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요양원에 머무는 90세 넘은 할머니가 본인의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하소연을 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연세가 그 정도시니 신체 노화에 따른 변화는 당연할 텐데도 놀라는 반응이 신기했다고 한다. 아직 그때와는 멀리 떨어진 시간에서 살아가는 나도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다 문득 지금 난 내 몸 상태를 어느 정도로 인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가끔 농담처럼 뱉곤 하는 말이 '정신연령은 고등학생에 멈춰있다'였는데, 정신을 떠나 몸도 따져보려고 하니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불편한 점이 따로 없으니, 그때와 달라진 점을 알기 어려웠다. 물론 누군가는 당장 밖으로 나가서 한 바퀴 뛰어보면 금세 체감할 수 있다고 말할 테다. 그렇다고 어릴 적이라고 아예 안 힘들었던 게 아니니 큰 차이를 느낄지 모르겠다. 아마 그 어르신은 가지고 있던 인식과 실제의 차이가 크게 생겨버려서 놀란 게 아닐까. 그전까진 대충 어느 범주 내에서 별 탈 없이 지내며 몸의 변화를 모르고 살았는데, 갑자기 불편한 점이 늘어나서 슬퍼진 게 아닐지.
누구도 늙을 거라고 미리 생각지 못한다. 성인이 되기 전에도 그렇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렇다. 직접 경험한 바로 어제도 생생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곧 잊어버린다. 이러니 알 수 없는 내일을 인지하고 예상하기란 불가능이 맞겠다. 나이를 물으면 대답하면서도 '내가 벌써?'라며 놀란다. 이건 아주 어린아이도 중년을 넘은 부모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이 딱 내게 맞는 나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언제 번쩍하고 '내가 이만큼 늙었구나'하고 정신이 들까? 어느 날 갑자기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줄어들면서 느끼는 게 늙음이 아닐까 싶다. 전날까지 문제없었던 일이 도움이 없으면 어려워지는 그 순간의 기분이 어떨까. 어떻게든 상상하고 느껴보려고 윤곽을 잡아보지만, 기껏해야 입안의 말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때가 돼서야 이거구나 싶을 테다.
한창때의 연예인을 시간이 흐른 뒤 세월이 묻어있는 모습을 보면 깜짝스럽다. 그때야 비로소 '아, 이게 늙는다는 거구나'하고 느낀다. 그 시간 동안 함께 늙어온 자신도 있는데 밖에서 증거를 찾는 셈이다. 이만큼 자신의 나이 듦을 알아채긴 어렵다. 어릴 적엔 오랜만에 보는 어른마다 '많이 컸네'라고 하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모르지만 쑥쑥 자라고 있던 게다. 오늘도 우린 쑥쑥 늙어가고 있다. 괜히 이렇게 말하니 슬프지만, 아닌 것도 아니니 별수 없다.
다행히 우울함을 떨쳐내 줄 다른 사실이 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늙어가고 결국엔 죽는다. 변태스러운 나만의 기질인지는 몰라도 다 같이 공평하게 받는 불쾌함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어딜 둘러봐도 똑같은 조건이라면 억울하지 않다. 비교할 수 없고 상대적 박탈감이 없다면 세상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 되었을 거라 믿고 지낼 정도다. 누군가 절대적인 청춘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 어떤 것보다 부럽지 않을까? 다행히 그런 건 세상에 없기에 그나마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누구나 다 아는 ‘늙어 죽는다’라는 진리를 왜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할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지금은 지금을 즐겨야 하니까? 그때 가서 피눈물 나게 후회하는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의 우린 좀 달라질 수 있을까?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살아본 자의 이야기는 가치가 있다. 더 나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어쨌든 먼저 해봤기 때문이다. 모두 다 맞다고 끄덕일 필요는 없지만, 필요한 내용을 가려서 듣는다면 도움이 된다. 배움은 다 그런 식이 아닐까? 선배들이 남겨 놓은 깨달음에 내가 겪으며 얻는 교훈을 더하는 방식 말이다. 그들의 나눔에 생소한 사실은 없다. 가족, 사랑, 행복에 대한 뻔한 좋은 말들. 누가 가족이 중요하지 않고 사랑이 나쁘고 행복이 별로라고 하겠는가. 그저 당장 더 급하고 먼저라고 보이는 일에 빠져 돌아보지 않았을 뿐이다. 살아온 날이 남은 날보다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딱 한 가지를 외친다. 당연한 그것들이 제일 중요했다고. 돌아보니 나머지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오늘도 내일도 딱 그 하루만큼 떠날 날을 향해 간다. 알든 모르든 그렇게 지나간다. 몸의 변화는 둘째 치더라도 남은 시간의 소중함은 가끔 상기시켜야겠다. 90대 할머니처럼 나중에 놀랄 때 그 원인이 몸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아이코, 가족을 돌보지 못했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고, 행복하게 살지 못했구나.' 노쇠는 막을 수 없어도 후회는 어찌해 볼 수 있지 않을는지.
<읽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 필레머/토네이도)
노인들에게 인생에 관해 묻고 '진짜 경험'한 ‘교훈’을 듣는다. 유명인이 설파하는 보기 좋고 그럴듯한 가르침과 전혀 다르다. 인생을 모두 경험한 현자들의 가족, 결혼, 육아, 직업, 행복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다. 우리 모두 늙고 그들과 같은 시간을 맞이한다. 변하지 않을 진리다.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현명하게 살아가자.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늘 지금이다.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