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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TV Jul 18. 2022

향기 있는 주름

향기가 있는 사람이고 싶다 ④

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쳐다본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구경하기도 하고,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반대편에서 사람들이 걸어오면 잠시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 어느 건물 창가에 서서 사람들의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볼 때도 있고, 마트나 번화가와 같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소에서 나를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잠시 눈에 담을 때도 있다. 실제 사람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TV 속 다큐멘터리나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울고 웃는 모습마저 유심히 볼 때도 있다. 


내가 이렇게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보는 이유는 사실 별 것 없다. 그저 신기해서다.




정말이지 그랬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신기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부터 의도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일지 어렴풋이 짐작되고는 했으니까. 만약 겉으로 보이는 얼굴 모습에 더해, 그 사람의 말투나 행동까지 조금 더 엿보게 된다면 그 느낌은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인사담당자로 오래 일해서 생긴 직업병 탓인지, 아니면 그만큼 나이가 들어서인지, 한번 보면 대략적이나마 저 사람은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일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 어찌 신기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이런 내 짐작이 언제나 100% 맞는 것은 아니었다. 이 사람은 분명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고 확신했다가 의외의 반전에 내가 틀렸음을 인정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내가 괜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구나.’, ‘역시나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쉽게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옛 성현들의 말씀이 맞는구나.’ 하고 섣부르게 남을 재단하려 했던 내 행동을 반성하기도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내 짐작이 제대로 빗나갔던 경우는 거의 대부분 이런 사람을 보고 판단했을 때였던 것 같다.


「어리거나, 혹은 젊은 사람」


확실히 그랬다. 어린아이들이나 아직 젊은 사람들의 성향을 판단할 때는 애매하거나 혹은 잘못 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왜 그런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조심스럽게 이유를 짐작해 보면,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성향이 제대로 정착되기에는 살아온 기간이 너무나 짧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경우만 봐도 그랬다. 대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난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면서 술을 마시는 것이 좋았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과 어울리다 보면 왠지 모르게 활력이 생기는 것 같았다. 좀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항상 사람을 만나야 했다. 이런 외향적이고 활달한 성격 탓인지, 직업 적성검사를 하면 내 적성은 백이면 백 언제나 영업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활달했던 내 성격이, 점점 나이를 먹고, 결혼하고,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어느 순간 변해버렸다. 지금에 와서는 많은 사람과 북적이며 술을 마시는 자리가 내게는 무척이나 불편했고, 오히려 소수 인원과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는 자리가 좋았다. 예전에는 어떻게 그리도 활달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가 의아해할 정도로 내 성격은 완전히 변해 버렸다. 내 경우처럼, 아무래도 성향이란 것은 이렇게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아 매번 변하기 마련인 듯했다. 그러니 내 짐작이 빗나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리거나 젊은 사람은 나처럼 분명 변화하는 중이었을 테니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군가의 성향을 짐작하려 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전체적인 인상을 내 과거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고는 했던 것 같은데, 알다시피 사람의 인상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주름이다. 그런데, 이십 대의 젊은 사람들에게 주름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그 나이대의 사람이라면 있다가도 사라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 주름 아닌가? 누군가 말하길, 관상(觀相)에서도 이삼십 대가 되어야 관상이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관상은 절대 보지 않는다고 하던데, 아마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생기기 마련인 얼굴 속 주름은 참 많은 것을 내게 얘기해 주는 것 같다.


가난 때문에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했던 사람인지, 부유한 가정에서 별다른 부족함 없이 평온하게 살아온 사람인지. 긍정적으로 인생을 바라보며 항상 웃는 얼굴로 생활해 온 사람인지, 괜한 자격지심에 사람들을 시기하며 그렇게 불행하게 살아온 사람인지. 권위적인 성향으로 고집스럽게 남을 찍어 누르며 살아온 사람인지, 넓은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온 사람인지. 소극적인 사람인지, 아니면 적극적인지. 욕심에 눈이 멀어 남의 것을 빼앗고 혹시나 잘못이 발각되면 변명만 늘어놓으려는 사람인지,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인지. 이기적인지, 아니면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인지… 오랜 세월을 살아가면서 겪어야 했을 많은 순간들 속에서 우리가 그때그때 했던 생각과 행동들이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얼굴에 주름이라는 길을 만들어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은근히 말을 걸고는 한다.


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내가 지금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을 때, 내 얼굴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남들은 볼 수 있지만 나 자신은 절대 볼 수 없는 내 얼굴 속 주름들은 과연 어떤 얘기들을 품고 나 몰래 주위에 전하고 있을까?


물론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내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 것이다. 그래난 오늘도 좋은 향기가 가득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거울 속 내 모습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을 건넨다.


“넌 지금 어때? 잘 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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