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종신집권체제 본격 궤도 진입-
2월 하순 평양은 시끌벅적하다.
북한 전 지역에서 7천 명이 모여들었다.
당과 정치일꾼 1901명에 당원 1524명, 여기에 노동자와 군인, 언론인, 과학자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사람들까지 5천 명의 대표자가 한꺼번에 평양을 찾았다.
각급 당 조직의 추천을 받은 당대회 방청자 2천명도 빠질 수 없다.
북한 노동당 9차 당대회가 19일부터 25일까지 이어졌다.
사회주의 국가에선 당이 권력 핵심으로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국가, 정부는 그 다음이다.
그래서 당 우위의 국가 체제 혹은 당-국가 체제라고 부른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당대회는 권력의 향배나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행사다.
특히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당 정치국에 누가 포진하는 지가 중요한 가늠자가 된다.
그런데…
당 정치국 명단에서 거물 정치인 이름이 빠졌다.
5년 전 8차 당대회 당시엔 김정은 바로 다음 자리에 위치해 서열 2위를 뽐냈던 사람.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최룡해의 이름이 안 보인다.
최룡해.
1950년생으로 올해 76살이다. 한때 북한판 오렌지족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1998년 출당조치를 받고 자강도로 보내져 6년 동안 ‘혁명화’ 교육을 받으며 소위 ‘굴렀다’.
김정은 체제 들어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당 조직지도부장,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쳤다.
김정은 집권 초기 승승장구하다 2015년 11월 함경도 협동농장으로 좌천돼 혁명화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 때문에 실각한 것 아니냐는 풍문이 돌았지만, 오뚝이처럼 재기해 권력의 핵심부를 차지했다.
아버지 최현 인민무력부장은 김일성과 항일무장투쟁을 함께 한, 말 그대로 김일성의 최측근이었다.
북한에서 백두혈통 다음으로 좋은 출신성분인 빨치산 2세대 최룡해.
북한판 태자당이자 김정은 체제 2인자였던 최룡해가 9차 당대회를 계기로 권력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때만 되면 우리를 위협했던, 그래서 익숙한 이름도 보이지 않는다.
2021년 8차 당대회 때 정치국 위원으로 14번째 자리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번엔 빠졌다.
김영철.
1946년 생으로 올해 80살이다. 김정은 시대 대남 비서와 통일전선부장을 역임해 대남정책의 실무 책임자였다.
김정은 친서를 가지고 2018년 6월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관계를 다루면서 강경 발언을 심심찮게 쏟아냈다.
2020년 6월 담화를 통해 “남조선 ‘국방부’의 분별없는 언동을 놓고 겁을 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어댄다고 평한 적이 있었다.”고 했고 2021년 8월에는 “얼마나 잘못되고 위험한 선택을 하였는지 스스로가 엄청난 안보위기에 다가가고 있는가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라며 엄포를 놨다.
그랬던 김영철이, 5년 전엔 북한 권력 서열 14위였는데, 이번엔 사라졌다.
대신 새롭게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이번 당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처음 이름을 올린 최선희 외무상. 정치국 위원으로 명단 15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최선희.
1964년생으로 올해 62살이다. 태어난 뒤 최영림 당시 내각총리의 수양딸로 입양돼 자랐다.
김정일 시대부터 활동해 온 외교관으로 북한의 대표적인 미국통이다.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 김계관 부상의 전담 통역사로 활동했다.
승승장구의 배경에는 능력도 한몫 했지만 김계관 부상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외무성 미국 국장으로 내정됐으나 당 인사부서에서 이혼녀라는 이유로 반려하자 김계관이 김정은에게 직보해 관철시켰다고 한다.
이런 탓인지 “최선희의 수양 아버지는 최영림 전 내각 총리이지만 업무상의 아버지가 김계관”이라는 평가도 있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당시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미국식 계산법이 잘 이해가 안가는 듯 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식의 거래에 대해 의욕을 잃지 않으시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김정은 위원장의 심경을 헤아리고 대변하는 발언으로 관심을 끌기도 했다.
북한 최초의 여성 외무상으로 유리 천장을 깬 최선희. 김정은 체제 핵심 권력 엘리트로 우뚝 서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름.
무시할 수 없는 이름이 당 정치국 명단 20번째에 등장한다.
김여정.
1988년으로 올해 38살이다. 오빠 김정은과 함께 백두혈통이다.
9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이 됐고 정치국 30명 가운데 20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그 뿐 아니다. 김여정은 이번에 당 부부장에서 당 부장으로 승진했다.
흔히 장관급이라고 이야기하는 데 우리나라나 서방의 장관직보다 더 센 자리다. 사회주의 국가는 당이 정부 위에 존재하며 정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게다가 김여정이 당 부장으로 승진한 건 단순히 장관 자리(?)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권력 서열 20위라고 하지만 북한의 누구도 김여정 부장을 서열 20위로 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김정은 정권의 동반자이자 백두혈통 권력의 공동 운영자로 평가할 것이다.
김여정은 당에서 핵심 엘리트의 세대교체 작업을 수행할 것이고, 김정은 정권의 권력 구조를 더욱 탄탄하게 뒷받침할 것이다. (참고:2인자로 불렸던 ‘공주님’…백두혈통 김여정)
빨치산 2세대 최룡해의 상징적인 퇴진.
대남정책 총괄은 빠지고 외교 전문 일꾼으로 대체.
그리고 백두혈통 지배 체제의 공고화.
이번 당대회를 계기로 김정은이 구상하는 통치 시스템이 더 자리를 잡게 됐다.
“어떤 도전도, 어떤 정세변화도 전진을 지체시킬 수도, 막을 수도 없다.”고 강조한 김정은.
김정은 종신집권 체제가 본격 궤도에 올랐다.///
*제목사진은 북한 9차 당대회가 열리는 평양 4.25 문화회관 전경.2026.2.19.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