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배추 May 07.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17.  어린이날의 산책

비가 내리는 날에는 집에 있는 게 상책이다. 집안으로 비가 들어오건 말건 창문을 열어놓고 빗소리를 들으며 차 한잔을 내리고 책을 읽다 보면 이게 바로 신선놀음이다. 문제는 내 작은 아이는 나와는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잘 들리지 않는 빗소리를 들어보라고 해도 지루하다며 밖으로 나가자고 성화다. 비가 몸에 닿으면 찝찝하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져서 나가고 말았다. 오후에는 비가 점차 잦아든다더니 비는 계속 멈추지 않고 내렸다.


뭔가 쏴아쏴아하는 느낌도 아니고, 분무기로 뿌리는 것처럼 퍼지는 봄비. 아마 이 비가 끝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될 것 같다. 연두색이던 나뭇잎도 점차 초록이로 변하겠지. 비를 맞으면 불쾌하다고 했지만, 상쾌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가자 기분마저 재충전되는 것 같았다. 이 맛에 산책하나 보다.


비가 내리는 강물은 잔잔하게 흐르고, 하늘은 먹구름이 사라지는 듯 점차 하얗게 변하더니 이내 변덕을 부리며 비를 힘차게 내린다. 잠시 의자에 걸터앉아 쉬어간다. 철판으로 마무리된 휴게시설은 타닥타닥 빗소리를 리듬감 있게 쳐주는데, 옆 자리에 앉으신 분의 라디오소리만 아니었으면 더 운치 있었을 것 같다.


나무들이 주르륵 늘어선 모습에서 잭슨 폴락의 그림을 떠올려본다. 잭슨 폴락의 그림을 보면, 두서없이 물감을 휘두른 것 같지만, 우연처럼 보일 뿐 의도된 연출이라고 했다. 한 번은 잭슨 폴락처럼 물감을 흩뿌려가며 따라 해 보았는데 쉽지 않았다. 그의 그림처럼 안정감과 무게가 느껴지기는커녕, 내 그림을 볼 때마다 혼돈이 느껴져서 바로 폐기처분했던 기억이 난다. 마음대로 한 거 같지만, 자연에서 보이는 프랙탈구조가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자연을 닮았다.


나도 자연을 닮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