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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May 08.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18. 널 잡아먹지 않아

이 전에도 글을 썼었지만 우리집 시클리드는 여느 시클리드와 같이 성질이 대단하다. 이 물고기종은 고약한 성격 때문에 다른 물고기와 합사도 못한다. 그 이름답게 우리집 고두 마리(노랑이와 하양이)도 어항 밖으로 물이 튀길 정도로 서로 치고 싸우고 있는 중이다. 말귀를 알아 들어야 뜯어말릴 수 있을 텐데, 손가락으로 어항을 톡톡 두드려 볼까 하다가 스트레스만 줄까 봐 그냥 지켜보고 있다.


다행히 노랑이가 얄팍해도 회복탄력성이 좋고, 싸움꾼 하양이는 여전히 바보 같은 구석이 있어서 그나마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어항 물 갈아주려고 어항 안의 온도계라도 뗄라치면, 둘이 벌벌 떨면서 꼭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내 동생 때린 애 누구야? 얘는 나만 때릴 수 있어!”라며 외치는 형제 같다.


두 마리가 정색을 하며 싫어해도 물은 갈아줘야 하므로, 아랑곳하지 않고 뜰채로 노랑이와 하양이를 하나씩 건져서 투명한 대야로 옮겨준다. 물이 바뀌면 스트레스받을까 봐 어항물까지 미리 대야로 옮겨주는 게 벌써 1년이 되는데도 그때마다 아주 난리법석들이다. 밥 줄 때마다 사료통을 흔들면, 꼬리까지 흔들며 물 위쪽으로 오는 녀석들이 어항물을 바꿀 때마다 매번 낯설어하니 참으로 곤란하다.


심지어 어제는 노랑이가 뜰채에서 발광을 하며 튀다가 결국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노랑이사이즈로는 63 빌딩높이라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져서야 요동치지 않는 노랑이를 급하게 주워서 물에 넣어줬더니 잠시 멍하니 있더랬다. 물고기닥터한테 진찰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엑스레이를 찍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답답하기만 했다. 행여나 아플까 봐 시간이 날 때마다 쳐다보는데 보통 죽은 척하며 세로로 누워있는 애가 이날부터 가로로 있기 시작했다. 하양이한테 쓸데없이 덤비지도 않는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던데 물고기세상에는 그런 말이 통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중이다.


다행히 지금 잘 먹고 있어서 한시름 놓았다. 그런데 머리 박고 물고기가 달라지다니 정말 사람이나 물고기나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경우가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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