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에 쓴 글이라 이미 벚꽃은 지고 없지만……
매일 아침 그날의 컨디션은 침대 위 이불을 정리하면서 체크할 수 있다. 두 팔로 이불을 세차게 들어 올려 한번에 이불이 침대 위로 싹 펼쳐져 떨어지면 최상의 컨디션. 절반도 펴지지 않은 채 코 앞으로 뚝 떨어져 버리면 영 기운이 없는 아침인 것이다(참고로 겨울 이불이라 아주 가볍지는 않음). 이렇게 아침부터 이불을 펼치지도 못할 정도로 기력이 없으면 온종일 기운이 없고 의욕도 없어서 하루가 힘들다. 하지만 다행히 요즘에는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좋은 편이라 두 번쯤 시도하면 이불이 쫙 펼쳐진다. 그리고 컨디션이 좋아 아침 운동을 가기 전에 설거지와 배큠까지 완료하고 집을 나서고 있다. 이 정도면 꽤나 산뜻하고 가뿐하게 하루를 시작한 셈이다.
공진단이 효과를 발휘한 것인가? 연말연시에 돌발성 난청으로 입원을 하게 되어 공연히 시부모님께 걱정 근심을 안겨드렸는데 아무래도 몸이 허해서 그런 것 같다며 시아버님께서 공진단을 보내주셨다. 공진단은 70대인 부모님께서 드셔야 마땅한데 아직 팔팔해야 할 며느리가 먹자니 굉장히 염치없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것도 부모님 사랑이니깐'하면서 감사히 받았다. 공진단을 먹으면 눈이 번쩍 뜨인다는 소문도 있던데 나의 경우 혈액 순환이 잘 되는지 확실히 손발이 따뜻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요즘 컨디션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봄이 왔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우리 동네는 벚꽃 천국이다. 올해는 유독 예년보다 빨리 벚꽃 개화 소식을 알렸는데 벚꽃 개화를 기록한 1922년 이후 두 번째로 빨리 피었다고 한다(가장 이른 개화는 재작년인 2021년). 지난 금요일 출장 가는 남편을 따라 제주도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동네 벚꽃 나무에 꽃봉오리만 올라오고 있었는데 3박 4일 제주에 갔다가 돌아오니 벚꽃이 무더기로 활짝 피어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정말 봄이 한창이다.
벚꽃이 활짝 피기 시작하면 괜스레 마음이 설레고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흐드러진 벚꽃 길을 걷고 있노라면 "만약 "앤"이라고 부르실 거면 E를 붙인 앤(Anne)이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하던 감수성이 풍부한 빨간 머리 앤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동심으로 돌아가 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깡충깡충 뛰고 싶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자꾸 불러내서 만나고 싶기도 하다. 벚꽃이 만발한 요즘 같은 날에는 집에만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한 번이라도 더 나가서 두 눈에 그리고 내 가슴에 담아두어야만 할 것 같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벚꽃들의 향연을 만날 수 있는데 그걸 마다 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우리 집 주변에는 벚꽃 명소가 곳곳에 있다. 특히 석촌호수는 해외 관광객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서울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로 매해 인산인해를 이루는 통에 벚꽃 시즌에는 오히려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보다 집에서 가까운 올림픽 공원이나 성내천길(아산병원 뚝방길)도 벚꽃으로 유명하다 보니 굳이 멀리 꽃구경을 나서지 않아도 실컷 벚꽃을 즐길 수 있으니 참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봄을 알리는 벚꽃들의 향연을 즐기는 것은 우리 동네 주민들의 특권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우리 집에는 거의 한 달이나 일찍 벚꽃이 피었었다. 송파 둘레길에 아들 이름으로 헌화한 벚꽃 나무에 가지가 꺾여 덜렁거리고 있길래 남편이 집에 가져와 화분에 꽂아 두었는데 우리 베란다 볕이 좋아 2월 말에 벌써 벚꽃이 개화한 것이다. 그렇게 올봄 나의 첫 벚꽃은 하늘에 있는 우리 아들이 선물해 준 것만 같아서 기분이 참 좋았었다. 봄이 되면 알아서 피고 지는 꽃에게 이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할 일인가 싶지만 눈앞에 있어야 할 아들이 먼저 하늘로 가고 나면 꽃, 별, 바람, 구름마저 특별하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아름다운 봄이다. 이 좋은 봄날,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순간마저도 아름다운 벚꽃은 마치 부모님이 보내주신 공진단처럼 내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인가 요즘 매일 아침 이불이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봄이니까…... 덥지도 춥지도 않고 따사로운 햇살에 바람마저 향기로운 봄이니까 매일 아침 힘 있게 이불을 펼칠 수 있는 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