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 페이지에 헛소리가 없다..

초장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는 비교적 작은 글씨로 1,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보통 긴 소설이 600 페이지 정도라고 생각하면 그것보다 거의 2.5배 정도 긴 소설이다. 비교를 하자면 보통 300~400 페이지 소설이 30평 아파트이고, 600 페이지 소설이 60평 대형 주택이라고 생각하면 1,500 페이지 소설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가구가 1,500평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아래서 언급하지만 30명 정도가 사는 고시원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왜 이렇게 소설이 길까? 일단 소설이므로 인물이 많다. 나오는 인물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각 인물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다. 다른 소설 같으면 그냥 지나가는 캐릭터도 여기에서는 한 20 페이지 분량으로 소개한다.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모르겠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핵심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3명의 형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떤 캐릭터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캐릭터가 다양한 인물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읽으면서 명확해진다. 막내 동생을 예를 들자면 형, 아버지, 형 여친, 자기 여친, 수도원 사람, 동네 꼬맹이들처럼 많은 인물과 관계를 가진다. 다양한 사람과 맺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여전히 일관적인 방식을 읽으면서 독자는 막내 동생에 대한 인물 설정이 가능하다. 조금은 다르지만 일관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작가에게는 환장할 노릇이지만 독자에게는 40개 수영장이 딸린 리조트 같은 것이다. 소설이 긴 두 번째 이유는 소설과 딱히 관련 없는 내용이 나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회적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나온다. 그 사회적 문제가 소설에 일어나는 어떤 사건과 연결되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이 분석만 따로 한 권의 짧은 책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진지한 사회과학 논문이 될 수 있다. 사회 현상에 대한 분량은 개인적으로 추측 건데 도스토옙스키가 러시아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한다. '내가 이렇게 고생해서 소설을 쓰는데 그 보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니까 소설이랑 직접적으로 관련 없어도 내 이야기 들어' 머 이런 느낌이 든다.

많은 인물과 그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 그리고 깊은 사회 분석 이 모든 내용이 한 편의 소설에 들어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인물과 사회 현상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허툰소리라고 느껴지는 것이 단 한 문장도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글을 쓰고 시간이 지난 후에 읽어보면 앞뒤가 안 맞는 부분도 있고, 그냥 헛소리 같은 문장도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는 1,500 페이지를 읽어도 이런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를 읽으면서 대단하다고 느꼈던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