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하탄의 잔디에 철퍼덕 앉아 내가 되는 시간
새벽 4시 40분. 지금 나는 발이 너무 시렵다.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실내적정 중 최저온도로 살고 있기 때문도 있겠지만, 새벽녘의 고요함이 사무쳐서 더 춥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그에 반해, 소풍은 따스한 느낌이다. 봄에 가는 소풍이 많아서인지도 모르지만, 패딩이나 두꺼운 옷을 입었던 기억이 없다. 게다가 김밥이라는 단어가 마냥 따숩다.
소풍은 지금도 설레인다. 아침점심저녁으로 하루종일 김밥을 먹는 날이기도 하고, 평소의 풍경과는 다른 곳으로 향하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동시에 귀찮고 무섭기도 했다. 학교가 아닌 곳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버스를 타는 게 번잡스러웠고, 모든 이가 김밥을 싸 오기 때문에 서로의 도시락을 비교하기도 수월했다. 더군다나 친구가 없는 이는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그런 의미로 소풍은 즐겁고 외롭다.
어렸을 때, 학교소풍을 가게 되면 언제나 올림픽공원을 갔었다. 별다른 액티비티 없이, 커다란 들판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좀 걷다 보면 끝나는 소풍. 별 거 없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 별 거 없는 점 때문에 소풍이 소중하다.
맨하탄(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은 겨울만 빼면 언제나 피크닉이 열린다. 별다른 준비 없이 근처 샐러드집이나 음식점에서 테이크아웃해 온 음식을 가지고 잔디에 철퍼덕 앉아서 먹으면 준비 끝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음식을 흘려도 쓱쓱 닦을 수 있는 비닐돗자리를 많이 쓴다면, 미국은 희한하게도 천을 펼쳐놓고 먹는 경우가 많다. 피부에 닿는 촉감을 중요시해서일까? 아직도 궁금하다.
이렇게 잔디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다가 주변을 흘깃 보면, 점심시간에 맞춰 연주하는 음악가도 있고, 체조를 하는 사람도 있고, 서커스의 기본동작을 알려주기 위해 나온 사람들도 있다. 물론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그냥 누워있는 사람도 있으며, 축구나 테니스를 배우는 사람도 있으니 무얼 해도 이상하지가 않다. 꽃을 보고 즐기는 공원이 아닌, 그 안에 직접 참여하어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공원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시간이 생길 때면, 그릭레스토랑에서 피타 샌드위치를 사서 혼자 피크닉을 가기도 했다. 물론 혼자보다는 여럿이 있을 때가 더 즐겁다. 각각 음식을 싸와서 나눠먹는 재미도 있고, 서로 담소를 나누기도 하며,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노는 모습에 흐뭇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할 필요 없는 혼자만의 소풍시간이 가장 나다운 시간이 되기에 혼자도 좋았다. 그래서 잔디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계절이 되면(겨울에는 잔디보호를 위해 막는 곳이 더러 있고, 심지어 바람이 쎄서 춥다) 도시락을 싸서, 혹은 도시락을 사서 혼자 조용히 잔디에 앉는다.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따스한 햇볕아래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온전한 내가 된다.
한국에 돌아온 요즘,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잔디에 앉아 즐기던 나 혼자만의 소풍시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잔디보호’라는 팻말아래 잔디는 어느새 꽃처럼 관상용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아 엉덩이는커녕 발도 못 디디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