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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Oct 09. 2022

평범의 타락

놓치기 싫은 상대적 우위

"으아, 오늘 정말 춥다! 기온은 그렇게 낮지 않은데 체감온도가 장난 아니네. 넌 많이 추워 보이는데 괜찮아? 옷 더 두툼하게 껴입어야 하는 거 아냐?"


한겨울에도 땀을 자주 흘려 손수건이 필수인 난 하나도 안 춥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괜찮다. 시원하니 좋은 날씨다. 아무리 춥지 않다고 해도 믿지 않는 상대방의 의심 서린 눈빛이 오히려 싸늘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 아무렇지 않다는데. 말 그대로 내 몸이 느끼는 추위가 크지 않은데 거짓말을 할 수도 없지 않나. 숫자로 명확히 표기된 온도 앞에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보며 괜스레 세상을 떠올린다. 이 세계에 절대적인 무언가가 정말 존재하는지.


철없는 시절의 창대한 꿈은 조만간 고이 접혀 아담한 모양으로 귀결되곤 한다. 크고 작은 다양한 좌절과 실패를 경험한 뒤 머무는 단계인데, 소리도 밋밋한 '평범'이다. 그저 평범하게 지내고 싶고, 알고 보니 그게 제일 어렵다며 소박한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먼저 인생 한 바퀴를 돌고 온 부모도 몰래 짠 듯 똑같은 각자의 뜻을 굳이 따로 전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평범하게만 살아달라고. 너도나도 평범한 삶을 꿈꾸고 권하는 가운데 혼자서 머리를 갸우뚱거린다. 평범이라는 절대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이느라. 도대체 얼마가 적정한 걸까. 100점 만점에 50점? 아니면 70점? 근데 점수 측정 기준은 또 어떻게 되는 건지. 수학 주관식 문항조차 정답 풀이 과정을 토씨 하나까지 외우며 공부하던 평범한 학생 출신은 슬기롭게 풀어나갈 재간이 없다.


답을 모르겠으면 일단 문제 탓을 하고 본다. 권위 있는 수능 문제도 출제오류가 해마다 발생해서 논란이 되는 형국이니. 문제 제기 방향은 나름 날카롭다. 평범은 절대적일 수 없다며 덮어놓고 지나간 핵심을 겨냥한다.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 없이 보통이라 부르며 만인이 바라는 이 상태는 홀로 설 수 없다. 우수하지도 열등하지도 않으려면 위아래에 남을 배치해야만 성립한다. 누구보다는 못살지만, 누구보다는 잘살아야 마음이 놓이는 위치를 좇는 셈이다. 누구나 원하면 이 정도는 누리며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치열한 경쟁을 피해 적당히 지내려는 타협은 사실 눈가림에 불과하다. 결국 나를 다른 이들과 줄 세워보고, 그리 못나지 않은 '중간'에 머물고 싶은 욕망을 아닌 척 포장해 놓은 얕은수다.


고상하게 한 발 빼지만 그래도 가운데서 밀려나긴 싫은 마음. 여기엔 생각보다 복잡한 욕심이 숨어있다. 남들만큼만 살고 싶다는 의지는 남들 하는 건 다 하겠다는 인생의 모자람에 맞서는 거부다. 과한 모양새만 피할 뿐 가짓수는 빠지지 않고 챙겨가겠다는 자세. 잘난 이들 보단 부족해도 괜찮다며 검소를 내세우지만, 동시에 못난 이들 보단 비싸 보이겠다는 고집을 숨기지 못한다. 쉽게 말해 상대적 열위에 굴복하는 대신, 나보다 못한 절반도 항상 존재하기를 바라는 상대적 우위를 꽉 잡고 놓치지 않는다. 누가 봐도 없어 보이는 신세는 온몸으로 밀어낸다. 궁핍해서 쩔쩔매며 힘들어하는 부족함에 질색하며. 경쟁과 비교에는 뜻이 없다며 외친 구호, '평범'에는 아래를 보며 느끼는 우월감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쉬워야 할 것 같은 평범하게 살기는 상대적 위치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다. 스스로 정한 게 아닌 남이 늘어놓은 기준을 따르느라. 어제까지 만족했던 중간이 모자라 보이면 마음이 바쁘다. 밖에서 보기에 모양이 빠져 보이면 채워 넣느라 온 힘을 쓴다. 안심하며 자고 일어났는데 못 보던 남이 가진 걸 새로 발견하면 다시 시작. 시장을 선도하는 마케터는 평범 추구형 소비자의 미묘한 심리를 제대로 이용하며 승승장구한다. 하나씩 다 가지고 있고 안 해본 사람이 없다면서 지갑을 쿡쿡 찌르며 카드값을 슬그머니 빼 간다. 죽어도 중간 아래는 가고 싶지 않은 본능적 방어 기제를 살살 작동시키며. 나만의 기준을 잡지 못하고 외풍에 이리저리 날리느라 어려운 상황은 계속된다. 거한 걸 바라고 사는 것도 아닌데 우리의 삶이 늘 괴로운 이유다. 디자인과 사이즈가 계속 바뀌는 옷에 변하지 않는 피부색과 체형을 맞추느라.


굳게 믿고 있던 평범의 타락을 보며 세상을 채우는 다양한 표현에 절대성을 가진  없다고 의심해본다. 좋고 싫음도 명확해 보이지만 따져보면 싫은 것보단 좋고, 좋은 것보단 싫은 상대적 느낌이 아닐까. 나로선  부지런한 하루를 보냈지만, 성실 끝판왕이   한없이 게으른 베짱이로  수도 있다. 가진  전혀 없는 자가 보기엔 남부러운  없는 중산층도, 부자에겐 하층민으로 비칠 테고. 내겐 소중한 성공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에겐 실패나 다름없는 과정을 자기 위안 삼느라 애쓰는 모습일지도. 잘생겼다는 흔한 말도 천차만별이다. 일관된 잣대가 적용된다면 수많은 커플의 탄생을 어찌 설명할  있을까. 못생긴  참고 만나는  아니라면 말이다. 못생긴 사람 중에 가장 잘생긴 사람이란 엉뚱한 말을 이해하려 꼼꼼히 둘러보다간 목이 돌아갈 지경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끝없이 달라지는 온갖 허상에 둘러싸인 우리. 알면 알수록 허망하게 갇힌 기분을 떨치기 쉽지 않다. 평범을 추구하는 게 어차피 삶의 고난을 불러일으킨다면 아예 반대를 고려해본다. 평범의 반대말은 최고, 최선, 독보 뭐 이런 걸까. 내면을 살펴보니 꼭 앞선 자리보다는 나만의 자리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누구보다 앞이나 뒤가 아닌 나를 위한 유일한 위치를 선호한다. 평범을 반대쪽에서 바라보니 숨겨둔 내적 갈등이 여실히 드러난다. 중간에 파묻히고 싶다는 욕구는 뻔하고 지루한 삶과는 다르다. 고만고만하게 남과 같아 보이길 원하지도 않는다. 고유하고 독특한 이름으로 살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름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이라 평범이라는 가면으로 감추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 크게 바라는 거 없이 조용히 지내고 싶다며. 그저 이름만이라도 잃지 않도록.


평범으로 퉁쳐버리는 인생 목표는 슬프다. 각기 바라는 특별함을 포기하고 남들 눈에 없어 보이지만 않으려 애쓴다. 내 특징은 이거라 희귀한 존재라고 설명하기보다는 쟤보단 좀 더 가졌어라고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가진 게 서로 다르지만, 굳이 공통 잣대에 욱여넣고 억지로 순위를 매기는 통에 살펴볼 틈이 없다. 너와 내가 서로 유일무이하다는 걸 깨닫고 인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위아래로 보는 세계관을 부수고 옆으로 펼쳐 볼 수만 있다면 중간은 사라지고 말 텐데 안타깝다. 각자의 희소성을 뽐내는 세상에선 평범이 적힌 명함은 쓸모가 없어진다. 비교의 본능은 제어되고 그토록 원하던 자신만의 무엇을 찾고 만들며 살아간다. 모두 행복한 천국은 그럴 모습이 아닐는지.


없는 상대도 만들어 우열을 따져보는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가 쓰인 '상대성이론'.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알고 있는 사람도 없는 어려운 이야기를 무턱대고 꺼내려는 건 아니다. 이 위대한 과학 원리는 흔히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임을 밝힌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물리법칙이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진리의 상대성이 아닌 절대성을 말하는 셈이다. 변동에서 불변으로 귀결되는 짜릿한 발견처럼 우리도 변치 않을 나만의 절대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변으로 흩어진 신경을 자신에게로 모아 살아간다면 남 못지않은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체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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