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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ONY Apr 03. 2024

호구의애쓰는일생

관계에서 애쓰게 되어버린 데에 관한 썰

그 사람은 내가 편해서 좋았다고 말했었다. 한 번도 내가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나는 물었다. 내가 화를 냈으면 어땠을 것 같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했을 때 나는

차라리 한번이라도 화를 낼 걸 후회했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아기 때부터 쭉 그랬다. 명확하게 새겨지지는 않았으나 기억이 존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언제나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내가 다.


나는 양가감정의 인간이다.

사랑받고 싶지만 친밀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관심받는 걸 좋아하지만 주목받는 걸 싫어한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 쉽게 지친다.

외로움을 많이 타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을 끝도 없이 내줄 것처럼 거침없이 표현하지만 항상 거두어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원하고 갈망하면서도 누군가 내 바운더리에 들어오면 밀어내기 바쁘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순간이 오면 그럴 리가 없다고 외치면서 도망간다.

이런 나를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어느 순간 평가절하하고 부족한 점을 찾아내어 혐오한다.

밝고 긍정적이고 작은 것들에 애정을 갖고 행복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을 지옥불로 끌어내릴 준비가 되어있다.

어쩌다보니 그런 인간이 되었다.


내가 꼭 그런 인간이 되어야만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거의 모든 관계에서 나는 크게 모나지 않고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다. 곁을 많이 내주지는 않지만 인간적이고 배려심 있고 독립적이며 생각이 깊 하기 편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편이었다.

하지만 좀 더 친밀하고 중요한 관계에 이르렀을 때에는 얘기가 약간 다르다. 꽤나 높은 벽이 있고 거리감이 느껴지며 예민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평을 종종 듣는다. 나는 그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 그 밑에는 아주 오래된 근원적인 관계에서의 결핍이 숨겨져있다.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는 건조한 사막 같았다. 

서투르고 불안정하며 너무 뻑뻑해서 눈알조차 굴리기 힘들 정도의 물기 없는 사막 그 자체.

내 인생은 일 년 내내 비 한번 오지 않는 거대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정이었다. 친절한 누군가에게 물을 구걸해도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오아시스를 만나도 그 순간의 갈증을 채우고 나면 다시 거대한 사막의 존재가 나를 압도하고 만다. 그 모든 친절한 것들이 신기루처럼 금방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불안하다.

그렇다. 그래서 나는 말라비틀어져 가면서도 살기 위해 바닷물이라도 들이키는 타입의 인간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렇게 호구가 되었다.


언젠가부터는 관계에서 애쓰는 일이  독이 되었다.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를 열망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애쓰는 만큼 나에게는 인색한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를 채근하고 박하게 평가하고 상처를 내면서도 나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채우지 못한 마음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채워지길 바라는 강한 열망으로 하고 만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내가 깊이깊이 숨겨놓은 구멍이 뚫린 마음을 채워줄만한 신묘한 재주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원망의 마음을 품는다. 상처는 혼자 만들어 내고 타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괴랄습관이 생겼고, 

아프다는 이유로 사람과의 가장 깊고 친밀한 관계를 피하고 말았다. 어쩌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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