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짓에서 탈출하는 루틴의 힘
뭐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오후 4시...
난 오늘 뭐 했지? 일단 모르겠고 좀 있다 하지 뭐. 하루, 이틀, 사흘.. 어느새 다이어트는 개나 줘버리고, 읽기로 한 책은 10페이지를 넘지 못하고, 일에 치여 자기 계발은 안드로메다로 이사를 가버렸다.
우리의 습관이 지배하는 영역이 있다. 출근하자마자, 공부하려고 책을 꺼내자마자, 청소든, 운동이든 무엇이든 시작하려는 시점에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 뭉그적 거리거나 불필요한 행동이 방해하지 않는가? 시작도, 진행도, 마무리도 더디고 결과물도 좋지 않다. 이에 누군가는 조언한다. 닥치고 그냥 하라고.
진지충인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고려하다 시작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찾아낸 묘수가 '루틴(Routine)'이다. 나의 특성을 고려한 정해진 절차다. 나는 타고나기를 느리고, 소심하고, 게으름을 고루 갖춘 사람이다. 남에게 피해 끼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며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높은 효율을 중시한다.
게으르기 짝이 없던 내가 포토샵을 열자
3일간 거의 잠을 안 잤다.
덧붙여 나는 매우 잡생각이 많은 산만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일 같은데 한번 몰입하면 밤을 새웠다. 내가 20여 년 전 포토샵을 열었을 때다. 나 자신도 놀랐다. 미친.. 3일을 잠을 안 잤다고? 그래서 나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루틴을 만들었던 것 같다. 비전공자 디자이너로 경쟁에서 이기려면 하루, 일주일, 한 달 단위로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트렌드 분석, 기록, 정리, 리뷰, 시안 만드는 방법론, 설득의 방법론, 그리고 하는 거 봐서 덤으로 해줄 플러스알파요소까지.. 이 루틴 안에 나를 집어넣었다.
물론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고, 슬럼프도 쌔게 왔고, 실패와 좌절로 깊이 가라앉았던 시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언제나 루틴의 힘은 또다시 나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멘탈과 건강을 회복했고, 트렌드를 놓치지 않았으며, 새로운 일들을 받아들이고 해냈다.
꿀 팁 두 개가 있는데, 어디서 들은 건지 생각은 안나지만 실천중이다.
출근했다고 치자, 내 업무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 모니터 켜고, 커피 타고, 의자에 앉으면? 누구나 다 하는 거다. 핵심은 나만의 시작을 알리는 행동을 방아쇠로 정하는 것. 연필을 특정한 장소에 놓는다던가 머리 끈을 묶는다던가 손가락 깍지를 끼고 푸는 시점부터 '딱 기다려, 다 주거써!'하고 칼퇴를 향해 달린다. 필자는 습관이 되니 몇 초면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뛰어나고 건강해도 너무 장시간의 집중은 무리다. 기계도 망가진다. 무조건 정해진 시간에 브레이크를 밟는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줄이고 작은 성과를 누적하는 것이다. 이는 지속하고 반복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2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해 놓고 그것만 해내는 것에 집중한다. 책도 페이지를 나누어 그 분량만 읽는다. 천천히 한 발씩 가는 것이다.
일상의 루틴도 있다. 너무 바빠 넷플릭스 숙제가 밀렸다. 특정 요일 특정 시간에 3시간은 무조건 VOD를 시청하는 시간으로 정했다. 그 시간은 약속도 안 잡고 일도 다 잊는다. 내 경험으론 그래도 지구는 잘 돌아가고 사회생활 문제없다. 시즌제 드라마는 시간먹는 하마라 조심해야 하는데 한 달에 한 번 주말 2일을 비우고 정주행 하기도 한다. 다른 날에는 리모컨 근처에도 안간다.
자신을 믿지 말고 루틴을 믿자.
게으른 사람은 없다. 목표가 없을 뿐.
예로 든거 말고도 별거 아닌 규칙들로 작은 목표를 격파하며 살고 있다. 잠들기 전 뿌듯함을 느끼는 일이 많아진다. 루틴의 힘은 대단하다. 산만한 소심쟁이가 작으나마 무언가를 이루며 살게 해 주었다. 갓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