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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Apr 26.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6. 메모메모메모

요즘 들어서 블로그에 북리뷰를 열심히 쓰고 있다. 책을 워낙 많이 읽다 보니, 읽었던 책을 의도치 않게 또 읽게 되는 경우가 있게 되어 본의 아니게 시작하게 되었다. 문제는 책 읽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북리뷰가 자꾸만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책을 종종 사선으로 읽음)


그래서 읽은 책은 무조건 다 쓴다라는 마음가짐보다는 조금 가볍게 마음 가는 대로 끄적이는 중인데, 재미있는 책은 좋았던 구절을 추려내기가 참으로 어렵다. 리뷰를 쓰자면 좋은 구절도 넣고 싶은 마음이 커서 포스트잇으로 체크하는 편인데,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마다 포스트잇은 저 멀리 다른 방에 있다. 이야기의 뒤가 궁금한데 포스트잇을 가져오자니 맥이 빠진다. 재미없는 책이야 잠시 멈춰가고 싶은 마음이 요동을 치니 좋은 구절 표시는 기가 막히게 하지만서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대충 하는 북리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부장님은 나랑 책취향이 무척 비슷한 분이었는데 그분은 내가 아파서 입원했을 때나 휴직하고 복직할 때마다 책을 보내주시곤 했다. 책을 보냈다는 문자 하나 없이 책이 도착하여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책 택배 시키신 분이죠?”

“아닌데요. 책 안 시켰는데요?”

“***씨아니예요?”

“맞는데요. 안 시켰는데요.”


물론 이제는 내가 모르는 책이 도착하면 ‘아 부장님께서 보내셨구나.’하고 보내는 사람을 확인하면 99퍼센트는 부장님이다. 책을 읽으면서 필사를 한다던가 메모를 하게 된 계기는 사실 부장님이었다. 어느 날, 좋은 구절이 있다면서 양복 안쪽 호주머니에서 작은 검은색 가죽 수첩을 꺼내 보이셨다. 솔직히 옛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런 내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필사했던 내용 중 하나를 읽어 주셨다. 스마트폰으로 결제까지 하는 시대에 앱을 이용하지 않고 ’왜 굳이 수첩을?‘이라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컴퓨터가 잘 안 되면 껐다 켜는 정도의 컴지식을 가진 주제에 필사를 위한 앱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짐정리를

하다가 예전에 썼던 좋은 글귀들이 담긴 메모지를 발견했다. 기억도 안나는 글들이 나의 필기체로 담겨 있는 모습을 보고 한참을 읽고는 이 느낌은 컴퓨터에 저장할 수 없을 것 같아 지금도 메모지 그대로 보관 중이다. 꽤나 시간이 흘러서야 부장님의 수첩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가 이제야 내 가슴에 흘러들어오는 걸 보면, 그 나이가 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글을 쓸 때에는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고 일기 쓰듯이 흘려 쓰는 편인데 최근 들어 얇은 몰스킨 수첩을 소유하게

되면서 다시 메모를 시작했다. 그때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랄지, 해야 할 일 등 양식에 구애받지 않고 써내려 가는데 예전 아이디어를 보면 오금이 저려오고 오한이 돋으며 실소가 새어 나오다가도, 때로는 내가 나에게 조금 경이로운 감정을 느끼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오 내가 이런 생각도??’ 뭐 이런?


그래서 요즘에는 수첩을 들고 다닌다. 양손을 가볍게 하고 싶어서 책가방을 메고, 텀블러를 넣은 상태로 점심에 마실 두유와 차를 챙겨 회사를 간다. 딱히 뭔가 메모할 일이 없어도 왠지 든든하다. 깜빡 깜빡 잘도 잊어버리는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는 것 같다. 걱정 말라고. 내가 기억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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