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게임만 좋아하다 나중에 공부하려면 아빠처럼 힘들고 지칠 거야. 학교 다닐 때 미리 조금씩 해 놓자."
대학원 생활에 푹 빠져서 퀭한 눈동자를 검게 늘어뜨리고 다니는 날 가리키며 아내 파랑이 아들에게 진지하게 전했다. 그날도 요즘의 식사 자리처럼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숟가락을 겨우 입구멍에 맞춰 넣는 중이었다. 귀담아듣는 아이는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나도 그렇다며 인정했다. 안타까운 사실은 해야 할 공부에 파고들어 체력과 정신이 떨어지는 열공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쏟아지는 지식이 너무 뜨거워서 받아먹지 못하고, 데인 입을 벌려 홱 뱉어내고 어쩌나 싶어 우물쭈물 애만 타들어 간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 거라며 철없이 기다리는 상태랄까. 물론 살면서 마주치는 상황 대부분은 처해있는 당사자를 기다려 주지 않고 흘러간다. 학생이라는 신분의 자각을 미처 제대로 하기도 전에 시험이 몰아쳤다.
한국 학교에서 한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데 영어 시험을 봐야 했다. 논리로 대응할 수 없는 졸업 필수 요건이다. 대학 졸업 때 제출했던 최소 영어 점수와 같은. 최근에 받아놓은 외부 기관 영어 성적이 없어서 내부 시험을 신청했다. 재학 중 아무 때나 합격하면 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나중엔 여유가 없을 게 분명해서 초반에 승부를 걸었다. 영어는 수십 년째 붙들고 있어 봤자 어차피 늘지 않는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기에 편안히 응시했다. 어찌어찌 대학원 첫 테스트를 넘고 나자 중간고사가 찾아왔다. 도대체 배운 게 뭐가 있느냐고 외치려 했지만 두 달이나 지난 상태라 강의 노트만 백 장이 훌쩍 넘어있었다. 하릴없이 시험공부를 시작했고, 역시 예상대로 급격히 딴짓이 좋아졌다. 안 하던 청소, 집 정리, 가구 교체가 재밌어졌다. 귀찮아서 잡지 않던 약속도 무리해서 만들며 없는 시간을 아주 없애려고 애를 썼다. 방학을 맞은 아들과도 괜히 더 많이 놀아줘야 할 것 같은 부성애가 들끓었다. 그러면서도 온몸으로는 불안을 풍기며 시험 보는 학생임을 드러냈다. 불과 몇 년 전 아내에게 불안해할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외치던 사람은 어디 가고, 농땡이 피우며 걱정하는 놈팡이가 들어앉아 있었다.
정해진 일정이 좋은 건, 어쨌든 그때가 지나면 끝나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준비가 없던 놈은 배짱을 부리며 시험 기간을 재주껏 넘겼다. 뻔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믿는 구석을 숨겨놓은 덕이었다. 먼저 찾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정보가 도착했다. 아무리 읽어도 정리가 되지 않던 방대한 학습 내용을 어디선가 나타난 정리천재의 요약본으로 깔끔하게 해결했다. 일명 기출, 족보라고 불리는 과거의 시험 내용 또한 탁월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덕분에 위험을 넘는 순간은 고마움만 남겼다. 타인을 믿거나 의지하는 걸 꺼리는 내겐 생소한 경험이었다. 오로지 자신만 신뢰하는 사람이 한 울타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퍼주는 도움을 받는 게 어색했다. 선배와 동기로부터 날아온 귀한 마음으로 초보 대학원생은 첫 시험 기간을 이겨냈다. 각종 시험을 걱정하지 말라던 따뜻한 조언이 현실이 되었다. 공부를 아주 안 한 건 아니었지만 보다 편하게 임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 무얼 하든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안에서 주고받은 훈훈함의 영향이었을까. 아직은 거리가 먼 새로이 만난 우리 동기들도 가까워지기 위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비어있던 임원 한자리를 내가 채웠지만 여전히 우리 기수를 대표하는 자리는 비어있었다. 역할 수행을 위해 국내 거주자가 맡아야 했는데, 소수의 대상 중에서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내가 만약 한국에 있었더라도 가장 앞선 자리는 부담이었을 테다. 누구도 압박할 수 없었고, 그저 안타까운 시간만 흘렀다. 어느 날 밤, 마음을 굳게 먹은 한 동기의 출마 선언이 기대표 선출로 곧장 이어졌다. 이겨낸 커다란 갈등과 내디딘 뜨거운 용기에 모두가 박수치며 화답했다. 기대표는 가장 먼저 정기적인 동기 모임을 시행했다. 전 세계에 흩어진 우리를 자주 모아 얼굴 보며 마음을 잇고자 했다. 영광스럽게도 첫 모임에서 역할을 맡았다. 현재 운영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소개하는 임무. 공부하기도 바쁜 동기들의 헤매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작은 곳까지 샅샅이 뒤져서 핵심만 간추려 눈에 띄게 표현했다. 반응은 좋았다. 쏟아부은 시간과 정성은 배신이 없다. 첫 모임을 마친 뒤, 정리한 자료와 함께 짧은 후기를 남겼다.
"무언가 활성화를 시킨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여전히 그대로겠지요. 어느 모임이든 누군가의 수고가 있어야 움직입니다. 다른 이가 마음의 부채를 얻고 또 다른 수고를 맡아주면서 굴러가지요. 멀리 떨어진 동기들을 모아 얼굴을 자주 보게 하려는 기대표 선생님의 의지에 동감하며 조용한 카페에 우리가 만난 시간의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이어진 모임도 기대표의 기획력과 섭외력 덕택에 성공했다. 아는 것보다 궁금한 게 많은 신입생에게 알짜이자 진짜인 고급 가르침을 내려줄 수 있는 가까운 선배를 모셨다. 석사학위논문을 마무리하며 졸업을 앞둔 그분은 이등병이 가진 각종 먼지 같은 고민부터 바위 같은 걱정까지 다 경험한 병장 고참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은혜로운 이야기가 쏟아졌다. 어떻게 이런 사람, 아니 천사가 존재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하염없는 내리사랑에 감동하고 있을 때, 선배의 마지막 멘트가 귀에 꽂혔다. 현재 우리 기수에 공석으로 남아있는 임원 자리를 언급하며 누군가 나서주길 진심으로 부탁했다. 누구나 바쁘고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며, 함께 오래가기 위해서 마음을 내어주길 요청했다. 알고 보니 이 세상 사람 같지 않던 넓은 선배는 그 기수의 대표였다. 필요성과 힘듦을 둘 다 알기에 꺼낼 수 있는 마무리 인사였다. 예상치 못한 간곡함에 몸이 달아올랐다.
그날의 뜨거움은 곧 식었다. 그 후로도 지금까지 아무도 말이 없다. 모르는 부분을 묻던 열정은 넘쳤지만, 정성을 내놓는 자신은 부족한 모양이다. 그냥 나도 가만히 있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누구도 움찔하지 않았다. 자기 살길만 신경 쓰는 당연한 본성이 거슬리자, 단체방의 이해 못 할 행태에 눈살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사람 사는 곳이니 자신이 제일 힘들다고 찡찡대며 우는소리 하는 건 그러려니 한다. 서로 시시콜콜 들어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버티는 관계는 그나마 봐줄 만하다. 눈에 띄는 못난 행위는 '일단 물어보기'다. 안 읽고 안 듣고 안 찾고 질문만 던지는 사람. 이미 공지된 내용도, 다른 사람이 알려준 정보도, 조금만 찾아도 나오는 지식도 당장 자기만 편해지자고 묻는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럴 수도 있으니 알려준다. 반복되면 조용히 원문이나 일전의 대화를 찾아보길 권유한다. 소용없다. 잘못을 모르니 그저 계속 묻는다. 궁금하면 못 참는다는 핑계를 앞장세운 채, 적지 않고 기억 못 하고 뒤지길 귀찮아하는 자신은 되돌아볼 줄 모르면서. 질문은 남에게 던지는 부담이다. 시간과 기력을 들여 읽고 생각해서 답을 해야 하는. 본인이 해야 할 몫이 빠진 물음은 여럿에게 피해를 주는 공해다. 조금의 고민도 없이 던져지는 물음표를 보며 한숨을 여러 번 내쉬었다.
혼자서 괜스레 꽁해있는 기간을 쌓았다. 어딜 가도 다양한 사람은 있는 거니 일일이 신경 쓰지 않기로 돌아오는 데 오래 걸렸다. 가슴을 추스르고 나부터, 그리고 나만 떳떳하면 내 몫을 다한 거라 다짐했다. 혼자서 오래 지내다가 준비 없이 불특정다수와 함께 섞여버리면서 잠시 남들이 나와 같지 않다는 걸 놓쳤던 모양이다. 다시 한번 마음의 무장을 채우고 단단히 새겨두며 읊었다. '나만 잘하면 된다.' 놀랍게도 인생은 곧이어 변화구를 던졌다. 혼자선 절대 할 수 없는 거대한 과정이 열렸다. 이름도 거창한 팀 프로젝트. 여럿이 함께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대대로 내려오는 조별 과제 잔혹사를 피할 수 있을까. 연락이 안 되고, 집에 일이 생기고, 몸이 자꾸 아프고, 기한을 깜빡하고, 잘 모르겠고, 죄송하단 말만 이어지는. 묵혀두었던 악몽 같은 시절이 되살아나진 않을는지. 오랜만에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