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다리 윌리엄스버그브리지를 두 다리로 건너봅니다.
워킹맘으로 혼자 아이를 돌보다가 큰 일을 겪게 되면서 몸과 마음이 무너진 적이 있다. 그때, 남편은 뉴욕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우리는 반기별로 보는 사이였는데, 나의 육체와 정신이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뉴욕에서 재회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그 해가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이었다.
코로나감염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맨하탄사람들은 재앙의 중심이라도 된 것처럼 반응하기 시작했는데,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나 새삼 느끼던 때였다. 근처 슈퍼마켓에서는 사람 수를 통제해서 1시간 이상 대기는 보통이었고, 들어가더라도 식품코너는 텅텅 비어있었다.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보이는 물건들을 마구 카트에 밀어 넣다 보면 400달러가 나오는 기염을 토했다. 더불어 나도 영수증을 보고 토할 뻔했다.
문제는 그게 슈퍼마켓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어서, 박물관이고 미술관이고 모두 문을 닫았더랬다. 게다가 인구밀집도가 높은 맨하탄은 기피지역이 되어 다들 서둘러 떠나면서 뉴욕은 점차 배트맨의 고담시티 그 자체가 되었다. 사람 많던 소호거리마저 자동차나 사람이 없어서 그냥 찻길로 걸어 다녀도 될 정도였으니.
심심하더랬다.
잃어버린 몸과 마음을 되찾자고 가족들이 모두 뉴욕에 모였는데,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사고 싶은 물건을 살 수도 없는 마켓과, 근처 공원뿐이었다. 극내향인에 일등집순이지만, 타발적 집순이는 사양하고 싶었다. 결국에는 뭐라도 하고 싶은 나머지, 맨하탄에 만들어진 다리를 직접 걸어봐야겠단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일단 걸어보는 거야
가장 가까운 브루클린브리지는 난이도가 낮아서, 윌림엄스버그브리지를 선택했다. 로어맨하탄에 살았기 때문에 그다지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지만, 내 작은 친구를 데리고 윌리엄스버그브리지까지 꾸역꾸역 걸어갔다.
윌리엄스버그브리지 근처에 Clinton St Baking Company와 Russ and Daughters Cafe 등 맛집도 많지만 우범지역이기도 했다. 지금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약을 파는 분, 약을 빠는 분, 약에 취한 분 등 피하고 싶은 여러 종류의 분들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고, 누군가 내게 다가오려고 하면 온몸이 쭈뼛쭈뼛 섰다. 당시에는 ‘코로나가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리라 추측된다’라고 보도되어, 동양인혐오도 극에 달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여기까지 온 거야."
나의 선택이 한스럽게 느껴졌다. 혼자 왔으면 말을 안 하겠는데, 아이까지 데려왔으니 어깨가 단단하게 굳어가더랬다. 그냥 발걸음을 돌릴까도 생각했는데, 그러긴 싫었다. 여기까지 겨우 왔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간다는 게 그냥 마음에 안 들었다. 나의 옷을 꼭 잡고 내 옆에 꼭 붙어 있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돌진했다.
윌리엄스버그브리지는 찻길을 건너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잠시 신호까지 대기를 타야 해서 잠시 멈췄다. 1분이 10분처럼 느껴졌다. 차가 오지 않는 이 순간 무단횡단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윽고 walking sign이 뜨고 우리는 윌리엄스버그브릿에 드디어 발을 디뎠다.
에베레스트 정복이 이런 느낌일까?
분홍색의 다리는 코로나 따위는 전혀 나랑 상관없다는 듯 핑크의 쾌청함을 뽐내고 있었다. 색이 주는 위안이라는 게 확실히 있는 건지 나의 마음도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중앙에는 지하철이 지나고 있고, 중간중간 다리 밑이 보이는 이 광경을 처음 보아서 낯설었다. 옆으로는 강이, 아래로는 지하철이 지나는 모습을 보며 역시 중도에 포기하지 않기 잘했다고 스스로를 대견하고 뿌듯하게 느꼈다. 답답한 뉴욕생활을 견딜 수 없었던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는지 중간중간 조깅을 하거나 걷기를 하는 분들이 보였고, 통학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어느 모르는 동네에 가서 다리 하나 건넜을 뿐인데, 그 당시에는 대단한 모험이라도 한 것 마냥 윌리엄스버그브리지를 건너고 나서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문제는 윌리엄스버그브리지가 끝나는 베드포드지역도 그다지 안전지대는 아니어서 곧 지하철을 타고 다시 윌리엄스버그를 건넜지만.
땡볕에 낯선 곳을 걸어본다는 거,
어쩌면 별 거 아니지만 지금까지 기억나는 거 보면
추억을 만드는 건 꼭 커다란 이벤트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소소하게 안 가본 길로 돌아가기도 하고, 안 빌려보는 책도 빌려서 보곤 한다.
모험이란 꼭 거창할 필요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