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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Jun 05.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40. 잠

잠에 취한 사람처럼 자도 자도 졸리다. 어쩌면 중독은 마약, 술에만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그나마 그제부터 내 두뇌를 조여왔던 두통이 조금 잠잠해진 게 위안이라고나 할까. 두통의 자리에는 더 큰 잠만보가 자리하여 밤 9시부터 꾸벅꾸벅거리고 있다. 사람들은 눈 위에서 대자로 누워 팔을 위아래로 움직여 천사의 날개를 만든다는데, 침대에서 그러고 있는 나는 언제나 눈이 게슴츠레하다. 지금도 출근만 아니었으면 12시까지 내리 잤으리라. 나의 모닝미라클이 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출근 때문인지도 모른다.


연예인들은 바쁜 스케줄 때문에 잠이 부족하다 보니 어디든  머리만 닿으면 자게 된다고 한다. 나도 머리가 닿으면 잠이 온다. 그럼 나도 연예인? 이것이 잘못된 3단 논법의 하나이겠지만, 파란만장한 삶의 다채로움이 나오는 내 꿈에는 정말로 연예인들이 나오기도 한다. 꼭 좋아하는 연예인만 나오는 게 아니라서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도 있지만,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실제의 사람이 내 머릿속을 휘저어 다니는 모습이 신기하다. 어쩌면 이 꿈이라는 영역이 나를 잠으로 이끄는 걸지도.


꿈속에서는 자유롭고, 공간과 시간의 경계가 무너지며 말도 안 되는 전개로 예측불가하다. 그래서 잠에서 깨면 한동안 ‘아니 이게 무슨 꿈이야.’라고 생각했다가도, 5분 정도 지나면 희미해지는, 내 정신을 빌어 실제 하는 가상세계이다. 그래서 꿈을 꾸고 나면 그 모래성 같은 꿈이 잊히지 않도록 조용히 기억을 더듬어 보곤 한다. 기억이 나다가도 자연스레 점점 소멸해 가는 나의 꿈들.


오늘은 100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려는데 엘리베이터 두 개가 몹시 불안정하더랬다. 급하게 내려가야 해서 그냥 못 본 척 타려고 했지만, 마그마가 유동 치듯 흔들리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멈칫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엘리베이터는 공간을 초월하여 90도로 누워버리더니 사람들이 파도 위에서처럼 고꾸라졌다. 다행히 내 머릿속 소방관은 어벤저스처럼 빨라서 내가 눈을 끔뻑했을 때는 이미 구조 중이었고, 두 개밖에 없던 엘리베이터는 폐쇄되었다. 어떻게 내려가지? 비상시를 대비한 대체물은 바닥에 사람 발만 놓을 수 있는 철구조물로 마치 하늘을 무방비상태로 날아다니는 형태의 탈 것이었다. 그야말로 100층을 슝 하고 내려가는 형태. 심지어 탄 사람이 떨어질까 봐 쇠줄로 사람들을 묶는다. 결국 나는 계단을 선택했고, 밖이 잘 보이지 않는 뿌연 창문을 보며 재미없다 여길 즈음, 어찌 된 일인지 99층까지 물바다가 되어 있다. 다른 곳으로 빠져나 가려면 티켓을 구매해서 이용해야 했고, 꿈속에서도 절약정신에 투철한 나는 티켓은 사지 않겠다며 99층에서는 그냥 다른 곳으로 빠진다. 그렇게 걸어가다 보니 나오는 한적한 마을. 응?


거기에는 배우 박준금이 나오고, 그녀를 사랑하는 3인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개그맨 박수홍이었다. 응? 심지어 나라는 존재는 없고, 내가 배우 박준금이 느끼는 모든 것을 감각하는 것으로 보아, 나=박준금형태였던 듯한 그런 희한한 꿈이었다. 거기에는 그 3인을 양자로 받아들였던 세상 악독한 어머니가 계셨고, 그 악독한 어머니가 아프자 배우 박준금을 타박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그런 이상하고도 무서운 관계 속에서 잠에서 깼다. 그녀는 과연 그 험난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물론 개꿈이다. 이게 무슨 개꿈이냐며 머리를 흔들고 책상에 앉았더니 다시 졸려서 밥을 먹고 출근하는 길이다. 커피 끊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추출액이라도 사다 놓아 물에 희석해서 마셔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사무실에서 배우박준금 2탄에 대한 꿈을 꿀 것 같은..


춘곤증인가?


싶었지만, 이제는 봄이 아니라 여름이다. 아니면 내가 유난히도 느리게 봄을 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이 떨어진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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