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이렇게 일이 많은지
15/Nov/2019
요즘 이상하게 뭔가 피곤하다.
분명히 파랑의 방학이라서 일상을 함께 하면서 소소한 행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점점 뭔가 바쁘다. 하하. 어제까지도 여러 일들이 많았었다. 우리 부부, 우리 가족에게 있었던 일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신속하게 남겨 둔다.
1. 일요일 다 같이 해변으로~
드디어 나와 아들의 소원이었던 파랑과 바닷가 놀러 가기를 해냈다. 어느 비치를 갈까 고민하다가 모래가 곱고 물이 얕았던 ‘볼콕 비치’로 향했다. 다행히 주차 공간이 있었고 나와 아들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해변으로 나섰다. (파랑은 화상이 회복 중이어서 당분간 물에 들어가기 어렵고, 햇볕도 조심해야 한다 ㅡㅜ)
자리를 펴고 나와 아들 놀 듯이 놀았다. 그저 파랑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둘 다 만족스러웠다. 2~3시간을 열심히 놀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파랑 방학 때 하고 싶었던 것을 나와 아들은 다했다!
2. 이불빨래 나들이
파랑의 방학 때 할 일 리스트 중에 있었던 ‘이불 빨래’를 하기 위해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 놓고 대형 세탁물을 모두 가지고 자주 가는 ‘코튼 트리’ 코인 세탁소로 향했다. 동전 교환기가 고장 나서 좀 헤매긴 했지만 여차저차 세탁/건조를 돌려두고 커피도 마시며 주변 공원과 해변? 강가?를 산책했다.
역시 평일 낮 휴식이 최고였다. 점심에는 가보려고 했던 집 앞 타이 식당에 가서 런치 스페셜을 저렴하게 먹고 (맛나고 가정비 최고!) 늘 들리는 중고 오프라인 샵, 옵샵에 들려서 산타 모양 전등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득템해 왔다. 하나의 할 일을 하면서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3. 생일/크리스마스 준비 대작전
아들이 자신의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강력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파랑은 사전 작업으로 아들이 받고 싶은 선물을 확인하며 옵션을 좁혀갔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 중고 온라인 사이트 ‘검트리’에서 목표를 포착했다. 우리 집에서 차로 40분가량 걸리는 ‘누사 빌리지’에 위치한 판매자가 옥토넛 장난감을 한꺼번에 정리 중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이 이제 9살이 되어 정리 중이시라고)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 놓고 긴 여정을 떠났다. 한적한 동네의 하우스 단지가 나왔고 판매자 부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하나하나 꺼내셔서 설명을 해주셨고 이것저것 한꺼번에 사려고 하니 덤으로 옥토넛 DVD와 장난감을 더 주셨다. (덤 문화는 여기나 저기나 같구나!) 부부의 아들과 옥토넛에 대한 지식과 사랑이 대단했다. 친절한 설명과, 배터리 가는 방법까지 다 보여주시고는 대량 구매 할인도 해주셨다. (이 맛에 검트리를 못 끊는다!)
차에 비밀리에 넣고는 오늘 할 일 다 했다며 근처에 가고 싶었던 비치로 이동했다. ‘페레지안 비치’라는 이름의 장소였는데 최근에 산불이 몇 번 났어서 그런지 사람이 적었다. 배가 고파서 아침에 파랑이 만들어서 싸온 ‘파스타’를 먹으려고 적당한 장소를 찾으려다가 우연히 통나무로 만든 바닷가 앞 테이블을 찾았다!
우리는 좋아하면서 앉아서 맛나게 먹었는데, 테이블의 낙서가 많아서 ‘여기도 참 낙서 문화는 똑같네?’하며 읽어 보았다. 그런데 이게 그냥 ‘누구누구 다녀감, 누구누구 사랑 영원히’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이 통나무 테이블은 누군가 자발적으로 만들어서, 모두 잘 사용하면 좋겠다고 만든 이가 적어둔 것이었고
낙서(사인)를 많이 많이 남기라고 해두었던 자연 재활용 테이블이었던 것이다. 그 기발함과 신선함에 놀라며 우리도 즐겁게 사용하게 됨을 즐겼다.
4. 정비 등이 켜진 빨강이
갑자기 우리 차, 빨강이의 대시보드에 묘한 정비 사인에 불이 들어왔다. 녹색의 자동차에 렌치? 모양이 들어있는 표시였는데 신경이 쓰였다. 급한 대로 한인 정비소에 예약을 잡고 바로 확인을 받았다. 친절하신 사장님께서 확인을 해주셨고, 심각한 것은 아니고 아직 보증기간이 남아있으니 구입하신 제조사 서비스 센터에 가보면 될 거라고 하셨다. (혹시 비용이 얼마 이상 나올 것 같으면 본인에게 다시 오면 그 이하로 해주시겠다고)
그래서 다음날 조금 먼길을 운전하고 가면서 중고 차량 보증서에 있는 곳에 연락을 했다. 나는 운전 중이었으니 영어 좋아하는 와이프에게 부탁했다! (이 모든 것은 계획대로) 역시 연락을 잘해주어서 그다음 날 12시에 점검 예약을 했고, 오후 내내 걸릴지도 모른다는 다소 불안한 코멘트도 받았다.
다음날 더위와 왠지 모를 피곤에 지친 와이프를 집에 쉬게 하고 나 혼자 차를 가지고 차량 정비센터에 방문했다. (선샤인 코스트 홀덴) 친절하신 할아버지 직원께서 잘 응대해주시고 확인도 해주셔서 차를 맡기고 나왔다. 차를 되찾는 시간은 4시 30분에 다시 돌아오면 되고 혹시 더 일찍 끝나면 연락 주시겠다고 하셨으나 사실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오늘에만 끝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차가 없으니 드넓은 호주에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남의 차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우버’ 앱을 켜고 차량을 호출했다. 바로 잡혔고 그날은 총 3번 ‘우버’를 이용했다. 빨강이가 너무도 그리웠다. 음악 수업을 마치고 아들과 파랑을 옆에 두고 다시 차량 정비소에 전화를 했다. (이번엔 급한 마음에 내가!) 아직 고치는 중이며,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는 기계적인 답변을 받았고 ㅡㅜ 오늘 중으로 되는지 안되는지만 알려달라고 했다. 잠시 뒤, '30분이면 된데!’라고 알려주었고 세 가족이 우버를 타고 이동했다. (어…그럼 아까는 확인을 안 하고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고 한 건가? ^.^;;)
도착해보니 빨강이가 세차도 깨끗하게 되어 있었고 내용을 들어보니 종종 가끔 발생하는 온도를 재는 부품이 손상되어 교체했다고 했다. 내 잘못이니라고 물으니 전혀 그런 게 아닌 자연스러운 거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고 다행히 보증 내용으로 모두 커버가 되어 별도 비용은 없었다!
다시 돌아온 빨강이를 타고 쾌적하게 돌아왔다. 무엇이든 있다가 없으면 아쉽다, 다시 돌아오면 이렇게 반갑다!
5. 급 브리즈번 출동
우리 한국 집에 새로이 들어오실 전세 계약자가 나타났다는 연락을 엊그제 밤늦게 받았다. 위임장을 보내야 계약이 진행되는데 우리가 외국에 있기 때문에 총영사관 직인이 찍힌 문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와이프가 알아보니 총영사관은 시드니에 있어서 국내선 타고 가야 하나 고민이 많았었다고 한다. 다행히 한 달에 1번 브리즈번(우리 집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순회를 한다고 하는 소식을 찾았고 (파랑이 이런 건 기가 막히다) 그날이 바로 어제였다!
아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유치원에 1등으로 등원한 뒤, 바로 우리는 브리즈번으로 향했다. 점심시간 전에 일처리를 마치면 아들 하원 시간에 맞춰 올 수 있었다. 매우 빠듯하지만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최악의 경우 파랑만 남겨두고 나만 돌아와야 했다. 파랑은 알아서 집으로 오든지, 하루 자든지, 아니면 우리가 다시 데리러 가든지 해야 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고 번호표를 받아서 우리 차례가 언제 오나 숨죽이며 기다렸다. 여권 발급/연장 등 여러 업무 처리를 해주고 있었다. 점심시간인 12시가 조금 되기 전에 우리 차례가 되었고! (할렐루야 ㅜㅜ) 잘 준비해 간 덕에 바로 처리가 되었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확보가 되어 파랑이 먹고 싶었던 ‘핫팟’(마라탕 같은 거?)과 내가 먹고 싶었던 ‘오코노미야키’를 근처 대형 쇼핑몰에서 먹었다. 역시 대도시의 쇼핑몰은 달라도 달랐다. 오늘 중간에 커피와 도넛을 사는 여유도 부리며 정확히 하원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출발 전날 차량(빨강이) 수리를 마친 것도, 총영사관 순회 전날 연락을 받은 것도, 아들이 아침에 이해하고 등원을 잘 해준 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우리 세 가족은 감사하며 우체국에 들러 소중한 문서를 한국으로 보내어 마무리했다! (어제저녁에 장시간 긴장과 운전에 피곤한 나는 아들에게 평소보다 좀 더 엄했던 듯하여 미안함이 있다 ㅡㅜ)
1. 칭찬스티커를 위하여
아들은 지난주에는 칭찬 스티커를 모으느라 바빴다. 밥과 물을 열심히 다 먹었고 모두 다 모아서 원하던 장난감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밥과 물을 다시 남겨왔다... 목표가 사라진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2. 생존 영어
생존에 필요한 영어가 늘고 있다. 유치원에서 준영이가 가장 힘든 순간이 함께 등원한 뒤 아빠나 엄마와 헤어지는 순간인데 이때 원장 선생님이 본인을 돌봐주길 간절히 바란다. 매번 부탁드리기가 뭐해서, 지난주에는 아들에게 알려주었다.
‘아이 니쥬, 아이 니쥬어 핸드’라고 하라고... 아들과 인사하고 유치원 담장 밖에서 지켜봤다. 원장 선생님의 손을 잡은 아들이 내게 인사했다. 이렇게 생존 영어가 하나 늘었다.
원장 선생님은 ‘누군가 내가 필요하다니! 감동이야!’라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다. 하하 역시 최고!
3. 아들의 말말말
나와 아들을 2층 공부방으로 올려보내며 응원하는 엄마에게...
(파랑) ‘아들~ 아빠랑 글자놀이 재밌게 하고 와~’
(아들) ‘글자놀이 처음부터 어려워서 재미없는데~’
짜장 볶음밥을 남겨온 아들에게 서운해하며...
(파랑) ‘아들~맛있는 볶음밥을 다 남기면 속상하지 ㅡㅜ'
(아들) ‘엄마~볶음밥에 야채가 부족해서 맛이 없었어~’
(파랑) ‘엥? 짜장에 야채랑 고기 들어가서 볶음밥은 파 기름 볶음밥으로 한 거야~ 아빠는 정말 좋아해~’
(아들) ‘난 맛이 없더라~다음에는 야채 많이 넣어줘~’
(파랑) ‘ㅜㅜ 으응…'
핑계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그럴 수 있겠다고 열심히 생각을 바꿔보았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바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