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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커 Dec 01. 2022

이름이 뭐예요?

수요일의 해방일지 #2

누군가를 처음 만나고, 그 사람을 더 알아가고 싶을 때, 우리는 통성명을 한다.


이름은 공평하다. 누구에게나 있다. 이름을 잊어 ‘무명’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곤 하지만(나는 태어나서 무명인 사람을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다) 그 또한 어느 때에는 이름이 있었을 것이고, 처음부터 없었다 해도 지으면 그만이다. 오히려 좋다. 내 이름을 내가 지을 수 있다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이니까.


내 이름은 ‘상호’다. 나는 한 번도 이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다. 흔하디흔한 이름. 특별하지도 않고 멋지지도 않은 이름. 지금 생각해 보니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긴 하다. 할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내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줬다고 한다). 그렇게 30여 년을 살았다.


2020년 8월 31일, 나는 ‘상호’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그 이름을 지은 건 2020년 6월 어느 때였다. 이직을 실행하던 시기였고, 몇 번의 과정 끝에 한 스타트업 회사에 최종 합격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메일에는 링크가 하나 있었고, 입사 전 확인 사항들과 제출해야 하는 몇 가지 것들이 있었다. 그중 다른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특이? 특별하다고 생각됐던 건 회사에서 사용할 영어 이름을 제출해달라는 것이었다. 1, 2, 3순위로.


1순위 Liker(라이커)

2순위 Happier(해피어)

3순위 Pier(피어)


Liker는 말 그대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고민한 결과다. ‘무언가 좋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 다행히 Liker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은 없었고, 채택됐다. 2순위였던 Happier는 내가 되고 싶은, 바라는 상이다. Pier도 Happier를 뜻했고, 이름은 Pier로 쓰되, 메일에는 Happier로 적용해달라는 멘트까지 달았다. 뭐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보면 Liker가 된 게 다행?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부여받지 않은, 내가 지은 이름으로 사는 삶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이름 따라서 2년 동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았다. 하는 일을 다 좋아하진 않았지만 대체로 좋았다. 그리고 이직을 희망했던 곳들에 면접을 보면서 다음 회사도 내가 내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곳이라면 ‘Pia(피아)라고 지어야지’라고 생각했다. 보통 Pia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들의 성별은 여자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의외성도 좋았고, 부여한 의미 또한 이보다 좋을 순 없다. ‘Park I An’의 약자를 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이름을 직접 지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어릴 때 별명을 그대로 쓰는 ‘홍쵸’ 홍승현 쵸딩이라는 뜻이다. 초딩이 아니라 쵸딩이다. 정말 쵸딩같은 이름이라 형이랑 잘 어울린다. 배우 ‘조진웅’은 아버지의 이름을 쓴다고 했다. 모베러웍스의 대장 ‘모춘’ 또한 아버지의 이름을 쓰는데 조금 특별한 건 이름을 뒤집었다는 것.


직접 지은 이름에는 살아가고 싶은 삶의 모습이나, 인생의 신념, 나의 자랑같은 것들을 투영할 수 있다.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


이름이 뭐예요?

: 저는 Liker예요.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삶을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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