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토룡구조대
초록초록 산을 유유자적하게 걷고 싶은데 더워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 더위라면 정확한 시간에 딱 맞추어 산책을 했던 쇼펜하우어도 집에서 나오지 않았으리라.
다행히 오늘은 오랜만에 아침 일찍 일어났다. 기지개를 켜고 단순한 스트레칭동작을 한 후에 무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내친김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동네산으로 향했다. 아침 7시가 되기 전이었지만, 햇살은 이미 오늘의 지구를 불태우리라 마음먹은 것처럼 뜨거웠다.
그런데, 길바닥을 보니, 지렁이들이 꿈틀꿈틀 보도블록 사이를 기어가고 있더랬다. 장마도 끝났건만, 무더위 속에 지렁이도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어렸을 때 지렁이는 정말이지 세상 징그러운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예쁜 눈망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끈미끈한 몸이 흙색을 하고서는 몸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모습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모든 생물에게 자비를 베풀라 하셨지만, 이 지렁이는 나의 자비의 선을 넘은 생명체였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지렁이들은 전혀 달랐다. 겉만 보고 평가할 수 없는 건 사람뿐만이 아닌지, 흙속에서 사는 지렁이들 덕분에 흙이 얼마나 비옥해지는지를 듣다 보면, 지나가다 지렁이를 만나면 감사의 말마저 전하고 싶어질 지경이다. 그런 이점 덕분에 토룡이라고도 불리는 그들은, 안타깝게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멘트 위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있더랬다. 자칭 토룡구조대인 내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었는 광경이었다. 주변에 떨어진 조그마한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다가 토룡을 살짝 들어 올려서 흙속으로 돌려보내주는데, 이 녀석들이 어찌나 발버둥을 치던지. 자신도 모르게 토룡에게 말을 하고 말았다.
“조금만 참어. 여기 있음 죽어. 흙으로 데려다줄게.”
우쭈쭈우쭈쭈하며 토룡을 구해내고 보니, 나를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보는 이웃아주머니들. 멋쩍어서 씩 웃어 보였지만, 그다지 신뢰한 얼굴들은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산으로 올라가는 길 내내 나는 나뭇가지를 들고서는 토룡을 구하다가 등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그새 또 집 나온 지렁이들은 이미 시뻘건 태양에 저세상을 터치하고는 작은 개미들에게 점령되어 있었다. 힝-
평균 1도 오른다는 건 별 것 아니게 느껴지지만, 겨울 -10도/여름 30도가 겨울 -36도/여름 58도의 격차는 어마한 것인지도 모른다. 평균이라는 무서운 수치와 새로 생긴 열로 인한 에너지는 절대 스스로 소멸하는 일이 없다는 법이 가끔 소름 끼치게 무섭다.
이 상태로 가다간 삼체인들이 지구를 점령하러 오기 전에 지구가 폭삭 늙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삼체 2권 읽는
중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