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정신과 약을 먹은 날이었다.
평소 진동 소리에도 깨는 나인데,
그날은 알람 소리도 듣지 못하고 깊게 잠든 것 같다.
뭔가 개운하면서도 소름 돋는 느낌에 눈이 번쩍 떠졌다.
지각이다.
7시 10분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눈 뜬 시간은 7시 4분.
세수하고 양치하고 화장품 챙겨서
차에 타서 조수석에 파우치를 던져놓고 냅다 출발!
신호 걸릴 때마다 피부화장, 눈썹, 라이너,, 화장을 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다. 휴,
출근하는 내내 계속 조금 어지럽고 속이 좋지 않았다.
'너무 급하게 뛰어와서 그런가?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업무를 하고 있는데,
점점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이 심해졌고 결국 구토까지 했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어제 처음 먹은 정신과 약 때문인 것 같았다.
마음을 치료하고 먹은 약인데, 몸까지 아프니 괜히 서러웠다.
결국 연차를 쓰기로 마음먹고
한참을 자리에서 망설이다가
처음으로 팀장님께 정신과 다녀온 것과 약 부작용 이야기를 솔직하게 했다.
처음부터 상세하게 말하진 못했지만,
왜 힘들었는지, 내 현재 상황에 대해 전했다.
함께한 지 이제 두 달 차인 팀장님이지만
누구보다 항상 따뜻하게 챙겨주시기에
애해해 주실 거라는 믿음과 기대감으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팀장님은 일부러 자세히 묻지 않으셨고,
나는 연차를 쓰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하고 증상을 이야기하니
아직 며칠 되지 않았지만, 상태가 더 심해졌다고 하셨다.
다행히 약 부작용은 아니었다.
자기 전에 먹는 약인데 내가 어제 너무 늦게 자고
12시쯤 약을 먹어 약 기운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고 하셨다.
오늘부터는 일찍 먹고, 일찍 잠에 들어야겠다.
병원에서 나와 엄마 가게로 갔다.
마침 오늘 아빠와 동생도 쉬는 날이라
가족이 다 함께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족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점심을 먹으니
마음이 점차 편안해졌다.
학교 다닐 때 조퇴하면 갑자기 멀쩡해지던 그 기분처럼
몸과 마음이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도 끊이지 않는 업무 연락들.
급한 연락 말고는 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동생과 함께
호수 뷰가 너무 예쁜 신상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며 내 고민도 털어놓았다.
그렇게 정신없던 하루가 지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독서도 하고 쉬다 보니
어느새 어지러움도, 구토도, 불안도 사라져 있었다.
"내가 정말 우울한 걸까? 그냥 착각하는 건 아닐까?"
사실 정신과에서 검사받으면서도
'이런 기계가 내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안다고?'
잠시 의심했지만, 편안하게 검사받았는데
약 처방을 해주시는 선생님께 조금은 놀라기도 했다.
"내가 약까지 먹어야 할 정도인가?"
몸이 괜찮아지니 마음도 조금은 나아진 듯해서
괜히 내가 약을 먹는 걸 스스로 과하게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아마 괜찮아진 게 아니라
그냥 잠시 나아진 것뿐일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버텨낸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하다.
작은 빛 하나 켜듯, 오늘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