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도 괜찮아

힘들지만, 함께해서 즐거웠다 ②

by yangTV

우리의 첫 신혼집은 작은 원룸이었다.

처음부터 원룸에서 시작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서 좀 더 좋은 집에서 첫 발을 내딛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주변에 우리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나, 지인들처럼 작은 평수라도 번듯한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서로 결혼하기로 약속했을 때, 우리는 하나의 원칙을 정했다. 결혼은 우리가 하는 것이니, 부모님에게 부담을 주기보다는 우리의 힘만으로 해보자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결정을 한 것은, 각자의 집안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결혼 준비는 생각만큼 순탄하지는 않았다. 결혼은 당사자만의 일이 아니라 각자의 집안이 얽힌 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준비하면서 싸운다고 한다.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분명 사랑하고 아끼고 서로가 많은 것을 양보했지만,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일이다 보니 소소하게 다투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다툼에도 마음 상하지 않고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이렇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서로 많은 대화를 한 덕분이었다.


소소한 다툼이 생겼을 때에도 우리는 서로 문제를 외면하거나 대화를 회피하지 않았다. 대신, 끊임없이 대화하고 서로가 서로를 설득했다. 그런 대화는 연애하는 동안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서로 간의 생각 차이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이해해 보려고 서로 노력했다. 사실, 지금까지 수 십 년을 서로가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는데 한 번에 해결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었던 그동안의 삶의 간격을 줄이는 작업을 우리는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했다.


그렇게 대화하면서, 우리는 꼭 해야 하는 것과 하지 않아도 될 것을 구분하고, 나와 내 아내가 그동안 모아 온 돈을 합해 어떻게 배분할 지를 고민했다. 그런 협의를 통해 우리 사이에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면, 그것을 가지고 각자 서로의 집안을 설득했다. 우리의 결혼은 그런 조율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조율해 나가는 과정 중, 가장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 바로 집 문제였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적어도 집만큼은 좋은 것을 해주고 싶었다. 밖에서 일하는 나와는 달리, 내 아내는 몸이 약해 쉬어야 했다. 즉, 나는 집 외에 회사라는 또 다른 공간이 존재하지만, 내 아내에게는 집이 허락된 공간의 전부일 수밖에 없다. 좋은 집을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은 그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면 한눈에 보이는 몇 평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내 아내를 보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았다. 내 월급으로는 매달 10만 원도 저축하기 힘든데, 그런 상황에서 대출금을 갚아 가면서 생활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기에. 가진 돈이 부족해서 계속 말도 못 하고 고민하는 나에게 내 아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난 원룸에 살아도 괜찮은데.”


“자기와 더 가까이 있을 수 있어서 좋아.”


내 아내의 그 마음이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오랫동안 소중히 키워 온 딸자식이 집 한 채 마련할 돈도 없는 남자를 만나 좁은 원룸에 신혼살림을 차리는 모습을 봐야 하는 장인어른, 장모님의 마음은 어떠할까? 내색은 안 하지만, 그 당시 마음이 무척 아팠을 것 같다. 가진 돈 안에서 욕심부리지 말아야 한다며, 잘 결정했다고 위로하는 처가 어른들 앞에서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사랑하는 자기야…


좁은 원룸에서 하루 종일 날 기다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때를 생각하면 고맙고 또 미안해.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좁은 원룸에서 너와 함께했던 시간이 난 무척 즐거웠어.

너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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