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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Jul 03.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64. 집순이가 집 밖을 나갔더니 경험한 세 가지 신기한 일

오늘은 병원검사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었다.

빈약한 체력을 가지고 있지만, 먼 길 나가는 김에 예술의 전당에서 뭉크전시회를 봐야지 했던 게, 강남에서 와인사업을 하는 학교선배까지 만나고 왔다.


슈퍼 P인 내가 “지금 봐도 돼요?”하면,

슈퍼 J인 선배는 매우 당혹스러워한다(웃음)


집-회사만 똑딱이로 오가는 나로서는

오늘 일정은 굉장히 하드코어적인 여정이었는데,

심지어 장을 보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그 동네주민인 회사후배님을 우연히 만나서 인사까지 나눴다.


굉장한 하루였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간 병원에서는 진료를 받기 전에 신장과 몸무게를 재는데, 크게 늘어난 몸무게와 조금 짜부러든 신장은  더 이상 종이로 출력되지 않고 자동으로 전송되었다. 게다가 간호사선생님께서 사람 대 사람으로 대기환자를 순서대로 접수했던 일은 키오스크가 하고 있었다. 키오스크에 입력하면 저절로 대기등록이 되는데, 내 차례가 다가오면 문자까지 보내준다. 컴퓨터가 잘 안 되면, 일단 껐다 켜는 나로서는 정말이지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사람의 눈으로 영상을 판독한다는 게 뭔가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뭐 어쨌거나 저쨌거나 검진결과도 괜찮아서 기분 좋게 산책길까지 걷고는 뭉크 전시회를 보러 갔다. 표를 사고,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는데, 이제는 오디오표시가 된 그림 앞에만 서면 저절로 오디오가 나오더랬다. 나는 그대로인데, 주변이 확확 바뀌고 있었다.


테크의 발전을 느끼며 뭉크 전시회 안으로 들어갔는데,, 뭉크의 사진을 보고 까무러칠뻔했다. 뭉크의 생김새가 나와 친한 팀장님이랑 똑같았다. 미래혁명을 눈앞에서 두 번이나 체험했는데, 이제는 도플갱어 혹은 전생과 같은 비과학적인 일까지 경험하게 된 것이다.


‘팀장님, 여기서 왜 있으삼?‘이라고 문자를 보내자, 크게 부정하던 그.


그렇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오디오가이드를 듣는데, 뭉크이야기 중에 그가 그린 초상화 관련 스토리가 너무 웃겼다. 뭉크에게 초상화는 그의 주요 수입원이었는데, 메타인지가 낮았었는지 의뢰인의 마음 따위보다는 의뢰인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한다. 예를 들어, 아주 고지식한 모습을 보여주는 꽁 닫은 입술을 더 꽁하게 그린다던지. 그러다 보니 의뢰자들은 그 결과를 몹시 싫어했다는데 그게 왜 그렇게 웃기는지. 어쩌면 이렇게 웃는 나의 메타인지도 문제이려나.


뭉크를 보고 학교선배를 보러 갔는데, 그의 건장한 체격은 여전했지만, 얼굴이 1/3 가량 줄어 있었다. 상대적으로 살이 찐 나는 뭔가 질량보전의 법칙처럼 선배가 뺀 살 만큼 내가 가져간 느낌이었는데, 알고 보니 건강이 안 좋아져서 식이요법 중이랬다. 그리하여 우리는 흙 맛 나는 건강야채주스를 만드는 법 등 천년을 살아가는 식사법과, 그 흙 맛보다 더 한 인생살이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건승을 기원했다.


옛사람을 만나고

미래적인 기술을 경험하고

누군가의 전생을 알게 된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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