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다 보면,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뜻밖의 따뜻함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남편이 며칠 전부터 약속한 고등어 김치찜을 해주기로 한 날이었다.
늦은 토요일 오후, 우리는 고등어를 사러 동네 생선 가게에 들렀다. 그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였지만,
나는 주인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그날은 주인아저씨가 가게에 나와 있었다.
그는 내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한국어로 물었다.
“뭐 사러 오셨어요?”
얼굴만 보고 한국 사람인 걸 알아채는 건, 아마 그간의 경험과 관찰력이겠지.
나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말했다.
“고등어요. 저녁에 고등어 김치찜 해 먹으려고요.”
“고등어 김치찜이요? 좋죠.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막 들어온 싱싱한 고등어가 있어요. 몇 마리 드릴까요?”
원래는 두 마리만 사려 했지만, ‘싱싱하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럼 세 마리 주세요.”
아저씨가 고등어를 손질하는 동안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김치는 집에서 담가 먹는지, 이 동네에 산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그런 사소하지만 정겨운 대화들.
손질을 마친 아저씨가 봉투를 건네며 물었다.
“전복 좋아하세요? 제주도에서 잡은 전복이 있는데...”
전복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살 계획도 없었다.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려는 찰나, 아저씨는 뒷문으로 사라졌다. 그러고는 그물망에서 살아 있는 전복 두 마리를 꺼내 오며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거 회로도 먹을 수 있어요. 저녁에 같이 드세요. 서비스예요.”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전복을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저 웃으며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 싱싱하네요. 잘 먹을게요.”
가게를 나서며 남편이 물었다.
“전복 안 먹잖아? 그냥 거절하지.”
나도 궁금했다. 왜 그 순간, 거절을 하지 못했을까.
“그러게... 왜 거절을 못 했을까... 왜 ‘안 먹어요’ 한마디를 못 했을까...”
정성스레 고등어를 손질하던 모습, 뒷문으로 가서 전복을 꺼내 들고 오며 방긋 웃던 주인아저씨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