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아들

[홍석준의 아빠 육아 백서] Vol.08

by 초록Joon

요즘은 아들을 두 번씩 바라보는 기분이다. 지금 모습을 눈에 담고 있으면 어느새 아기 때 모습이 함께 둥실 떠오른다. 구분이 없었던 과거를 멀리 지나서 확실한 차이를 느끼고 있다. 어느 날은 간밤에 아주 어린 아들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지금과 확연히 다른 그때로 돌아간 장면이 생경했다. 현실로 다시 돌아와 잠든 지금의 아들 얼굴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벌써 이렇게 커가고 있구나 싶어서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다. 옛날과 멀어지는 아들 얼굴을 보면서 어린 아기를 기억하는 시간이 점점 옅어진다.




아기 같은 아들


아들은 여전히 아기 같은 면이 많다. 우리 부부가 하도 어려서부터 만지작대서 스킨십을 좋아한다. 예전 어린이집에서 다 같이 앉아 모이면 아들은 어느새 선생님 다리 사이에 엉덩이를 넣고 앉았다고 한다. 자연스럽고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라 놀라곤 하셨다고. 요즘도 필요한 만짐이 있으면 과감하게 요구한다. 특히 잠들기 전에는 여러 터치가 필요하다. 감은 눈꺼풀을 손으로 살살 돌려서 만져달라 하고, 토닥토닥 배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길 원하기도 한다. 요즘엔 신선하게 발을 조몰락거려 달라고 한다. 이런 요구 없이도 함께 붙어 있으면 아들을 껴안고 비비는데 아직까진 도망치지 않는다.


꿈을 꾸고 나면 꼭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럴 때도 한없이 순수한 아기다. 상상도 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스토리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얼마 전엔 무지개 기차를 타고 내 고향 천안을 다녀오는 여행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줬다. 나에게도 부디 다음 밤에 다녀오라고 신신당부했다. 가는 길도 자세히 알려주고 맛집이 있는 위치도 알려줬다. 다음 날 아침이면 반드시 확인한다. 다녀왔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먹고 무슨 맛이었는지.


아내 파랑의 출근으로 아들이 하교하면 엄마가 없었다. 몇 달을 함께 신나게 지내다가 없으니 엄마 사랑이 샘솟는다. 나와 잘 지내다가도 중간중간 엄마를 찾는다. 이런 모습이 간만이라 또 갑자기 아기로 보인다. 이젠 직접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데도 나에게 부탁하며 한없이 어리광을 부린다. 자고 일어나면 옆에 있어 달라는 '내일 꼭 와!', 밤에 오면 자기를 깨워 달라는 '소리 질러 줘!'를 문자로 전했다.




아이 같은 아들


이런 면이 있는 반면 갑자기 커버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진짜 아기나 동생을 만나서 옆에 두면 자람이 확 느껴진다. 며칠 전에 갓난아기를 보는 아들을 관찰했다. 뭐가 그리 재밌고 우스운지 하염없이 아기를 바라보며 웃었다. 작디작은 아기를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커버린 어린이였다. 둘을 보는 나의 시선은 둘 사이를 지나간 중간의 과정을 복기하느라 바빴다. 언제 저기서 여기로 이렇게 커버렸을까.


이제 교문에서부터 혼자서 등교한다. 교실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학교 담장에서 바라봤다. 처음 며칠은 아무리 불러도 아들은 앞만 보고 걸어갔다. 아마 긴장한 탓에 집중하고 있었을 테다. 며칠이 지나자 그제야 이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줬다. 해맑게 웃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걱정 없이 멋지게 홀로 등교하는 녀석을 통해 온갖 감정이 한 번에 올라온다. 대견함. 뿌듯함. 섭섭함. 아쉬움. 기쁨. 안심. 그리움. 해방감.


아내 파랑과 오랜만에 극장을 다녀왔다. 둘만의 시간은 편안하고 조용했다. 집으로 돌아와 불 꺼진 집안으로 들어서니 고요했다.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온몸으로 웃고 떠드는 아들이 사라졌다. 생각해 보니 처음 있는 일이다. 언제나 아들과 함께 잠에 들었다. 나 말고 신경 쓸 일이 없어 좋았다. 하지만 그 평온한 기분은 허전함까지 달래주진 못했다.


그날 아들은 다른 집에 놀러 갔다. 반나절 다녀오는 것이 아닌 하룻밤을 보내고 오는 큰 일을 하러. 친구네 집에서 신나게 놀고 자고 오는 환상적인 시간이다. 우리 집에 아들 친구가 온 적은 있었으나 아들이 간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음 날 아침, 데리러 가서 만난 아들은 아직 흥분이 남아있었다. 엄청 재밌어서 엄마 아빠 생각은 나지 않았다고. 우리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못 자던 아들이 맞나 싶었다. 어느새 자라 있는 아들을 뒤에 태우고 오는 길이 새삼 낯설었다.




커버린 기대와 모자란 아빠


훌쩍 자라 버린 아들 덕분에 부딪히는 시간이 있다. 산수 문제를 풀 때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알 수 있을 것 같아 기다려주면 아들은 답답해한다. 바로 알려주길 바라지만 내가 풀어 버리면 아들에게 남는 게 없어서 최소한의 힌트만 주고 충분한 시간을 주고 맡긴다. 끙끙대는 기간이 지나고 얼굴이 밝아지면 아들의 갑갑함이 순식간에 걷힌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게 쉽지 않다. 아는 대로 했는데 풀리지 않으니 속이 터지는 모양이다. 나는 나대로 아들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거라 믿기에 꾹 참는다.


양가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할 때도 우리는 어긋난다. 조금만 더 집중해 주고 성실히 대답해 주길 바라지만 쉽지 않다. 통화가 끝나고 나면 나도 속상하고 아들도 지쳐있다. 그때 내게 드는 의문과 서운함은 ‘아들은 분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데 왜 이럴까?'. 그렇게 토라져 자리를 피한 나에게 아들이 와서 쭈뼛거리며 말한다. 무엇 때문에 내가 마음이 상하였는지 알고, 자기도 잘하려고 했는데 잘 안되었다고. 어처구니없게도 어린아이가 건넨 사과를 그대로 받지 못한다. 다음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달라는 요청을 추가로 던질 뿐이다.


애매하게 마무리된 하루는 아들에게도 나에게도 깔끔치 못한 잠자리를 제공한다. 겨우 자고 일어나서 못난 반성을 반복한다. 그래도 아이인데 어른인 내가 더 넓게 받아주어야 했는데, 사과를 먼저 한 것만 해도 대단한 건데. 내가 더 자라야 하는 건지 아들이 더 자라야 하는 건지 고민해 본다. 밖에 나가서도 자는 아들을 보면 틀림없이 자란 게 맞으니, 남은 문제는 덜 자란 어른이겠구나.




두 얼굴의 아들을 대하는 자세


변하는 아들과의 나날을 겪는 건 혼란스럽다. 가끔 아기가 아닌 모습에 놀라며 지금을 다시 살펴본다. 아이는 자란다. 옆에서 매일 보고 있어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쑥쑥 커가는 아들을 보며 기뻐하다가도 멈칫거린다. 아쉬워하고 싶은 순간엔 애를 써서 나를 돌려놓는다. 잡을 수 없는 시간에 목매지 않으려고. 정신을 차리면 우리 인연의 도화지에 놀라움과 감사함으로 색을 칠한다. 아쉬움보다는 그게 더 어울리는 기분이 든다.


때론 아기같이, 또 때론 아이같이 자라는 아들의 지금이 소중하다. 아기의 모습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순 없다. 하나 아직 아들은 내 눈에 작은 아기와 다름없다. 커버리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린다. 또 한 부분이 성장했다면서 놀라며. 점점 한 손으로 한 팔로 아들을 안고 품기가 어려워진다. 막을 수 없는 자람을 아쉬워하는 내 마음이 어색하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라서일 테다. 지금보다 더 커도 여전히 내 손안의 자식이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작을 때 한 번 더 얼굴을 보고 한 번 더 살을 맞대야겠다.


함께하는 육아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저자 홍석준
* 원고료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액 기부합니다.





어느 날 <한국교직원공제회>로부터 육아 칼럼 연재를 제안받았다. 예전에 <여성가족부>의 의뢰를 받아서 썼던 ‘모두가 함께하는 육아’ 시리즈의 글을 보고 연락했다고 설명했다. 쓰던 대로 육아를 주제로 자유롭게 작성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주 양육자 아빠로서 살아가면서 부모 모두 함께하는 육아를 지향하고 실천하고 있다. 내가 적는 글이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길 바라며 연재를 시작했다. 부모와 아이가, 남편과 아내가, 그리고 우리와 우리가 서로 더 이해하기를 바라면서.





세상에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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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https://bit.ly/3u91e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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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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