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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니 스탁 May 26. 2023

[마음] 새겨진 밤

5월이 가기 전에


겨우내 찌든

개구쟁이들 머리냄새

누더기를 갖다 버리시고

새로 사 온

촌스런 쌀겨 배게


할머니는

어린놈들 피부 상할라

알록달록 새 배게피를

굳이 빨아

다시 씌우셨어


톡톡 두드리시며

누워 보라셨지

배게 살 돈 만드시느라

깻잎을 몇 장이나 따셨을까

검게 물든 손가락이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때


어린놈은

하필 이런 걸 샀냐며

푹신한 솜배게가 좋은데

너무 높다, 딱딱하다

투덜거렸지


어떻게 머리를 돌려도

사각거리는 그 소리

짜증이 났어 하지만,

신기하기도 하지


할머니의 튼 손가락

내 머리칼을 긁어대던 밤

쫑알거리던 내 목소리는

사각사각 사라졌어

마법 저럼 잠든 그 밤


5월이면 생각난다

그리고 깨닫지

길거리 잡초 같던 내 삶을

붙잡아 주었던 것은

오직 그 소리였단 걸


내 심장에 물든

빨갛고, 파랗고, 노란 무늬는

평생 내게

따뜻함을 나누라

부어주신 거란 걸


하지만 나는

감히 흉내도 못 내지

차가운 물에 악물던 그 얼굴을

톡톡 거리던 그 미소를

조용히 쓰다듬던 그 손길을


그래서 기억하고

또 기억할 뿐이야

그 사랑을

그 마음을

그 마법의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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