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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커 Feb 06. 2023

발가락 꼬집기 달인

수요일의 해방일지 #10

대구 수성구 중동에는 발가락 꼬집기 달인이 살았다.


발가락 꼬집기가 뭐냐면은,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을 힘껏 오므려 살을 꼬집는 행위를 말한다. 그가 한 번 마음먹으면 웬만한 사람의 손가락 꼬집기 만큼 아팠다. 발가락 꼬집기 달인의 실력은 매주 월, 화 밤 10시에 빛을 발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는, 그 시절 TV 앞 63.7%의 사람이 그러했듯이 대하드라마 허준을 보고 있었다.


다다다다다다 틱, 틱,


“야 이놈아! 할아버지 보고 있잖냐! 2층 올라가서 봐라!”

“엄마가 허준 본다잖아. 나는 가을동화 볼 건데. 할아버지가 올라가서 엄마랑 같이 봐라! 나는 할머니랑 같이 가을동화 볼 거니까!!”


이 집에서 그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막내 손주뿐이다. 심지어 그의 6남매 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들(그녀들은 쌍둥이다) 마저도 살아있는 생명체 중 그를 가장 무서워했다. 그는 성격이 급하고, 물보단 불을 좋아해, 시도 때도 없이 타오르기 일쑤였다.


“아!!! 왜 꼬집는데!!!”


도통 말을 해도 들어먹지 않는 손주 놈에게 그는 발가락 꼬집기로 그저 분풀이만 할 뿐이다. 언제나 그랬듯 그날도 그의 발가락 꼬집기는 고작 30% 정도의 힘만 쓰였다. 그는 이 집에서 그의 말을 가장 듣지 않는 막내 손주를 가장 귀여워했다. 원래 보사람들은 남들과 다르게 나를 대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법.


그날도 발가락 꼬집기의 달인은 발톱만큼도 관심 없는 송승헌과 송혜교의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를 강제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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