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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Apr 27. 2024

백일동안 매일 쓰는 일기

7. 감사일기

쇼펜하우어는 내일의 고통이 오늘보다 더 나아지리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동감하는 바이다. 괜한 기대는 쓸데없는 고통의 증가로 이어지니 조심해야 한다. 특히 쇼펜하우어는 몸이 피곤하고 심적으로 괴로울 때는 잠이나 더 자고 먹는 거나 더 챙기라는 굉장히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이 또한 동감하는 바이다.


요양병원에 있을 때, 부단히도 산책을 했다. 무슨 산책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밥만 먹고 나면 공원을 걸었다. 햇볕아래를 걸으며 얼기설기 나있는 토끼풀을 보며 생명력의 위대함을 느끼곤 했다. 심지어 가끔 토끼도 봤다.


급기야는 병실의 침대 옆 협탁에 크리스마스모양의 조명과 선물 받은 책들을 늘어놓았는데, 마치 자취방을 꾸미는 환자의 모습이 신기했던 건지, 다른 병실의 환자가 나의 협탁을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한 일은 많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행복을 찾아보고자 노력했던 시절이었다.


물론 산책과 독서가 어찌 보면 힘이 덜 드는 매우 단순한 일일 수도 있지만, 병이든 실연이든 무슨 연유에선가 일상이 무너질 때에는 이 심플행위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 지구의 중력을 반하여 내 두 발을 움직여야만 하는 원동력을 상실하게 되고, 번잡한 마음속에는 글이 주는 위안이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시멘트를 겹 바른 것처럼 촘촘히 막혀 버린다. 그런 마음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 것은 잘 먹고 잘 자려고 노력했던 일에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요즘에는 신체적 정신적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감사일기까지 쓰고 있다. 감사일기라고 해도 사실 별 것 없고, 아침마다 쓰는 내 작은 초록색 수첩에 3가지 정도를 흘림체로 대충 적어내는 행위이다. 내 마음 받아쓰기 듣기 평가 같은? 내용 또한 별 것 없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감사하다던가, 평소보다 맛있게 아침을 먹어서 감사하다던가 하는 사소한 일 투성이이고 대부분의 감사하는 일들이 하루나 이틀 걸러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검사라도 받는다면 하루 걸러 베껴 썼다며 낙제받을 만한 정도의 글쓰기다.


아팠을 때도 감사일기를 써보려고 했었다는 것을 고백해 본다. 입원해 있었을 때는 이 간단한 행위에도 전혀 마음이 실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를 상담해 주시는 분께 도통 감사일기를 쓸 수가 없다고 하니 이리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


“아니 감사할 일이 있어야 감사하죠. 지금 이 상태에서 감사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니에요? 감사일기도 어느 정도 나아지고 쓸 수 있는 겁니다. 일부러 애써서 감사일기 쓰려하지 마세요.”


선생님, 혹시 쇼펜하우어광팬?(웃음) 하여간 지금은 감사일기를 창의적이진 않지만 매일 3가지씩 같은 내용반복으로라도  쓸 수 있는 나의 상태에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생에 대단한 의지와 노력을 통해 얻어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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