 갑자기 사라질지 모른다는 걸. 내가 언젠가부터 부모님을 찾지 않았던 것처럼.





최근 아들의 최애 놀이는 '축구'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열성적으로 즐긴다. 내가 어릴 적 이맘때쯤 그랬는데, 쏙 닮았다. 등하교 길에 아들과 다니다 보면, 모르는 친구들이 아들에게 인사를 많이 한다. 다들 쉬는 시간에 함께 축구하는 팀메이트란다. 학년도 반도 다르지만 취미가 같다는 이유로 친근함이 넘친다. 골을 넣고 제각각 세리머니도 한다는 데 깜찍하다. 토요일에 참여하는 축구교실에서도 쑥쑥 성장 중이다. 좋아하면 늘 수밖에 없나 보다. 제법 공을 다루며 방향 전환도 자유자재다. (날 따라 하는 거라고 믿었건만, 학교 친구란다.) 한 번은 축구 선생님께서 아들이 원하면 다음 클래스(좀 더 형아들)에서 수업을 받아도 된다는 제안을 해주셨다. 그만큼 눈에 띄는 실력이다. 가끔 의견이 달라도 당차게 표현하고, 부딪히면 미안하다고 말하며 함께 지내는 법도 배운다. 이제 내 걱정은 오직 '부상'이다. 몸이 커지면서 다칠까 봐 걱정이다. 아슬아슬하게 넘어진 수업을 마치고 내 주특기 '일장연설'을 시전 했다. 차 타기 전에도, 운전 중에도, 차에 내려서도 계속. 나중엔 아들이 웃으며 "아빠, 이게 몇 번째 하는 소리인 줄 알아? ㅎㅎ" 바로 미안하다며 입을 닫고 아들을 믿어줬다. 그 이후 조심하며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게 현저히 줄었다. 내 말을 들어준 아들 덕분에.


다 컸나 싶다가도 여전히 아이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햇살이 따가운 호주답게, 학교에 모자를 꼭 가져가야 한다. 없으면 야외활동을 할 수 없다. 어느 날 아침, 모자가 사라졌다. 학교로 향하는 아들은 불안 초조, 동공 지진 난리였다. 이런 모습이 오랜만이라 당황하면서도 짠했다. 결국 부랴부랴 새것을 사서 가져다 주곤 상황이 종료되었다. 처음 멀리 버스 타고 가는 견학 전날 밤, 아들은 불안해했다. 다음날 아침에 지각해서 버스를 놓쳐서 못 갈까 봐서. 그럴 만도 한 게, 우리는 항상 수업 시작 시간에 겨우 도착한다. 학교에서 권장하는 10분 전 도착을 일 년에 몇 번 못 지킨다. 시간 개념이 생긴 아들은 충분히 버스를 못 탈까 봐 걱정할 수 있었다. 견학 날 아침 아들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교복을 입고 우리 부부를 기다렸다. 아이다운 모습에 한 껏 웃었던 날이다. 아들의 부지런함 덕분에 즐거운 견학을 무사히 다녀왔다. 모두의 예상처럼 그다음 날부터는 다시 지각 모드로 곧장 돌아왔지만.


아이에게 자아가 생기면서 취향과 고집이 꼿꼿해지는데, 옆에서 지켜보면 재미난 일이 많다. 가지고 있는 인형 중 '토토로, 피카츄, 마리오'가 일본 만화인 걸 알게 되더니, 김치 먹고 한국사람 되라고 밤마다 강요하는 해프닝은 시작에 불과하다. 방귀 소리와 냄새가 강해지는 아들에게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사람은 모두 방귀를 뀌는 거라며 당당하게 설명하던 아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가 뀐 걸 솔직하게 이야기하냐고 물으니... "아니, 난 자리를 피해서 다른 친구가 오해받아. ㅎㅎ" 말과 행동이 다른 건 어른 아이 구분이 없으니 넘어갔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큰 축제에 놀러 가서, 아들에게 호기롭게 인형을 뽑아 주겠다며 큰 소리를 쳤다. 진지한 표정의 아들은 "아빠, 안 될 수도 있으니 너무 당당하게 말하지 마."라고 힘을 빼놓았다. 결국 실패했고, 불쌍한 내 표정을 본 주인께서 몰래 인형을 아들에게 주셨다. 태어나 처음 파마를 받은 아들은 요즘 양배추와 브로콜리 사이의 매력을 풍기며 다닌다. 학교 친구들의 반응이 두 가지로 나뉜다고 전했다. 바로 멋지다고 하면 진짜 칭찬이고, 천천히 멋지다고 하면 자길 기운 내게 하려는 멘트라고. 푸하하. 해마다 돌아오는 좋아하는 캐릭터로 변신하는 날은 아들의 단호한 결정으로 진행되었다. 바로 '마법 천자문'의 '혼세마왕'. 또다시 파랑의 역작이 탄생했다. 계속 잘해주면 점점 감당이 안 될 텐데라며 나만 혼자 속으로 안타까워했다.





아이가 이만큼 커간다는 건, 시간이 그만큼 흘렀다는 말이다. 지나간 시간은 여러 흔적을 남기는데, 나의 경우에는 꿈으로 몇 번 다가왔다. 한 번은 파랑이 바로 내 옆에서 헌팅을 당했다. 날아갈 것 같은 미소로 내게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며 으스대는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뭐라 한 적도 없는데 왜 이러는 걸까. 다른 한 번은 내가 출근을 했다. 회사에 멀끔한 옷을 입고 건물로 들어가 가야 할 곳을 찾아 걸었다. 알고 보니 같은 곳에서 일하는 파랑에게 어떤 물건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였다. 어쩔 수 없이 파랑 옆 자리의 회사 선배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 장면까지, 예전 어느 날과 닮아 있었다. 파랑은 퇴사했고, 난 휴직 중인데 도대체 웬 회사 꿈일까. 2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혹시 기억하냐고 아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의외로 선명한 추억을 가지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댁에 들어가면 현관에서 본인을 부웅 들어서 안아주던 장면을 그려주었다. 가보지 못한 그날의 죄송함을 가슴에 묻고 있었는데, 아들의 예상 밖 이야기에 꿈틀 했다. 이번 연말엔 아버지를 만나러 한국에 가야겠다. 지금 우리에게 불어온 기적을 타고.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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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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