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힘든 시기를 겪어 왔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제 조금씩 지금의 상황에 적응해 가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는 교통사고 후 5년 정도 재활치료를 계속하다가, 지금은 치료를 중단하고 어머니와 함께 고향집에서 살고 있다. 비록 치료는 중단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건강한 상태다. 아버지는 이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장애인 체육관에 나가 같은 장애인들과 함께 매일 운동을 하고 있고, 파크 골프에도 흥미를 붙여 가끔 장애인 지역대회에 나가기도 한다. 물론 젊었을 적 불 같은 성격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거나 화를 내는 통에 어머니를 서운하게 하는 일은 지금도 종종 있다. 하지만, 아버지도 나이를 먹어서 인지, 아니면 기가 꺾여서 인지, 예전만큼은 아니다.
나와 내 아내의 생활도 점차 안정되어 가고 있다. 부모님이 새로운 삶에 조금씩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도 한시름 놓았다. 물론, 부모님이 소소하게 다투는 일은 아직도 있었지만, 그래도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제 가끔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하고, 가끔은 찾아뵈면서 그렇게 점차 예전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동생의 가족들도 무탈하게 잘 지내는 듯하다. 아버지를 돌보는데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동생이 매제를 따라 중국에 가게 되었을 때는 잠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동생의 부재로 인해 부모님이 외로움을 느낄까 염려스러웠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예전과는 달리 이젠 해외에서도 수시로 영상통화가 가능해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지금은 동생네 식구들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예전처럼 살고 있다.
어머니는 여전하시다. 여전히 밝게 웃음 지으며 긍정적으로 살고 계시다. 어떤 면에서는 예전보다 더 즐거워하시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장애인 연금과 복지혜택 덕분에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했고, 항상 말썽을 피우던 아버지도 어머니의 소중함을 느낀 후부터는 서운하게 하는 일이 줄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도 이제는 아버지의 병간호에서 벗어나 조금씩 일상을 즐기고 있다. 평소 좋아하던 등산을 하기도 했고, 주말에는 예전처럼 성당에 나가기도 했다. 장애인 모임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즐기기도 했고, 가끔 아버지와 함께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거나 동네를 산책하기도 했다. 내가 느끼기에 어머니의 표정도, 그리고 목소리도,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인생의 한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물론, 이것이 끝이 아님은 알고 있다. 아마도 언젠가 우리 앞에는 또 다른 힘든 시기가 찾아와 우리를 고민스럽게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믿고 있다. 그때가 와도 우리는 지금까지 늘 그래 왔듯이 잘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 정도는 하늘에 부탁해도 되지 않을까?
이미 너무도 오랫동안 힘들게 살아온 내 어머니에게만은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앞으로 남은 어머니의 삶에는 이제 행복만이 남아 있게 해 달라고.
왜냐하면, 어머니는 소설로 써도 될 법한 기구한 운명처럼 이미 너무도 많은 일들을 겪어 왔으니까. 다시 그런 힘든 시기를 겪게 될 때, 혹시나 어머니의 웃음이 스러질까 염려되니까. 그러니, 설사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조금 불행해진다 해도, 그 정도는 하늘도 들어줘도 되지 않을까?
언제나, “우리 아들~.” 하면서 넘치도록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들고 절망스러운 나날 속에서도 항상 버팀목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제 앞에서 언제나 괜찮다며 웃음을 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것을 제게 주시면서도 언제나 해 준 것이 없다며 안타까워하시는 어머니… 이제 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제 어머니여서 저는 지금 무척이나 행복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