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괜찮다, 괜찮아

뭐든 이해해주시는 엄마

by yangTV

내가 어머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것은 아마도 끝없는 이해심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회사에서 한참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한통 걸려 왔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잘 연락을 하지 않는 어머니가 전화를 하니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급하게 사무실 밖으로 나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평소 ‘용건만 간단히!’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분 답게, 어머니는 내게 안부인사도 생략한 채 다짜고짜 이렇게 말을 꺼냈다.


“엄마가 생각해 봤는데, 우리 아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아. 요즘에는 아이 없이 사는 부부들도 많다고 하더라. 엄마는 괜찮다, 괜찮아. 엄마나 아빠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냥 너희만 예쁘게 잘 살면 돼. 알았지? 그러니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응?”


앞뒤 말을 다 자르고 본론부터 말하는 어머니의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그 짧은 말속에서 어머니의 마음이 모두 전해져 오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코끝이 시큰거렸다.


사실 어머니가 그런 말을 내게 한 이유는, 아마도 추석명절 때 있었던 일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당시, 고향집에는 추석명절을 맞아 나와 아내 외에도 동생의 가족들이 내려와 있었다. 그때 나는 이른 아침부터 어린 조카들과 몸으로 신나게 놀아주고 있었다.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 의례 그러는 것처럼, 조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자지러지듯 웃으며 내게 매달렸고, 나는 그런 조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신나게 놀아 주었다. 바닥에 누워 비행기를 태워 주기도 했고, 조카의 몸을 붙잡아 푹신한 소파 위로 날려 주기도 했다. 거실에서 함께 공놀이를 하기도 했고, 장난감을 빼앗아 어린 조카를 놀리기도 했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그렇게 모두가 아이들의 모습에 즐거워하고 있을 때, 어머니만은 어린 조카들이 아니라 나를 보고 있었나 보다. 아마도 내가 조카들과 놀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에 안타까워했던 건 아니었을까?


‘저렇게 아이들을 좋아하는데,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아이가 안 생겨서 우리 아들이 많이 속상하겠다.’


하고 말이다.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이었든, 일부러 전화까지 해서 괜찮다고 위로해주시는 그 마음이 나는 너무도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동안 손자 손녀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여동생도 매제를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나와는 달리 여동생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아이를 가졌는데, 당연하게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여동생과 매제가 맞벌이를 하다 보니, 조카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아버지 손에 자라게 되었다. 미운 다섯 살이 되기 전, 한참 귀여운 짓을 많이 할 나이. 부모님도 그런 외손자의 재롱을 보면서 즐거워했었다.


하지만, 외손자는 외손자인가 보다. 그렇게 외손자를 귀여워하면서도 아버지는, “지금은 네가 최고인 줄 알지? 하지만 소용없어. 우리 손주만 태어나면 너는 금방 찬밥신세가 되는 거야.” 하고 말하고는 했으니까.


결혼하고 1년쯤 지나고부터, 아버지는 우리에게 어서 아이를 가졌으면 한다는 말을 종종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친척집에 가면 친척 어르신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고, 친구들을 만나도 같은 말을 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혹시나 우리에게 부담이 될까 염려해서인지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부모님의 기대를 알면서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언제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얼버무리기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아이가 없는 진실한 이유는 내 부모님에게 조차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으니까.


사실, 내가 아내와 함께 처음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갔을 때,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우리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내는 아무래도 말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꼭 비밀로 하자고 했다. 어떤 면에서는 부모님을 속이는 일이기에 마음 한편은 무척이나 무거웠지만, 그것이 우리 결혼에 큰 장애물이 될 것 같아 나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부모님에게 조차 숨긴 그 비밀은, 아내의 병이었다.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 아내가 중학생이었던 시절, 교실 바닥에 튀어나온 못에 찔린 그 사소한 사건이 있은 후부터 아내는 원인 모를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당시에는 의사들조차 무슨 병인지 알지 못했다. 아내가 스무 살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병명이나마 알 수 있었을 만큼 희귀한 질병이었다.


그 질병 탓에 우리는 절대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그 사실은 내가 아내와 결혼하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 아니, 만약 내가 독하게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면, 어쩌면 아이를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아내가 임신하는 동안 겪을 고통을 내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고, 아내가 겪었던 그 고통을 내 아이도 똑같이 겪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나에게 아이가 없는 것은 이미 처음부터 정해진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우리 부모님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항상 손주가 태어나기를 바라고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당신은 괜찮다며 위로해 주는 어머니의 말에 더없이 미안하고 미안했다.


이제 부모님은 우리에게 더 이상 아이를 가지라고 하지 않는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아이가 없는 우리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쭉, 당신은 괜찮다며, 그저 우리 부부가 서로를 의지하며 예쁘게 살면 된다고만 하신다. 어쩌면 부모님 세대에 대를 잇는다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일 텐데도, 그렇게 나를, 그리고 내 아내를 이해하고자 하신다.


무슨 일이든 그렇게 배려하고 이해해 주시는 어머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두려움에 얘기하지 못했던 내 비밀을 지금이라도 어머니에게 살짝 이야기하면, 어머니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분명 그 모든 것을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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