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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May 10.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20. 단발

아프고 나서 항상 긴 머리였었다. 수술과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매직스트레이트파마였다. 곱슬머리를 곱게 펴고서는 입원을 했다. 다 빠질지도 모르는 머리카락을 펴는 심정은 참으로 먹먹했다. 머리를 하는 내내 살며시 눈물을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유를 모르는 헤어디자이너분은 섬뜩했으리라. (웃음) 다행히 머리카락은 유지되었고 항상 길게 늘어뜨린 채 오랜 시간을 지내왔다. 이젠 매우 짧은 단발이 되었지만.


회사에서는 다들 왜 이제야 단발을 했냐며 훨씬 잘 어울린다고 했다. 어깨뽕이 으쓱으쓱 올라갔다. 단발을 하고 힙해졌다는 등 어린 엠지분들에게조차 칭찬을 들어서 의기양양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친김에 더 짧은 단발을 도전하였다. 역시 과거의 일이 어찌 되었건 미에 대한 열망은 나이가 들어도 숨길 수가 없다.


헤어디자이너선생님께 말씀드렸다.

“회사에서 굉장한 환호가 있었어요.” 수줍게 웃으시며 기뻐하시던 헤어디자이너선생님. 선생님은 다른 분도 만족해했다면서 반달이 된 눈으로 의외로 단발로 잘라주고 혼난 경우도 있다고 하셨다. 해당인의 배우자가 자기는 긴 머리를 좋아하는데 와이프의 머리카락을 그렇게 짧게 잘랐다며 혼구녕을 냈다나어쨌다나.


으잉? 이건 네 머리인가? 내 머리인가?

이것은 네 소유인가? 나의 소유인가? 공동의 소유인가?


내 몸뚱이에 자라난 내 머리카락에 대한 결정은 온전히 나의 것 아닌가 싶어서 굉장히 의아했다. 생각해 보니 나의 작은 친구도 나에게 단발로 자르지 말라고 간절히 부탁했었다.


아이: “자르지 마. 못생겼어”

나: “자를 거야.”

아이: “왜 더 못생겨지려고 하는 거야?”

나: “자존감깎지 마라. 그리고 내 머린데 네가 무슨 상관이니? “

아이: “아저씨 같아서 그래.”

???????????


아줌마도 아니고 아저씨라니. 거슬러 올라가 보니, 미국에서 아이를 픽업하러 갔을 때 운동복에 선글라스를 끼고 비니를 쓴 다음, 머리를 묶은 적이 있다. 스스로는 최고 힙하다며 내가 나에게 엄지척을 날렸는데, 나의 작은 친구는 날 못 알아보았다. 아저씨인 줄 알았단다.


인간적으로 아저씨는 심한 거 아닌가. 그래도 난 내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의견은 겸허히 받아들이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완전한 내 몫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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