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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Oct 04. 2024

따로 또 같이 배우는 시간

실수하더라도 의도가 선했다면 이해를 바랄 뿐 미안하단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속이 좁고 못난 사람이라 거듭되는 잘못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어찌 된 일인지 요즘엔 아내 파랑에게 먼저 나서서 사과를 건넨다. 그것도 꽤 오래전 일을 굳이 꺼내 가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 그녀가 움찔거린다. 이 사람이 뭘 잘못 먹었나 싶은 표정으로. 맞다. 잘못 먹고 있는 게 있다. 하고 싶은 공부라는 내 입보다 큰 열매를 탐하고 있다. 깜냥이 되지 않아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간신히 목구멍을 넘겨도 소화가 되지 않아 늘 더부룩하다. 공부가 쉬운 게 아니란 걸 이제야 깨달았다. 덕분에 나보다 앞서 뒤늦은 공부를 끝낸 파랑을 막 대했던 그때가 떠올라 미안함을 전하는 중이다. "네가 선택해서 한 공부니까 즐겁게 해 봐. 할 거 많다고 찡찡댈 시간이 어딨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마구잡이 말을 던졌을까. 처지가 바뀌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 뻔했다. 머리의 모자람과 함께 마음의 부족함도 깨닫는 시간을 걷고 있다.


일방적인 공부에 익숙했다. 알려주면 듣고 외우고 다시 뱉어내어 적고 끝. 대학원은 그런 게 없었다. 스스로 고민하지 않고, 찾아서 구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학기를 마무리하기 위해선 답이 정해진 문제에 몇 줄 쓰고 끝내는 식의 출구는 없었다. 심지어 혼자서 하지 않고 여럿이 해야만 하는 과제가 절반을 떡 하니 차지했다. 조별 과제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사방이 열려있는 광활한 주제를 달고 등장했다. 처음 듣는 이름들과 같은 공간에 적인 내 이름도 눈에 띄었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설명을 들었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슬기롭고 부지런한 분이 등장했다. 흩어져 있던 우리 조원을 모았고 당면한 숙제를 마주하도록 자세를 잡게 했다. 나까지 총 다섯 명. 의견 모으기 어렵고 구멍이 나면 타격받을 적당한 숫자. 자꾸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이 밝은 예상을 방해했다. 누군지 아직 전혀 모르는 그들을 보면서 경계를 풀지 못했다.


전공 이름에 달린 글로벌이란 단어처럼 우린 시차부터 너무 달랐다. 한국, 호주, 영국, 브라질. 멀쩡하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대가 흔치 않았다. 누군가의 불편이 요구되는 상황. 조금의 불평도 없이 선뜻 감수한 조원들을 보며 의아했다. 멀쩡하게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조금 생겼다.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공개하며 전 세계에서 모였다. 약속된 시간을 빼곡히 채우고 나서야 우리의 첫 회의가 끝났다. 이때부터 걱정을 많이 내려놓았던 것 같다. 나 말고는 모두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지혜로웠다. 남은 과정과 일정이 무시무시했지만 웬일인지 잘 흘러가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실제로 그랬다. 딱 하나만 빼고. 비자발적으로 추천되어 자발적으로 내가 조장을 맡게 될 줄이야. 제 몫을 하기도 벅찬데 전체를 대표하고 이끌어야 한다니.


원 오브 뎀과 리더 오브 뎀의 입장 차이는 명백했다. 주어진 분량만 수행하면 차라리 편했겠지만, 역할을 나누고 일정을 챙기며 전체를 보는 일은 버거웠다. 특히 이렇게 익숙지 않고 잘 모르는 대상을 다루는 상황은 더욱 힘들었다. 마땅히 하는 것 없이 조여지는 압박은 견디기 유쾌한 느낌이 아니었다. 불쾌한 부담을 온몸에 얹은 채 중간발표 단계를 맞이했다. 꼼꼼한 준비로 근사한 발표를 해준 조원에게 놀랐다. 가장 어려운 전달자 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그분을 보며 부끄러웠다. 동동대며 불안해할 줄만 알았지, 실질적인 기여를 못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할 수 있는데 집중했다. 흐름을 정리하며 핵심을 빼먹지 않게 애썼고, 조원 누구도 지치지 않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자잘한 문제부터 거대한 과업까지 세밀하게 흘러가는 여정을 하나씩 건너도록 조율했다.


팀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물은 생전 처음 써보는 소논문. 논문을 읽는 것도 힘겨운 마당에 새로 쓰라는 건 고문에 가까웠다. 혼자였다면 고통받다 내던져 버렸을 게 분명했다. 뛰어난 조원들은 덤덤하게 하나씩 맡은 부분을 채워갔다. 허겁지겁 많이 배웠다. 마음마저 넓은 그들은 텅텅 빈 채 겨우 따라가는 날 책망하지 않았다. 각자의 고민과 여럿의 나눔은 조금씩 목표를 향해 우리를 밀어주었다. 대망의 최종 발표일에도 한국에 있다는 책임감으로 일전의 발표자가 한 번 더 수고해 주었다. 깔끔한 자료와 완벽한 전달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어설프게 맡았던 나의 토론자 역할로 빛을 발할까 노심초사했지만 잘 넘어갔다. 마무리는 어정쩡하게 팀장을 달고 있던 내 몫이었다. 모두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검토하고 또 했다. 받은 조언을 바탕으로 소중하게 다듬어 제출했다. 얼굴을 마주 본 마지막 모임에서도 밝혔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난 이번 학기를 버티기 어려웠을 테다. 혹시 끝까지 남아있었더라도 빈 껍데기처럼 배운 것 없이 출석과 진도만 숫자로 채운 풍선과 같았을 것이다. 언제 터져버려도 상관없을 공허한. 혼자 하는 게 낫다는 편견을 바꿔준 과정의 교훈에 푹 빠질 틈도 없이 다른 과제가 내 등을 툭툭 건드렸다. 


남아 있는 절반의 할 일은 혼자 하는 숙제였다. 등 뒤 녀석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지만, 모른 척 등 돌리고 더 급한 거 먼저 하자고 타일러둔 상태였다. 겨우겨우 하나를 건너고 나니 자기 차례라고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사실 이 녀석을 받아 든 지는 한 달도 훨씬 전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품속 아래 묻어둔 채 가끔 살펴보면서 답답해하기만 했다. 뭐라도 건드려 보고 데어서 놀랐다기보다는 가까이 가지도 않고 뜨거울까 봐 지레 쪼그라들어 있었다. 가장 바보 같은 대응으로 유명한, 행동 없이 한숨만 토하는 상태. 더 이상의 핑계와 명분이 없어 과감하게 남은 친구와 마주 앉았다. 얼굴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바로 뾰족한 수가 떠오르진 않았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어디를 공략해야 할지 막막했다. 시간을 흘렸다. 다소 편하게. 발표 순서가 3번의 세미나 중 가장 나중이라는 안심으로 쭉쭉 미뤄가면서.


우연히 배정받은 마지막 수업의 발표 차례는 신의 한 수였다. 앞선 동기들의 발표를 향한 교수님의 조언은 막혔던 길을 열어주었다. 첫 학기를 보내는 신입 대학원생에게 걸맞은 귀한 말씀이 쏟아졌다. 주워 담기 어려울 정도로 알면서도 잊고 있거나 생각도 못 해 모르고 있던 진한 향기의 가르침이 넘쳤다. 논문과 공부에 관한 깊은 요지를 전했다. 줄이고 줄여서 남긴 핵심은 이렇다. 논문에는 연구자의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 주장하고자 하는 논점을 밝혀서 본인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논문이다. 이를 위한 공부는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의문을 계속 가지는 자세가 기본이다. 가만히 앉아 남의 지식만 받아들이고 끄덕일 게 아니라 계속 찾아보고 고민해 보고 그려보고 써 봐야 한다. 얼핏 당연해 보이는 문장이 내겐 낯설었다. 모른 채 과제를 진행했다면 자신은 쏙 빠진 단순 정리 보고서에 머무를 뻔했다. 아찔한 상상을 뒤로하고 다시 집중했다.


확보된 자료를 읽으며 분석하고 분류했다. 나만의 길이 보이지 않아도 우선 축적하는 시간을 가졌다. 책상에 앉아 있지 않는 시간엔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을 끝없이 괴롭혔다. 이리저리 돌리고 뒤집고 자르고 합치며 고여있게 두지 않았다. 시간이 누적될수록 환해지기는커녕 더 깊은 골짜기에 갇히는 기분이었다. 땀 흘려 운동한 직후였는지, 샤워하는 도중이었는지, 간밤에 자다 깬 와중이었는지, 화장실에 머문 순간이었는지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갑자기 보이지 않던 실마리가 탁 하고 떠올랐다. 왜 그동안 몰랐을까 싶은, 바로 곁에 있던 뻔한 단서. 그때부턴 막힘이 없었다. 그 좋아하는 새벽 글쓰기도 멈추고 뻗어나가는 생각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고 그려냈다. 이게 맞나 싶은 의심이 파고들 틈은 없었다.


수 없이 연습해서 딱 10분에 맞춘 발표가 끝났다. 남은 건 교수님의 평가.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10분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극찬으로 꽉꽉 채워졌다. 고민의 흔적을 보았고 공부를 제대로 했다고 평했다. 대단하다, 좋았다, 놀라웠다, 창의적이다, 짜릿했다, 훌륭하다. 태어나 이렇게 짧은 시간에 줄기찬 칭찬을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일대일이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몇 번이나 눈물이 날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아 넘겼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만장일치로 합격한 참가자의 표정이 나와 같았을 테다.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을 고민했을 거라는 인정이 마음을 흔들었다. 수많은 논문과 책에 둘러싸여 갇혀있던 시간을 알아봐 준 사람이 있어 감동했다.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좋은 발표였다며 오히려 내게 고맙다고 마무리하는 교수님의 말씀에 귀를 의심하며 얼어버렸다.


돌아보면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다. 지금처럼 누구랑 같이 해본 적은 물론, 혼자서도 내 것처럼 파고든 적이 없다. 시험을 보기 위한 암기의 경험은 셀 수 없지만, 찾아서 살피고 끈덕지게 늘어진 행위는 처음이다. 첫 학기의 마지막 날, 공부의 결과를 모두 제출하고 나자 한쪽이 공허했다. 무언가 빠져 헛헛한 감정. 달려온 과정 끝에 맞이한 허전함은 아니었다. 빼놓은 게 있어 챙기고 싶은 마음에 가까웠다. 자고 일어나 그제야 갈피를 잡고 자리에 앉아 편지를 썼다. 두 분의 교수님께서 주신 응원과 격려, 그리고 가르침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직접 찾아온 이곳에서 물러서지 않고 버틴 시간이 귀한 배움으로 남았다고. 스승에게 쓴 편지는 초등학교 방학 숙제 이후 처음이 아니었을까. 대학교 때 성적을 조금만 올려달라고 울며 보낸 이메일은 청탁에 가까워서 빼야 할 테니. 조금이라도 늦게 시작하길 바랐던 첫 번째 학기가 어느덧 툭 하고 끝났다. 예측대로 흘러간 게 아무것도 없었던 긴 시간. 이제부턴 고생 끝에 만난 학생의 특권, 방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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