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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Oct 11. 2024

자기 것만 챙겨도 바쁘지만

새 학기는 동기의 이탈로 시작했다. 드디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모였다며 기뻐했던 단체 채팅방의 인원이 줄어들었다. 슬그머니 작아진 숫자를 뒤늦게 발견하면 남은 동기들끼리 슬퍼하곤 했다. 나간 걸 들키지 않는 새로운 기능 때문에 누가 사라졌는지 깨닫는 것도 일이었다. 떠난 이의 이름이 밝혀져 안타까워하고 있으면 또다시 숫자가 줄었다. 지금까지 3번의 빼기가 끝난 상태. 정확한 까닭은 알 수 없다. 나간 자는 말이 없으니. 한 학기 맛을 본 뒤에 앞으로 삶과 학업의 병행이 쉽지 않겠다고 판단했으리라. 사실 이유를 찾으려는 몸짓은 필요 없다. 말하지 않아도 온몸이 이해한다. 그만큼 석사 과정의 첫 경험은 매웠다.


함께 버티려고 똘똘 뭉친 무리에서 탈출이 발생하면 균열의 조짐이 보인다. 1호가 되기 싫어 눈치 보는 기간이 끝나자, 하나둘 늘어나는 현상이 자연스럽다. 무엇이든 최초가 어려운 거니까. 흔들리는 단톡방에 누군가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애매하게 그만두는 것보단 신속히 결정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본인도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아서 이번 학기를 이어가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고백과 응원이 섞인 다른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후보자에서 어렵게 추가 합격으로 들어왔고, 넉넉지 않은 생활이라 등록금 대출을 받았다는. 살아가기만 해도 힘들지만, 이왕 시작한 공부를 다 함께 손잡고 끝까지 걸어가면 좋겠다고. 꺼내기 힘든 사연을 나누면 조금 더 가까워진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덕분일까. 그 이후로 더 이상의 조용한 사라짐은 없었다. 


차갑고 따뜻한 공기로 뒤섞여 출발한 두 번째 학기는 처음과 완전히 달랐다. 학생이라면 응당 공부를 말해야겠지만, 아쉽게도 딴 얘기다. 연초에 저지른 제 깜냥을 넘어 맡은 자리에서 허덕였다. 대학원 학생회를 원우회라고 부르는데, 미디어 국장이라는 임원에 손들고 지원했다. 대부분의 동기처럼 할 수 없는 이유를 줄줄이 대며 돌아서도 됐지만, 몇몇의 솔선수범에 가슴이 동하는 바람에 안 하던 짓을 해버렸다. 당선 후에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선배의 인수인계 연락을 받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본격적인 임기가 이번 학기부터 1년 동안이었다. 하필 악명 높은 과목이 몰려있는 지금이라니, 참. 공부의 어려움을 제대로 파악도 하기 전에 정신이 날뛰었다.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멀티태스킹에 취약해서 마음만 바쁘고 하는 건 없었다. 


집중이 사라진 나만의 상황과 상관없이 할 일은 찾아왔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공부를 하는 우리에겐 일 년에 한 번, 가장 중요한 날이 있다. 바로, 10월 9일 한글날. 이날에 맞춰 학술문화제를 학부생, 대학원생, 졸업생, 교수진이 모여 열과 성을 다해 해마다 열고 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괴롭다. 빈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회의와 아이디어 수집을 통해 주제를 정하고, 참여할 동기를 모았다. 우리 원우회는 세계 각지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 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는 영상을 제작하기로 했다. 놀랍게도 여러 명의 자원자가 모였고, 임원진은 감사하며 인터뷰 진행을 요청했다. 하나둘 다양한 나라에서 영상이 도착했고, 다음은 편집이 남아 있었다. 우습게도 나를 포함해서 임원 중에는 동영상 편집을 할 줄 아는 자가 없었다. 다시, 도와줄 천사를 찾아 나섰다.


여차하면 유튜브를 통해 배워서 직접 해보려고 했다. 그만큼 아무 기대 없이 동기방에 아름다운 손길이 필요하다고 올렸다. 불과 5분이 지났을까. 돕겠다는 동기가 번쩍하고 나타났다. 평소엔 둔해서 별로 놀라지도 않지만, 너무 놀라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나라면 할 줄 알아도 선뜻 나서지 못했을 테다. 안 해도 되는 수고를 결정하려면 오랜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을 거고. 이해하기 어려운 착한 마음을 받아 들고 감사를 연신 전했다. 생각지 못한 참여와 도움을 등에 업고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영상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자막은 내가 배워서 입혔다. 뭐라도 일조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여럿의 정성이 모여 완성된 전 세계의 한국어를 사랑하는 열정을 담은 영상은 행사 당일 충분한 감동을 전했다. 내 일처럼 순수하게 고생을 자처한 따뜻한 애씀 덕분이었다. 나만 아는 내겐 믿을 수 없는 뜨거운 경험으로 남았다.



전 세계에 있는 우리 학생들의 이야기



큰 산을 넘었기에 이제는 공부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성공하지 못했다. 다른 맡은 바가 또 있었기 때문에. 대학 생활을 두루 해봤다면 학회 활동을 잘 알 것이다. 학문 교류를 표방하지만 결국 술자리로 끝나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쩐지 원래의 목적과는 먼 이미지로 박혀있다. 온라인에서 배우는 우리 대학원의 학회는 그렇지 않다. 대면할 수 없기에 친목보다는 지식 습득에 꽂혀있다. 논문을 읽고 나누고 토론한다. 발표자는 논문의 저자로 변해서 방어하고, 토론자는 저격수로 변해 날카롭게 달려든다. 막막한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친해지고 익숙해지는 과정을 제공한다. 논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된 점과 부족한 점의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를 천천히 돕는다. 마치 아이에게 부모가 책을 읽어주듯이. 이런 진지한 학회의 참여를 넘어 또다시 임원을 맡고 말았다.


본인이 원해서 벌인 일을 어쩌라는 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게 아니니 좀 들어봐 달라. 처음엔 아는 게 없어서 뭐라도 주워듣기 위해 매번 참석했다. 듣다 보니 궁금한 게 생겨 질문했다.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에 어지간하면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그 시간에 노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판단의 결과가 다른 이들에겐 적극적인 모습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새로운 학회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을 꾸릴 때 추천이 돼버리고 말았다. 우연히 결과가 좋았던 첫 학기의 소논문도 한몫했다. 이미 활동 중인 원우회 임원도 벅차니 빼달라 했다. 부담 없이 함께만 해달라고 버티길래, 날 추천한 사람을 엮어서 물고 늘어졌다. 추천인도 함께하는 조건으로 수락하겠다고. 억지 주장이니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는데 덜컥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하나 더 운영의 짐을 짊어졌다.  


새 학기에 다룰 논문을 추천받고 교수님께 검토받고 일정을 짰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맡은 업무는 돈을 관리하는 총무. 전 총무 선배에게 자금을 전해 받으면서 어쩌다 이것까지 하게 된 거냐는 시선을 받았다. 하는 사람만 하게 되는 묘한 분위기를 선배 본인이 모를 리가 없었다. 자신도 전임 원우회 회장으로서 두 자리를 겸했기 때문에. 팍팍한 마음도 잠시, 주임 교수님의 특강을 시작으로 학회는 열렸다. 임원으로서 자진해서 맡은 첫 발표자 역할도 완벽한 빙의였다는 평으로 마무리했다. 휙휙 읽고 넘길 때보다 논점에 대해 논쟁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더 많이 배웠다. 주제넘은 자리를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함께 머리를 맞대는 동료 덕분에 견뎌내고 있다. 


공부만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을 쪼개서 쓰다 보면 억울함이 가끔 몰려온다. 누군 안 바쁜가, 누군 시간이 남아도나. 멀쩡하게 지내다가 불쑥 샘솟는 희한한 감정은 아니다. 자발적으로 나설 때도 속이 좁은 탓에 늘 주변을 살핀다. 대표해서 수고를 하고 있으니, 관심과 응원은 충분히 줘야 하지 않느냐고 내 마음대로의 잣대로. 나와 상식이 맞는 대부분은 넘치는 격려와 감사를 보낸다. 날 건드는 건 얌체족이다. 남이 뭘 하던 신경도 쓰지 않다가 자기가 필요하면 나타나서 얻고 나면 사라진다. 그들은 자기 것 말곤 관심 없다. 전체 행사가 열리든지 말든지, 뭐가 필요하든지 말든지 알 바가 아니다. 조금의 추가적인 기력도 쏟지 않는다. 고마움을 담은 인사는커녕 꾹 누르기만 하면 되는 반응도 귀찮다. 고맙지 않으니 미안하지도 않다. 그저 내 것만 챙겨가면 끝이다.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종종 울분이 차오른다. 어쩌면 난 준비되지 않은 봉사자인지도 모른다. 알아주길 바라는 욕망은 애써 먹은 마음을 흔든다. 자기만 바라보는 자세는 본능이다. 타고난 이기주의자인 난 완벽히 이해한다. 다만, 전부가 그러면 굴러가질 않는다는 걸 살면서 배웠다. 누군가는 자기 몫을 나눠 내놓기 때문에 전체가 나아간다. 알고부터는 억지로라도 발을 떼어 힘을 나누려 한다. 어디든 같은 원리로 뒤에서 힘쓰는 이들이 있다. 여전히 어색하지만 선한 마음 안에서 머무는 것만으로도 좀 더 나은 내가 된다고 느낀다. 어차피 하다 관둘 용기도 없으니 계속해 보자. 공부 못할 핑곗거리도 있으니 좋지 않은가. 아, 이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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