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울리고 말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 나에게만은 별 것이 되는 경우가 있음을 종종 느낀다. 성적이 조금 떨어졌거나, 컴퓨터에서 파일을 무심코 삭제해 버렸거나, 양말에 구멍이 뚫렸거나 하는 일처럼 말이다. 이 일도 그랬다. 정말 별 것 아닌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만은 별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일로 내 사춘기는 막을 내리고 말았으니까….
당시 우리 네 식구는 길쭉한 방 하나에 모여 살고 있었다. 원래는 두 개의 방이었던 듯, 방 한가운데에는 나무로 된 문틀이 방을 양분하듯 길게 이어져 있었다. (문틀에 끼워져 있었을 미닫이 문은 어디 두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문틀을 기준으로 방 아래쪽에는 TV와 서랍장을 두고 있었고, 위쪽에는 찬장과 장롱, 그리고 책상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 이것저것 잡다한 가구를 들여놓다 보니, 사실 남아 있는 공간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네 식구는 밤이 되면, 퍼즐을 맞추듯 바닥 여기저기에 두꺼운 이불을 촘촘히 깔고 잠을 청했었다. 이렇다 보니, 당연하게도 나만의 방은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난, 그것에 대해 큰 불만은 없었다. 과연 그것을 나만의 공간이라 불러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 나에게 있어서는 분명히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니까.
그 공간은 바로 책상이었다.
창가 쪽에 위치해 있던 내 책상은 누가 뭐라 해도 분명한 나만의 공간이었다. 모든 가족들과 등을 돌리고 앉아 공부를 하고 있을 때면, 나는 가족들과 동떨어져 나만의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했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렸더라도 들린다고 인식하지 못했다.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었으니까. 겨울이면 추워서 책상 의자에 앉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그러면 더더욱 완벽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나만의 공간인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내준 숙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차 커졌는데, 그것의 정체는 바로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만하고, 어서 목욕탕에 다녀오라니까!!”
나는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나에게 여러 번 말했나 보다. 평소 잔잔하던 어머니 목소리가 그렇게 커진 것을 보면.
어머니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짜증”이었고, 곧바로 미칠 듯이 화가 났다. 나만의 공간을 방해받았다고 느껴서 그랬는지, 내 행동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려는 것으로 인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어머니의 말에 화가 났다. 나는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서서 어머니에게 한 소리를 지르려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내가 벌떡 일어서는 순간, 나무로 된 오래된 책상 의자가 뒤로 넘어갔고, 바닥에 부딪친 등받이가 "쾅!" 소리와 함께 부러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의자가 넘어가던 그 순간, 나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마치 제삼자의 입장에서 슬로 모션으로 움직이는 영화를 보는 듯했다.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어머니는 뒤로 넘어가 부러져버린 의자 등받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선 채로 움직이지 못했고, 어머니도 놀라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한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억겁 같은 시간이 흐른 후, 어머니는 내가 보는 앞에서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럽게 눈물을 터트렸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나? 의도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변명해야 하나? 온갖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넘쳐났지만, 결국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를 다독여 드리고 싶었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춘기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슴이 너무 아팠다.
아파도 너무 아팠다.
그 후, 그 일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는 미칠 듯이 미안해하면서도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렇게 선채로 하염없이 울고 있던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만 남아 있다.
목욕탕에 가라는 어머니의 그 말에 뭐가 그리도 짜증 나고 화가 났던 것일까? 어디에도 화를 낼 이유가 없었는데. 그 어디에도 어머니의 잘못은 없었는데. 그 모든 것은 그저 나의 잘못이었을 뿐이었는데…
어머니가 느꼈을 절망, 당황, 배신감, 서러움… 그 어떤 것도 나로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저 어렴풋이 짐작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미안해서 너무나 죄송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울리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스스로 아무리 변명을 해 봐도 정당화해 보려 해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내 사춘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끝난 날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그 날이었다.
이제라도 그때 못했던 말을 해 드리고 싶다.
“엄마,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내가 더 잘할 게.”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