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조를 보인 건 그때부터였다. 엄마 아빠 없이 두 번의 밤을 집 밖에서 보내고 들어온 다음. 학교 친구들과 지낸 2박 3일 캠프는 환상적이었다고 아이는 전했다. 신나게 노느라 우리 생각은 나지 않았다고. 조용한 집 안이 허전했던 우리는 민망해졌다. 아무 탈 없이 돌아와서 안심했지만, 어쩐지 서운했다. 아쉬운 마음은 아이의 폭탄선언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더 이상 학교 끝나고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는 당당한 선포.
혼자서 하교하라고 종용했던 건 사실 우리가 먼저다. 고학년이 되었으니 멀지 않은 집과 학교까지의 길을 익히면 좋겠다고 권했다. 처음엔 황당한 표정으로 왜 그래야 하는지 되물었다. 떡하니 아빠가 집에 있을 텐데 데려오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냐고.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어른과 함께 있는 게 낫지 않겠냐고. 성장이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늘려나가는 과정이란 쉽지 않은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어렵게 성공한 설득 덕에 아들은 길 외울 시간을 며칠 달라며 마음을 먹었다. 어느 날 아침, 한번 혼자서 와 보겠다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견하면서도 불안했다. 하교 시간까지 초조해하던 나는 기어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교문 근처의 굵은 나무 뒤에 숨었다. 멀리서부터 아들의 살랑거리는 걸음걸이가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을 감추고 조용히 기다렸다. 언제나 내가 있는지 찾던 아이의 눈빛은 현실을 인정하며 두리번거리지 않고 교문을 나섰다. 조그만 친구는 길을 기억해 내며 찬찬히 살피면서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커다란 아빠는 적당한 거리에서 눈에 띄지 않게 따라가며 일거수일투족을 눈에 담았다. 나만의 걱정과 달리 아이는 매끄럽게 무리 없이 집에 도착했다.
이후로도 몇 번의 성공이 이어졌으나 다양한 이유로 정착되진 못 했다. 비가 와서, 너무 더워서, 방과 후 활동을 가야 해서 등등. 그렇게 가능성의 확인으로 끝났던 혼자서 하굣길은 한동안 잊혔다. 아들도 무거운 가방을 맡길 수 있는 아빠가 찾아오는 걸 반겼다. 그러다가 이번 학교 캠프에서 엄청난 독립심을 키워온 모양인지, 이제 혼자 오겠다고 단숨에 결정했다. 나는 마지막 항변처럼 위험한 찻길도 건너야 하고, 무서운 형들도 돌아다녀서 조금만 늦출 수 없겠냐고 애를 써봤다. 친구들도 전부 스스로 집에 간다는 압도적인 현상을 들이미는 아이의 논리에 곧장 무너졌지만.
부모가 사라지는 광경은 곳곳에서 벌어진다. 큰 일을 볼 때면 함께 있어 달라던 게 그리 멀지 않은 시절이다. 온몸을 씻겨 주던 날도 지나가 버리고, 이제는 머리까지 드라이로 말리고 나온다. 멀쩡한 녀석을 가루로 만들지 않아도 알약을 꿀꺽 삼킨다. 아빠가 없으면 꿈쩍도 안 할 것 같던 장난감의 건전지를 나 없이 교체한다. 식당에 앉아서 받아만 먹던 녀석이 셀프서비스 물을 떠 오며 돕는다. 느릿한 회전목마도 꼭 같이 타야만 했었는데,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혼자서 타고 내려온다. 옆에 앉아 있지 않으면 절대 참석하지 않겠다던 친구 생일 파티도 이젠 데려다 주고 데리러 가면 끝이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엄마 아빠 없이 지내는 방학 프로그램도 더 이상 세상이 무너질 일이 아닌 즐길 거리로 둔갑한 지 오래다. 사주는 대로 입던 옷도 자신이 입을 거니 본인의 취향대로 고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흠이 갈까 애태워 보살피던 여리여리한 육체는 나날이 강성해진다. 말랑말랑 뽀얀 살로 가득하던 몸이 탱탱하게 탄력 넘치는 몸으로 변해간다. 원래는 학교 운동회에서 오래달리기를 하면 절반은 뛰고 나머지 절반은 걸었다. 지금은 그보다 긴 동네 호수 한 바퀴를 쉬지 않고 나와 똑같은 속도로 뛴다. 아빠가 일부러 봐 준거 아니냐고 물었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기에 더 놀랄 뿐이다. 한 번은 캐치볼을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공을 가지고 공원에 나갔다. 어설프게 공만 줍다 끝날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이게 웬걸. 생각보다 잘 던지고 잘 받았다. 정말로 ‘캐치'가 되는 공놀이였다. 언제 이렇게 자란 걸까 내심 놀라며 한참을 즐기다 돌아왔다.
변화는 긴장과 갈등을 유발한다. 전과 달라졌다는 건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관계에서 한 쪽이 성장하면 다른 쪽도 이에 맞춰 자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다음과 같이 잔소리와 화가 늘어난다. 아이를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 내려지고 나니 알아서 하지 못하는 부분이 보이면 한 마디씩 던지게 된다. 이것도 좀 해라, 저것도 좀 해라. 이것까진 해야지, 저것까진 해야지. 잔소리가 늘었다는 걸 모르다가 잔소리를 안 듣고 하루가 끝나면 허전하다는 아들의 고백에 알아챘다.
자제하려다가도 엉뚱한 말대꾸를 만나면 잔소리를 넘어 화가 쏟아진다. 뛰지 말라고 하니 빨리 걷는 거라는 대답은 도통 참기가 어렵다. 화내는 이유를 아이에게 찾다가 매일 혼나서 타격이 없다는 아이의 진술에 나를 돌아봤다. 그저 알려줘야 하는 걸 이야기했을 뿐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진짜로 날마다 혼을 내냐고 물으니, 아빠가 그냥 이야기했다는 건 혼냈다는 거고, 혼냈다는 건 화냈다는 거라고 솔직하게 들려준다.
육아는 사랑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검사나 통제 따위가 아니고. 따뜻한 마음이 바탕이라면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보채거나 다그칠 것이 아니고. 세상에 홀로 나서기 위해 커가는 아이에겐 무한정 응원하고 지지하는 부모가 필요하다. 긍정과 믿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눈길이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부모에게 바람직하다. 참지 못하고 뾰족한 설교를 퍼붓는 건 아이를 위한다고 말할 수 없다. 오로지 나의 다급한 감정을 채우려는 옹졸한 이기심에 불과하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나와 아이를 위해.
밝은 낮에 손에서 멀어지는 아들은 어두운 밤에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불 꺼진 침실에서 우리는 붙어서 잤었다. 무서워서 반, 붙어 있는 게 좋아서 반. 잠들기 전까지 꼭 껴안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부터 만들어 낸 옛날이야기까지 실컷 떠들다 잠들곤 했다. 언젠가 본인 침대로 건너간 아이는 다시 넘어올 생각이 없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원하는 침구류와 인형들을 배치한 채로 잠이 든다. 처음에 몇 번은 같이 안 잔다고 삐진 척을 했지만, 원하던 반응이 없어서 관뒀다. 방법이 없어서 요즘은 아쉬운 대로 새벽에 몰래 넘어가 아이 옆에 붙어서 숨결을 느끼다 돌아온다. 아침이면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밤새 그리웠다며 다시 곁으로 다가가서 비비댄다.
우리에게 몸과 마음이 떨어지는 독립을 향해서 아이는 나아간다. 결국 이루어질 완전한 분리를 떠올리기만 해도 아내 파랑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나라고 별도리가 있는 건 아니다. 현재 누리는 가까운 따스함이 줄어든다면 마음이 내려앉고 말 거다. 가끔 아이가 예전에 함께 가지고 놀던 물건을 가져와 묻는다. ‘아빠, 이거 기억나?’ 별것 아닌 질문에 순간 가슴이 울렁인다. 얼마 되지 않은 그때가 지나버렸다는 아쉬움과 지금 이 순간도 추억이 되고 말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밤만 되면 조금이라도 몸이 떨어져선 안 된다고 품에 파고들던 아이의 몸짓은 과거가 되어버렸다. 함께 하는 지금도 매번 뒤로 날아갈 테다.
아직은 우리와 함께 걷는 아침 등굣길도 머지않아 우리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이번의 혼자서 돌아오겠다는 선언처럼 언제고 혼자서 가겠다고 할 수 있다. 자연스럽다는 걸 머리론 알지만, 마음은 받아들이길 어려워한다. 하지만 부모로서 아이의 홀로서기를 축하하고 지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게 남는 건 단순하다. 한순간도 낭비되지 않도록 충실하게 사랑하기. 여전히 내 손을 잡아주는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으며.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텅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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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