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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y 08. 2024

세상은 원인과 결과로 흘러가는가

<A Single Shard>

언제부터였을까? 꾀를 부리거나 요령을 피우면 나중에 모두 무거운 짐으로 돌아온다고 믿은 게. 거기에 더해 나쁜 짓을 하면 최소한 그만큼의 벌이 주어지고 말 거라서 무서웠다. 딱 그렇게 흘러가는 옛날이야기를 좋아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세상에 떠도는 교훈을 철석같이 믿느라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권선징악', '인과응보'. 한 만큼 돌려받는다는 뜻의 말이 나중에 돌아보며 깨달은 말 같지 않았다. 가장 먼저 태초부터 있었던 세상을 지배하는 규칙이라고 여겨졌다. 늦게 알아낸 걸 수는 있어도 늦게 생긴 진리는 아니었다. 정말로 우리의 삶은 이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청소 시간이면 철저하게 맡은 바를 다했다. 시작과 함께 사라졌다가 끝날 때 슬그머니 돌아오는 친구들이 얄미웠지만 괜찮았다. 결국 각자 보낸 시간만큼 어떤 식으로든 되갚아질 것을 믿었으니까. 군대 시절 지겹게 눈을 치울 때도 변함없었다. 올라가는 계급과 상관없이 묵묵하게 쓸고 퍼냈다. 설렁설렁하는 척만 하고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녀석들이 늘 있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누군가 보상을 받으려면 누군가는 손해를 감수해야 세상이 돌아갈 테니.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수행할 때면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제대로 해내지 않고 옳지 않은 마음을 먹으면 내게 나쁜 일이 벌어지고 말 거라고. 왜 아무도 안 보는데 그렇게까지 고지식하게 구냐고 물어도 같은 대답을 했다. 착하거나 순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게 두려워서라고.


세상이 완벽하게 원인과 결과로 돌아가진 않았다. 그래도 굳이 따져서 맞춰보면 이랬기 때문에 저랬구나 싶은 게 훨씬 많았다. 확실한 게 없는 세상에서 그나마 희미한 빛줄기를 안고 가는 기분이라 더욱 의지했다. 착한 일을 하고 상을 크게 기대하진 않았지만, 찔리는 일을 하고 나면 언제 덮칠지 모를 벌이 두려웠다. 남을 위한 시간을 많이 갖진 못했지만, 남을 해치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도록 애를 써왔다. 순전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내가 곤란해질까 피했다. 아니다 싶은 짓은 하지 않았고, 해야 하는 행동은 반드시 지켜왔다. 순수하지 않은 마음이 차곡차곡 쌓인 덕분인지 누구도 나를 선하게 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악하게 보지도 않았다. 내겐 충분했다. 난 그저 나쁜 사람이 되어 힘든 형벌을 받는 게 싫었다.


이런 나와 확연히 다른 사람들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바르고 진실한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결국 그 온화한 빛이 드러나 세상의 인정을 받는다. 나와 같은 음흉한 속내나 목적이 없다. 그냥 그러한 심성을 가졌다. 밝은 빛과 따뜻한 온기가 있는 곳엔 늘 그런 존재가 자리를 지켰다. 그들의 온전하게 옳은 마음가짐에 감동하다가 왜 나는 다를까 돌아본다. 그동안 수없이 따져본 더하기 빼기 때문에 내 마음은 이미 복잡한 계산으로 가득 차 있다. 절대 같을 수 없구나 싶어서 비교를 멈추고 감탄에 집중한다.


실제로 얼굴을 맞댈 일이 넘칠 정도로 만나기 쉬운 인연은 아니다. 한 손으로 충분히 꼽을 정도다. 강렬한 기억만큼이나 희귀해서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 최근에 직접은 아니지만 글자 속에서 새로운 따뜻함을 만났다. 끝이 없는 성실함과 순수함으로 똘똘 뭉친 주인공의 이야기가 가슴에 오래 남았다. 같은 자리에 있었다면 후환이 두려워 끙끙 앓았을 나를 떠올리니 더욱 흥미로웠다. 목이(주인공)와 내 차이는 나중에 보답받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나는 내 묵묵하게 지켜낸 행동의 결과라고 여기며 원인을 나로 볼 테다. 목이는 그런 따져봄 없이 그저 감사하다. 무엇을 바라고 원해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차이의 이유를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모습은 처량하다.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해내는 일이란 내게 존재하기 어렵다. 이래서 저럴 것이고 저래서 이럴 것이라는 강박은 쉽게 벗을 수 없다. 좀 더 어릴 적이라면 가능했을까? 편하게 나이 차를 핑계 대고 싶지만, 그때의 내가 그러지 못했으리란 확신이 든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옳은 행동.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해볼 수 있을까.



<읽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A Single Shard (Linda Sue Park/YEARLING) - 20년 7월
*한글 제목 - '사금파리 한 조각'

처음엔 아동용 도서인 줄 모르고 읽었다. 영어 원서라서 따져볼 감이 내겐 없었다. 결과적으론 내게 딱 맞는 수준이었고 재밌게 읽었다. 도자기라는 소재도 흥미로웠고, 고려시대라는 배경도 친근했다. 길지 않은 분량으로 인상 깊은 등장인물과 적절한 흐름의 굴곡이 작가의 내공을 충분하게 보여줬다. 한글 버전이었어도 충분히 감동적이었겠지만 영어 원본이 아무래도 작가의 언어이기에 좀 더 감동이 진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어떤 상황에서도 바르고 진실한 마음이 빛을 본다는 당연하지만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읽고 남는 건 받은 질문과 했던 고민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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