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번대 예비 당첨자의 주택 청약 염원

#15. 차라리 행복해지련다

by 목양부인




묻지마 청약 지원도 느덧 반년째.

예비당첨 문자만 벌써 다섯 번은 받은 것 같다.


누가 보면 당첨이 되게 잘 되는 줄 알겠지만

순번을 알고 나면 들러리에 불과한 문자다.



예비라... 예비신부님 이후로 낯선 단어군.

그래도 예비신부님일 적에는 결혼 날짜란

D-day라도 명쾌하게 잡혀있었는데...


주택 청약에 있어 예비 당첨자 신분은

기약 없는 기다림의 '우선 예약'과 같다.

감나무 밑에 모로 누워 감 떨어지기만을

입을 쩍 벌린 상태로 마냥 기다리는 격.

언제까지 대기할지도 모르는 체로.







나는 이 지루한 기다림에 좌절하지 않고

서류제출 대상자로 내가 포함이라도 되면

귀찮은 과정을 마다않고 우체국으로 달려가

내 가난한 서류를 모아 적극 증빙하곤 했다.

청약이 꼭 분양주택만 모집하는 건 아니니.

LH와 SH의 각종 집공고 서류 안내도

밑줄지 그어가며 꼼꼼히 읽고 제출했다.






한 번은 200 넘는 예비번을 받고도

문자를 받았다는 사실에 들뜨기도 했다.

천 세대 규모이니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고.


서류 제출 안내라던가 이후 절차에 대한

모델하우스의 연락만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러다 잠깐 관심을 놓쳤는데 서류 마감이

지나 있었다. 나는 놀라서 분양 문의처에

바로 전화했다. 담당자는 한 톤으로

내 사정과 순번을 침착하게 다 듣더니,


사실 예비 30번까지만 서류 제출을

안내드렸다고 솔직히 답해주었다.


아니 그럼 31번부터는?

신청자의 알 권리라던가, 응??






30번도 기회가 갈지 모르겠다며 문자는

무시하라는데, 나는 그 말이 퍽 속상했다.

예비를 괜히 5배수 씩이나 뽑아가지고

사람 기대하게 말이지.(내 집이라도 생긴 줄)

애초에 당첨 문자로 예비 순번도 함께

알려줬으면 꿈도 꾸지 않았을 건데...


나는 매번 예비 당첨 문자를 받을 때마다

떨리는 맘으로 계약금 얼마를 준비해둘지

괜히 쓸데없는 걱정까지 미리 해가면서

청약홈 당첨조회 화면을 숨죽여 열어본다.

이번엔 또 얼마나 뒷번호 일지 점쳐보면서.






그런 나에게도 드디어

당첨 대상자라는 소식이 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다오!



누구나 한 번쯤 놀이터에서 빌어봤을 그 소원.

새집 타령하던 그 염원이 이제야 이루어졌다.

서울시 두꺼비가 내게 행복을 불어넣어 것.

바야흐로, 행복주택 당첨이다.









우리 두꺼비는 계산이 꽤 정직한 편.


34년차 헌 집을 남의 전셋집으로 줬더니

새집도 서울시 명의인 남의 집으로 내어다.

그래도 변덕스러운 집주인을 또 상대하느니

절차대로 일처리하는 공공 집주인이 낫겠지.


그런데, 생각할수록 소름 돋네.

작자미상의 이 놀이터 전래동요 속에도

신축주택을 선호하는 주거문화가 엿보인다.


게다가 헌 집 주면서 새집으로 내놓으라니...

보상판매마저 고려한 옛 선조들의 지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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