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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Jun 24.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55. 이유 같은 거 아무렴, 어때

요양병원에서 지낼 때였다. 내가 지내던 방에는 나까지 6명이 있었고, 오래 있었던 순번대로 원하는 침대를 가져가는 구조였기 때문에 나는 가장 가장자리의 침대에 자리 잡게 되었다. 문 바로 옆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잠잘 때는 문틈으로 비상구를 알리는 빛이 새어 들어왔다.


도착한 첫날, 저녁시간이 되어서 ‘밥은 어디서 먹지?‘하며 우물쭈물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같은 병실사람들끼리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 구조였다. 거기서는 이름보다는 나이와 병명을 궁금해했고, 어색한 인사가 끝나자, 방의 어르신들은 각자의 비법이 담긴 김치를 꺼내놓고는 한입씩 먹으라고 했다. 낯선 사람의 김치는 처음 보는 파김치 같은 거였는데 약간 달랐다. 물어보니 이름이 고들빼기라고 했다. 수술하고 온 지도 얼마 안 되었고, 입맛도 없어서 별로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첫날부터 네가지 없는 아이로 찍히고 싶지 않아서 젓가락으로 들어 올려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우와 이거 엄청 맛있네요.”


빈말이 아니었다. 처음 먹은 고들빼기맛에 빠져서 지금도 가끔 고들빼기를 사서 먹곤 한다. 그렇지만 사 먹는 고들빼기에서는 그때 먹은 고들빼기맛이 안 나서 이제는 더 이상 사 먹지 않고 있다. 그렇게 김치를 밥에 얹고, 별도로 구워온 김을 밥에 싸 먹으며 처음 본 사람과 겸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서로에게 익숙해지더랬다.


말이 요양병원이지, 병원 안에서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어느 날은 우리가 어쩌다 이리 아프게 되었는지 서로 따져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사람은 이리저리 밖으로 도는 남의 편때문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자기는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1,000m씩 수영을 하던 사람이라 알 수가 없다고 했다. 100명이 있다면, 100명의 다른 삶이 존재하는 것이니 교집합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 가장 나이가 많으신 분이 하시는 말씀,


“우리가 착해서 그래.”


그때 모두가 나름 끄덕였던 이유는 결국 과학적이지도 않은 두루뭉술한 것이었다. 밥벌이를 하면서 쉬는 법 없이 지내다가, 혀의 반이 없어도 사춘기인 아이들의 변덕을 받아주느라, 항암을 하면서도 아름답게 꾸미고는 학교선생님 상담을 가느라, 아프기 전에도, 아프면서도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이렇게까지 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기에 나름 납득이 된 게 아닐까? 그런 삶을 감내해 왔으니, 우리는 너무 착한 거라고.


물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수도 있다. 밤늦게 매일 마시던 술이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고, 유전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으며, 앞만 보고 가던 삶에 브레이크가 걸린 걸 수도 있다. 그런데, 이유 같은 건 찾아서 뭐 할까. 거기엔 진짜 이유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르고, 하나의 이유를 대기에는 너무 복합적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김영하작가님이 알쓸신잡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스인식으로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미의 여신이 나를 좀 시기하나 봐. 내가 좀 동안이잖아. 그런데 풍요의 신이 나한테 반해서 곧 낫게 해 줄 것 같아. 다 내가 잘 나서 이렇다고. “하고 말이다.


물론 말만 이렇지, 울보인 나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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