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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Apr 24.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이야기

4. 즉흥적이지만 즉흥적이지 않은 수술

그제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A Thousand Splendid Suns)’라는 책을 읽었다. ‘연을 쫓는 아이’를 지은 작가가 쓴 글이라 비슷한 맥락이지만, 전쟁의 폐해와 그 속에서 죽어나는 일반시민들의 모습은 글로만으로도 너무 처참했다. 이야기 중에는 주인공이 마취제수급이 어려워 마취 없이 배를 째는 장면이 나왔는데, 실신하지 않고 과연 그 수술이 가당키나 할까 했다.


그리고 어제, 난 수술대 위에 다시 올랐고, 피부마취는 잘 듣지 않는다고 배를 쨀 때까지 참으라는 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웬 수술이냐면, 배 부근에 생긴 양성종양을 검사하러 갔다가, 때마침 수술이 가능했고, 때마침 아이는 학원을 갔고, 때마침 기분이 좋았다. 그리하여 수술대 위에 누워 배 위에 갈색의 소독약을 바르게 된 것이다. 즉흥적이지만

즉흥적이지만 않은 수술.


부위가 컸지만, 살을 째고 나면 힘든 파트는 어느 정도 끝나니 그때까지 참으라고 했다. 갑자기 떠오른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수술실에 누워있는데, 소설처럼 간호사선생님이 손을 잡아 주었다. 수술경험이 많은 터라 너스레도 떨어보았고, 생살을 째는 순간 생판 처음 본 간호사선생님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타들어가는 살을 칼로 찌르는 날카로운 느낌과 살이 타는 감각이 쌀알처럼 하나하나 느껴졌을 때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점심으로 고기를 구워 먹고 와서인지 더욱더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세 명의 간호사선생님들이 각각 다리와 손과 팔을 잡아 눌렀다. 살이 찢겨 나가는 고통은 생각보다 컸고 호흡이 가빠지자 심호흡을 하라고 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모든 것이 느껴졌다. 의연했던 좀 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간호사선생님의 두 손을 땀에 절은 손으로 꼭 잡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그곳은 아프간이었다.


문득 아드레날린이 폭발하지 않을 정도의 아픔 속에서도 절규하고 비명을 지르는 내가 과연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할아버지께서는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했고, 많은 고초를 겪으신 후의 일은 들은 바가 없다. 그렇지만 말로 듣지 않고, 글로 전달받지 않아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고개가 떨구워진다.


어제의 고통 때문인지 하늘도 비를 엉엉 쏟아 내고 있다. ‘캐스트어웨이(Cast Away)’의  톰행크스가 아픈 이빨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았던 걸 잊지 말고 언제나 건강을 챙겨야겠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어떠한 아픔을 뒤로 미루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니까.


그럼, 출근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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