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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택 포비아
14화
일상 속 입지전쟁
#14. 지하철 열차칸의 포지셔닝
by
목양부인
Jan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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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날마다 입지를 고민하는지도 모르겠다.
지하철 열차에 올라타자마자 어디에 서있을지
찰나의 순간에 결정하고 각자 흩어지는 것이다.
사람이 붐빌수록 입지는 더
욱
중요해진다.
자칫하면 탈진할 만큼 출근길이 고역스럽기에.
대학시절
,
통
학하는 열차에 올라타면
나는 주로 출입구 코앞에 서있던가, 아니면
입구 쪽 의자 기둥을 붙잡고 서있곤 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어르신이 많은
열차인 만큼 괜히 자리를 양보할지 말지
눈치보느니 애당초 출입문 근처에 서있는 게
차라리 속 편했다.
(
철근도 씹어먹을 나이였지.)
그러다가 역삼과 신도림을 오가며
출퇴근
을
하면서부터
열
차칸 어디쯤
에
있을지
갈
등했다.
고작 13개 정거장 30분 소요
거
리인데도
출근길에는 굉장히 긴 코스처럼 느껴졌다.
문 앞에 있으면 당장 내릴 때야 편하겠지만
사당, 교대, 강남역에서 인류에 떠밀려 치이고
출근길부터
곧바
로 퇴근하고 싶어졌으므로
.
그리하여 열차 칸의 포지셔닝을 연구해봤다.
안으로 얼마나 파고들어야 더 쾌적해지나,
어떤 승객 앞에 있어야 자리에 앉을 수 있나,
환승객에 치이지 않으려면 몇 번 문이 좋을지,
출입문과 얼마나 가까워야 잘 내리는지 등.
이 유치한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지하철 역세권과 거리가 좀 떨어진
1900세대
대단지
아파트를 임장할 때였다.
아
파트는 세대수가 깡패라고 했던가.
대규모 단지일수록 편의시설이
잘 들어서고
조경도 공원처럼 예쁘게 꾸며놓고 상권도
불편 없이 조성된다. 덩치만큼 큰 땅도
필요할 테니 역세권과 멀어질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건폐율이 낮아져서인지
면적에 비해 덜 붐비고 쾌적한 느낌이다.
단지 이름에 숲, 포레스트가 들어가면
피 터지는 속세와는 달리 섬처럼 떨어진
별채 같은 공간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서울 지하철
2호선
의자의 중간자리만큼.
물론 직주근접과는 거리가 멀지만
삶의 만족도를 높여줄 훌륭한 입지다.
서초, 교대, 강남역에서
내릴 때에는
사람 벽을 뚫고 나가는 부담감이 있지만,
그 또한 각자의 각오와 가치관으로
판단한 스스로의 선택이므로.
반면, 이동이 빠르고 자유로운 출입문 쪽은
초역세권 오피스텔, 원룸, 고시텔이 떠오른다.
인구밀집이 높고 직주 근접한 주거지랄까.
그렇게 보니 각개전투하는 빌라촌 주택은
열차 출입구와 의자 사이쯤으로 볼 수 있겠다.
아파트와 오피스텔 중간정도의 입지로다가.
나는 집에서 신도림까지는 직주근접 입지를,
신도림부터 역삼까지는 숲 속 타워에
들
어가
콕 박히는 안락한 포지셔닝을
고수해왔다.
신도림에 도착하면 누구보다 빨리
1등으로
내려 2호선 열차에 좋은 입지를 선점하려고
출입문 정중앙에
서서 스타트를
대
기했다.
지하철 역사 안에서도 초스피드로 내달렸다.
이사 갈 집을 찾던 나에게 멘토가 물었다.
너는 어느 동네에 살고 싶냐고.
관심 있는 지역이나 위치가
있
냐고.
나는 순간 먹먹해졌다.
내가 어디에 살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중개인들이 전세라고 보여주는 집을 대충
둘러보고는 그마저도 빼앗길까 봐 불안감에
덜컥 계약부터 했으니, 5지선다 보기에서만
골라왔을 뿐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는
스스로 찾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연히 집에 대한 가치관과 각오가 담긴
신중한 선택도
해봤을 리
없다.
요즘은 직주근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에서 환승하며
열정적으로 입지하던 내가 떠오른다.
고작 30분 거리에도 어디 서있을지 날마다
고민했으면서 3년 아니 30년쯤 살지도 모를
주거 입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고민 없었던
지난날의
시간
을
지금에야 반성하면서.
하지만 직주근접과 거리가 먼 숲 속 단지는
접근성 때문에 매도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나의 가치관과 각오와 주안점은 무엇인지,
사사로운 부동산 기사에도 결심이 흔들리는
갈대 같은 내 마음을 꼭 부여잡고
내 집의 입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은
인생 내내 큰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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