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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Jun 25.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56. 표리부동

우리 집에는 물건이 많이 없다. 그런데도 더 간소하게 만들고 싶단 생각이 든다. 물건이 많으면 정신 사납고, 그 물건들이 그 자리에서 잘 있을 수 있도록 챙겨야 하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법정스님께서 난을 키우면서 그 난이 어찌 될까 저찌 될까 하며 걱정했던 사연에서 무소유를 말씀하셨는데 이제야 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고기를 키우고 나서는 물고기 물을 갈아줘야 하는 날이 다가오면 압박감을 느낀다. 귀찮아서 ‘에라 모르겠다’며 하루라도 미루면 물고기들이 아플까 봐 걱정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집에 들여온 식물이 무럭무럭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가도 물 주는 걸 깜빡한 날에는 회사에서도 빨리 식물에 물을 줘야겠단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운다.


소유하기 위해 몸을 갈아가며 일했는데, 그게 오히려 정신을 갉아 먹고 만다. 그래서 많이 비워냈음에도 또 비우려고 하고 있다. 한꺼번에 할 생각하지 말고, 시간을 들여 하루에 한 개씩 버리다 보면 조금 더 가벼워지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오늘만 택배가 4개 왔다.

마음은 무소유인데,

행동은 풀소유라 참으로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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