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온천 가는 거 어렵지 않아요.
인생이란 몹시 힘든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인생은 고행'이에요. 다행히도 인생 곳곳에는 잠시 숨을 돌릴만한 포인트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순신장군님께서 '난중일기'에 쓰신 것처럼, 안팎으로 팍팍한 상황에서도 사람을 지탱시키는 건 어쩌면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그 순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당장 너무 힘든 프로젝트가 있더라도, 친구와 먹을 바베큐에 힘을 얻는 것과 일맥상통한 일입니다.
그리하여 저희 가족은 한 달에 1번 정도는 식도락을 포함한 국내여행을 떠납니다. 자가용을 소유하지 않은 드문 세대로서 어딘가를 놀러 가는 게 쉽지는 않지만, 느긋한 마음만 먹는다면 기차와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못 돌아다닐 곳이 없어요. 도로상황이나 운전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편안하게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보면, 기나긴 이동시간마저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기차에 앉아서 벌써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모르겠네요. 제 작은 친구는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까지 나누더니 이제는 4 좌석 자리를 무척 좋아합니다.
저번 한 주는 몹시 힘들었습니다. 당장 어디론가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회사일로 스트레스가 많은 남편과 개학으로 세상이 무너진 제 작은 친구도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에 가본 곳이 온양온천역입니다. 1호선을 쭉 타고 가도 온양온천역까지 갈 수 있지만, 저희는 엉덩이를 지긋이 붙이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체질이라서, 굳이 서울역까지 가서 KTX로 천안아산역에 도착한 다음에 거기서 다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온양온천역까지 갔습니다. 시간상으로는 1호선을 쭉 타고 가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쾌적하게 잘 다녀왔습니다. 왜냐면 기차라는 건 지하철과 다르게 어디론가 떠난다는 확실한 형태로 보여주기 때문이죠. (웃음)
그럼, 뚜벅이의 온양온천여행 떠나보겠습니다.
가는 방법
1. 1호선을 타고 쭉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2. 저희는 서울역-KTX천안아산역-1호선 온양온천역의 형태로 갔고, 온양온천역에서는 우버를 이용해서 이동하였습니다. 생각보다 택시도 빨리 잡히고, 요금도 만원 이하로 나왔어요.
온양온천역의 신천탕
온양온천에 도착하면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동그란 광장이 보입니다. 마치 여수가 생각나는 비주얼이었는데, 여수가 훨씬 밝고 깨끗한 분위기입니다. 토요일에는 온양온천역 바로 옆에서 농산물을 파는 오일장이 열리는데, 채소와 과일이 매우 저렴합니다. 하지만, 뚜벅이 여행의 기본은 손이 가벼운 것이므로 아무것도 사진 않았어요. 많은 분들이 말린 고추를 사가시던데, 고추가 유명한 걸까요? 확실한 건 온천이 유명하단 겁니다.
온양온천에는 실제로 크고 작은 온천이 많이 있는데, 저희는 도보로 가기 편한 신천탕으로 갔습니다. 쿠폰판매도 있는 것을 보니, 정기적으로 오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입장해 보면, 정말 온 동네 할머니들이 다 모여계십니다. 그만큼 핫플입니다. 럭셔리 온천은 아니더라도 가성비 좋은 온천이니 추천드려요. 물도 좋아서 피부가 부들부들해집니다. 단, 목욕탕 일진 할머니들이 굉장히 무섭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하게 씻고 들어가셔야 합니다. 하반신만 담근다고 머리 안 감고 들어가면 호된 경험을 겪게 되시니깐요. 할머니들끼리 싸우시는 모습을 보며 퇴장했는데, 그 사이에 낀 직원분이 몹시 괴로워하더라고요.
아리랑 쌈밥
온천을 했으면 든든하게 먹어야 합니다. 해온양온천역 근처에 아리랑 쌈밥집이라고 본점/분점이 있을 정도로 나름 핫한 음식점이 있었습니다. 겉모습은 조금 움찔했지만, 매우 맛있었어요. 대신 금액이 싸진 않습니다. 제육쌈방정식 2개에 우렁쌈밥정식 1개를 시키고 나니 5만 원이 가까운 금액이 나오거든요. 하지먼, 그 가격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맛깔난 반찬과 된장찌개가 세팅이 됩니다. 온천하고 먹으면 또 얼마나 맛있게요. 무릎을 탁 치며 '이게 바로 돈 맛'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물론 음식점의 겉모습만 보고 기대를 안 했던 탓도 있었겠지만요. (웃음)
현충사
말로만 듣고 교과서로만 보았던 현충사를 직접 가보았습니다. 기사님께서 저기서 표를 사면 된다고 했는데, 현충사는 무료입장이에요. 아무래도 현지에 사시는 기사님도 현충사를 가보신 적이 없으신가 봅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63 빌딩 안 가보는 거랑 비슷할까요?
현충사는 이순신장군님의 영정이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써 땡볕에 걷기에는 쉽지 않은 경사로입니다만, 연못도 보고 지나가는 뱀도 보며 걷다 보면 금세 새로 지어진 현충사에 도달합니다. 저 멀리 군인경례를 하시는 분도 있으시던데, 괜히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가가 촉촉해지더라고요. 저 또한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결국 원래의 모습인 원자로 돌아가는 게 세상의 이치이니, 이순신장군님도 어디선가 이 인사를 듣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현충사 전시관도 들렸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해놓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시청각실의 영상은 다들 끝까지 정도로 두 눈을 사로잡으니 놓치지 마셔요.
지중해마을
갑자기 왠 지중해마을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리스의 지중해마을을 본뜬 곳이 아산에 있다더라고요. 실제로 가보면 뭔가 지중해라고 하니 지중해인 것 같이 보인다라는 느낌의 마을입니다. 이곳은 카페나 음식점이 많아서 잠시 쉬기 좋아요. 인스타분들은 사진을 편집해서 정말 지중해처럼 보이게 하시던데, 전 아무리 찍어도 하얀 건물이 있는 아산의 마을같이 보였습니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카페에서 책을 보다가 천안아산역까지 택시를 타고 갔는데 10분이면 도착해서 마음도 금전적으로도 매우 편했습니다.
서울역 서울로
요즘 서울역이 무척 좋아졌더라고요. 구석구석에 음식점이나 가판도 많이 생기고, 정비된 3층과 4층에는 맛집과 카페까지 입점한 상태라 서울역에 놀러 가도 될 정도였습니다. 특히나 처음으로 서울로를 걸어보았는데, 롯데마트 4층으로 나가면 바로 연결되니깐 한번 꼭 가보세요. 하이라인 같은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밤에 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 데 색다른 묘미가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회현역까지 걸어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오는 길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나 목욕탕 일진 할머니들과 서울로였으니 이번 뚜벅이 여행도 참으로 즐거웠네요.
자동차가 없어도 즐길 수 있으니 우리 놓치지 말아요.
때론 인생에도 아날로그가 필요하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