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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May 20.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27. 느슨한 관계

오늘은 같은 조분들과 점심을 먹었다. 회사에서 지정한 조의 조원이었기에 서로를 잘 몰랐지만, 희한하리만치 부들부들 융화가 잘 되는 분들끼리 모였던 지라 함께 하는 식사가 무척 가볍고 즐거웠다. 회식 때마다 나이 드신 분들이 2차, 3차를 외치시며 집에 안 들어가시는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에 업무 이외에는 말을 않던 나도 쉴 새 없이 조잘거리고 말았는데 행여나 입방정은 안 떨었나 모르겠지만, 어찌나 신명 나던지. 소통의 점심시간이란 게 바로 이런 거구 나하고 느꼈는데, 어쩌면 일방소통이었으려나? 긁적긁적


자로 잰 듯이 각 맞추어 사는 삶도 그 나름의 매력은 있겠지만, 요즘에는 이렇게 느릿하고 여유로운 게 좋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주제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서로에게 귀 기울여 주는 시간이 소중하다. 특히 느슨한 관계에서 오는 평온함은 계단 대신 오르는 에스컬레이터처럼 편안했다. 서로를 깊게 모르는 만큼 속 깊은 사정은 못 나누더라도, 재미있고 즐거웠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웃고 떠드는 시간이 어찌나 좋았던지 시간이 성큼성큼 지나가버렸다.


오늘 아침에 들은 TED가 생각난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소셜그룹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그룹 중 한 명은 언제나 우울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룹사람들은 그의 아파트를 새롭게 페인트칠해 주며 그의 기분이 나아지도록 도와주었는데 이제는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다고 하지 않는가? 그룹사람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가, 그가 자신의 아파트를 변화시킨 것처럼 자신도 바꿔달라고 사정하자, 결국 그의 여자친구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그는 마침내 여자친구가 생기고, 그 그룹사람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바꿔 나간다는 내용이었다.


사람이 바뀌는 데에는 자기 스스로 변화하려는 의지가 가장 커야겠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지켜봐 주고 기뻐해 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있어야만 우리는 비로소 정말 변화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존재가 더없이 아플 때도 있지만, 역시나 사람을 통해 추억도 만들어지고 더 행복해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오늘 조모임이 앞으로 계속 지속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복도에서 서로 마주치게 되면 우린 분명 서로에게 환한 미소로 인사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 그렇기에 느슨한 관계라도 아기새를 품 안에서 돌보듯이 소중히 여기며 지내고 싶다. 관계의 거리를 논하기 앞서서 우리는 몇 십억만 명 사이에 만난 소중한 인연이니까. 물론 악연 빼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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